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5. 물의 여행
우리 집에 온 노아 방주
천장이 새고 말았다
긴 장마와 갑작스런 폭우로
대청마루 천장에서
똑 똑 똑 물방울이 떨어졌다
“엄마, 엄마. 천장에서 물이 새나 봐!”
얼른 빨간 다라이를 가져와 받쳐 주었다
어느 참에 물이 찰방거리자
동생이 종이배를 띄워 놓았다
다행이다
물난리가 난다면
우리 식구 모두 저 배에 오르는 거다
노아의 방주에 당당히 오르는 거다
흙탕물에 젖은 기념일
재난 안내 문자가 핸드폰에 수시로 들어왔어요. 호우주의보가 발령되었으니 방송 등을 통해 홍수 상황을 확인하시고, 특히 산사태나 축대 붕괴 지역은 주의하시고 대피하라는 내용이었어요.
산사태가 일어나 멀쩡하던 집과 건물이 무너지고, 도로가 무너져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는 뉴스를 듣고 자연재해의 무서움을 실감하는 날이 많았어요.
“삐리리링! 삐리리링!”
“뭐라구요? 예, 예. 알겠네요.”
토요일 아침 늦잠을 자던 우리는 허둥대는 아빠의 말씀을 듣고 후다닥 일어났어요.
“큰일 났다. 할머니께서 마을 앞 냇가 둑이 무너져 대피하셨다는구나!”
우리는 무슨 소리인지 얼른 알아듣지 못하고 서로 바라보고만 있었어요.
“할머니댁에 물난리가 나서 학교 강당으로 대피하셨다니까, 각자 필요한 물건들만 대충 챙겨서 어서 내려가자구나.”
다행히 비가 그치고 낮게 깔린 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햇살이 비치곤 했어요. 급한 마음인지라 아빠의 운전이 예전 같지 않았어요.
우리는 곧장 초등학교 강당으로 갔어요. 강당에는 여러 동의 야외용 텐트가 쳐져 있고, 각 텐트마다 가족끼리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모두가 한결같이 근심과 걱정이 가득한 표정들이었어요.
“할머니! 괜찮으셔요?”
우리는 할머니를 보자마자 부등켜 안으며 안부를 물었어요.
“오냐, 오냐. 난 괜찮다. 오느라고 고생덜 많았다.”
마침 그때 안내방송이 나왔어요.
“이른 아침에 냇가 둑을 막아서 더 이상 우리 마을로 물이 흘러들어오지 않는답니다. 우선 집으로 가셔서 상황들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급히 할머니 집으로 갔어요. 마을은 흙탕물이 거의 빠져 있었어요. 집안으로 들어서니 안방과 작은 방, 거실 바닥에 문턱 때문에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흙탕물이 고여 있었어요. 약간 지대가 높은 곳이라서 물이 많이 차지 않은 것 같았어요.
“그나마 다행이네요. 이 정도라서요.”
우리는 양동이와 세숫대야, 바가지, 걸레 등으로 고인 물을 퍼내기로 하였어요.
“어머님하고 당신은 바닥에 놓인 물건들을 걸레도 잘 닦아서 밖으로 내놓으세요. 우리 셋이 물을 퍼낼 테니까.”
우리는 아빠가 제안한 말씀에 따라 각자 맡은 일을 하기로 했어요.
“아이고 이런, 이걸 어쩌나!”
일을 막 시작하려고 할 때 할머니께서 놀라 탄식하는 소리가 안방에서 들렸어요.
“어머니, 왜 그러셔요?”
“경대 서랍에 넣어두었던 사진인데 여기까지 물이 들어와 다 버려놨구나.”
“그게 무슨 사진인데요?”
사진은 모두 다섯 장이었어요. 젊은 시절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우리 아빠와 엄마 결혼사진, 그리고 누나와 나의 백일 사진이었어요. 그런데 사진마다 할아버지 제삿날을 비롯해서 할머니 생신날,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과 생일날, 그리고 누나와 내 생일날을 종이를 덧대고 연필로 삐뚤삐뚤 써 놨어요.
그동안 할머니께서 우리들의 생일은 물론이고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까지 빠짐없이 챙겨 주셨는데 다 이 사진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나 봐요.
우리는 청소 정리할 생각마저 잊어버리고 흙탕물에 젖은 기념일을 한 장 한 장 돌려가며 보고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