[하승수 칼럼] ‘녹취록의 나라’에서 벗어나야
[하승수 칼럼] ‘녹취록의 나라’에서 벗어나야
  • 광양뉴스
  • 승인 2024.12.06 17:51
  • 호수 1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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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 변호사•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녹색전환연구소 기획이사
하승수 변호사•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녹색전환연구소 기획이사

요즘 대한민국의 뉴스를 보면, ‘녹취록’이라는 단어가 너무나 자주 등장한다. 

녹취록이란 결국 다른 사람과의 대화나 전화 통화를 녹음한 것이다. 

과거에는 녹음기를 갖고 다녀야 녹음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핸드폰의 녹음기능만 이용하면 누구나 쉽게 녹음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녹취록이 국가를 뒤흔들 정도로 중요해진 것은 단지 녹음하기가 쉬워졌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공적(公的)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공식적인 회의나 시스템을 통해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면서 의사결정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녹취록’이 힘을 가지게 된 것이다.

‘비선’, ‘로비와 압력’, ‘청탁’ 등이 난무하고 있는 것이 ‘녹취록’이 힘을 갖게 된 근본 원인이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이 ‘녹취록의 나라’가 된 것은 정치·행정의 후진성 때문이다. 

반면 대한민국에서 ‘회의록’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회의록이 중요하지 않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첫째, 공식적인 회의에서 의사결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회의록이 의미가 없다. 회의 자리가 아니라 다른 자리에서 실질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진다면, 회의록을 본들 의사결정 과정을 파악할 수가 없다. 아마도 현재 권력 기관들을 포함해서 수 많은 공공기관들의 현실이 이렇지 않을까?

둘째, 회의에서 중요한 얘기를 해도 회의록을 충실하게 작성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중요한 회의는 간단한 회의 결과만 작성할 것이 아니라, 속기록까지 작성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 ‘뜨거운 감자’가 된 지 오래고, 의료인들은 물론 수많은 국민들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의대 정원’ 문제만 해도 그렇다. 

처음에는 2000명을 늘리겠다고 하다가 1509명을 늘리는 것으로 결정되었다는데, 그런 논의를 한 ‘의과대학 정원배정 심사위원회’의 회의록이 충실하게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회의의 기록이 충실하게 남아 있지 않으니 논란은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 

셋째, 회의록이 있어도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개하지 않으니, 외부에서는 회의에서 어떤 얘기가 오고 갔는지를 알 수 없고, 의혹이나 논란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는 ‘녹취록’을 둘러싼 논란이 유독 많다. 그 녹취록들에는 주로 ‘개입’, ‘의혹’ 같은 단어들이 따라 붙는다. 이런 녹취록들이 파장을 일으키는 것은 공적(公的)인 의사결정과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국가의 의사결정이 각종 회의와 공적인 시스템을 통해 이뤄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공천 개입’ 얘기가 나오는 것은 정당의 공천이 공천심사위원회 등을 통해 투명하고 책임있게 결정되지 못한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선진국이라면, 녹취록보다는 회의록이 더 중요해야 한다. 공적인 의사결정은 공적인 자리에서 이뤄져야 하고, 의사결정과정의 기록이 반드시 남아 있어야 한다. 

따라서 연이어 터지는 ‘녹취록’들을 보면서, 단지 그 사안에 대한 진실규명을 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녹취록’ 사태는 대한민국의 국가적인 의사결정시스템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본에 충실한 국가가 되어야 한다. 그 방법은 간단하다. 모든 의사결정은 공적인 회의와 시스템을 통해 결정되어야 한다. 

누군가에게 아이디어가 떠오르더라도, 그 아이디어는 공적인 경로를 통해서 전달·소통되고, 검토되어야 한다. 

그것이 자칫 폐쇄적인 관료주의나 비밀주의로 흐르지 않으려면, 국민들로부터 다양한 아이디어와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공적인 통로들이 더욱 열리고 다듬어져야 한다. 제대로 된 ‘참여’를 보장하자는 얘기다. 

그리고 모든 회의와 의사결정과정은 기록되어야 한다. 기록의 충실성이야 회의의 종류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중요한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회의라면 속기록 또는 그에 준하는 수준으로 기록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모든 정보는 최대한 공개되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논란과 갈등, 의혹은 최대한 줄여야 한다. 이를 통해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들이 투명하고 책임있게 논의되는 나라, 국민들이 정부와 정치를 신뢰할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