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동시이야기] 식물 이야기
[융합동시이야기] 식물 이야기
  • 광양뉴스
  • 승인 2024.06.07 18:12
  • 호수 1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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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3 식물의 한 살이
박행신 동시작가
박행신 동시작가

손이 없다

나무는 손이 없다

그래서 맑디맑은 이슬방울도

해가 뜨면 이내 놓치고 만다.

나무는 팔뿐이다

그래서 새들이 찾아와 그 위에 앉아서

즐겁게 노래 부르다 간다.

닉 부이치치1)는 생기다만 어깨뿐이다

그래서 그는 모든 희망을

그 어깨 위에 짊어지고 다닌다.

그러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반갑게 부려주고 간다

한 아름씩 부려주고 간다.

1) 닉 부이치치 : 호주 출신으로 팔다리가 없는 지적장애인으로 태어났다. 그 장애를 극복하고 이제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전해주는 ‘희망의 전도사’ 일을 하고 있다.


할아버지와 화가 손녀

할아버지와 딸이 우리 마을로 이사 온

 

때는 이른 봄이었어요. 이삿짐은 많지 않았지만 딸이 장애인용 전동차를 타고 집 안으로 들어간 모습이 눈길을 끌었어요.

날씨가 많이 풀리고 봄바람이 훈훈하게 불자 할아버지는 전동차를 탄 딸을 앞세우고 우리 집에 나타나셨어요.

우리 부모님은 무슨 일인가 싶어 엉거주춤 맞이했어요.

“안녕하세요? 부탁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우리 딸이 이 집을 배경으로 그리고 싶다는데 허락 좀 해주시지요.”

우리는 흔쾌히 허락해 주었어요. 딸은 여기저기 우리 집을 둘러보았어요. 밖으로 나가 담장을 돌면서 둘러보기도 했어요. 할아버지께서 가방에서 그림 도구를 꺼내 전동차 앞에 이젤과 팔레트를 설치하고 화판을 얹어주었어요. 모든 준비가 끝나자 딸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어르신, 들어오셔서 차라도 한잔 하시지요?”

할아버지와 부모님께서는 차를 앞에 놔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할아버지는 결혼은 했지만 자식을 낳을 수 없는 처지였답니다. 그래서 지금의 딸을 입양했답니다. 딸은 그림을 좋아했고, 성격이 좋아 가족의 한 사람으로 잘 적응하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딸이 대학교 4학년 때 아내와 함께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 아내는 돌아가고 딸은 하반신 불구라는 치명상을 입고 말았답니다.

딸은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학교조차 포기하였답니다.

여기 저기 병원을 돌아다니며 치료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답니다. 오히려 병이 더 깊어지는 것 같아 환경이라도 바꿔주려고 이곳으로 이사하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딸이 갑자기 그림을 그리고 싶다면서 맨 먼저 우리 집을 택했답니다.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면서 이대로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대충 밑그림 스케치가 끝났다고 하자 할아버지는 그림도구 등을 챙겨 돌아가셨어요. 한 달쯤 지나자 할아버지께서 그림 한 점을 들고 오셨어요.

“우리 딸이 이 그림을 댁에게 드리고 싶다고 해서 가지고 왔습니다만….”

우리는 갑작스러운 선물에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어요. 참 포근하고 평온하며 편안한 마음을 갖게 하는 그림이었어요.

단순히 우리 집 모습만을 그린 것이 아니라, 우리 집 식구들이 단란하게 살아가는 섬세한 느낌까지 고스란히 담게 있는 듯한 멋진 그림이었어요.

이렇게 그림을 그리고 그 집에 선물한 경우가 점차 늘어났어요. 그러자 입소문을 타고 너도나도 자기 집을 그려달라고 부탁하기에 이르렀어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우리 마을은 다소 비탈진 야산 자락인지라 골목길이 계단으로 된 곳이 많아 전동차가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가 없었어요.

“전동차를 타고 계단을 어떻게 오르내리겠오? 가만있어서는 안 되는 일 아니요?”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회의를 열고, 계단이 있는 곳을 시멘트로 반반하게 만들기로 했어요. 공사는 며칠 만에 깔끔하게 해치워졌어요.

딸은 그 길을 따라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더 열심히 그려주었어요. 마지막 집 그림이 끝나면 마을에서는 그동안 고생한 할아버지와 딸을 위해 잔치를 열기로 하였어요.

마침내 그날이 오자 마을 사람들이 마을 회관에 모여 바쁘게 움직였어요. 맛있는 음식 냄새가 마을 골목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자 개며 고양이 같은 짐승들조차 무슨 냄새인가 싶어 부산하게 코를 킁킁거렸어요.

점심때가 다 되어 할아버지와 딸이 곧 오기로 된 시간이었어요.

갑자기 구급차가 왱왱거리며 할아버지 집으로 달려가더니 금세 되돌아나와 마을 밖으로 쏜살같이 달려갔어요.

마을 사람들은 하던 일손을 멈추고 할아버지 댁으로 뛰어가는 등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어요.

“딸이 갑자기 쓰러져 구급차를 불렀당마요.”

“엊그제까지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쓰러지다니 뭔 소리랑가?”

“그동안 우리 집들 그려주느라 기운이 다 빠져버린 것 같다만요.”

“그러게 말이여. 붓을 한 번 잡으면 몇 시간씩이고 그 앞에 앉아 있다고 하든디.”

“별일 없어야 할 텐디. 이를 어쩐디야!”

마을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구급차가 사라진 마을 어귀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