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 지켜야 할 공직윤리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역할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다. 즉, 자신에게 부여된 소임을 책임 있게 다해야 하고, 잘못이 있으면 그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그래서 대한민국 헌법 제7조에서도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물론 그 책임의 무게와 정도는 맡고 있는 지위와 역할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행정에 대한 불신의 가장 큰 원인도 책임윤리의 결여에 있다. 특히 고위공직자들이 책임윤리를 상실한 것이 큰 문제이다. 일을 무책임하게 하고,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으며,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그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으려고 한다.
이번 폭우로 인한 재해만 보더라도 그렇다. 오송 지하차도 사고는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인재(人災)였다. 미호강이 범람하기 전에 지하차도의 통행만 차단했더라면 비극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방자치단체도, 경찰도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런데 누구 하나 책임을 지려는 사람은 없고,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하다.
실종자 수색을 하던 젊은 군인이 목숨을 잃은 것도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다. 구명조끼조차도 지급하지 않은 상태에서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도록 맡긴 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번에는 산사태로 인한 피해도 컸다. 그리고 임도나 개간 등으로 인해 산림이 훼손된 것이 산사태를 불러일으킨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런데 이런 지적에 대해 책임있는 설명 하나 듣기 어렵다.
재난을 관리하는 시스템이 엉망인 것은 이태원 참사 이후에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 따르면, 행정안전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모두 ‘재난 정보의 수집·전파, 상황관리, 재난 발생시 초동조치 및 지휘 등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재난안전 상황실을 설치·운영’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왜 이런 기본적인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인지 의문이다. 상황실만 제대로 운영되었더라도, 사고를 예방하거나 초동대응을 제대로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와중에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무책임한 행태이다. 폭우로 인한 재난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골프를 친다든지, 재해가 우려되는 상황인데도 무책임한 행태를 보인다든지 하는 일들이 이번에도 벌어졌다. 재해가 우려되는 상황인데도, 대통령이 예정에도 없던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것도 적절하지 못한 일이었다. 도대체 ‘컨트롤타워’가 어디에 존재하는지 의문스러운 상황이었다.
이렇게 최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 책임 있는 언행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하위직에 있는 공직자들만 닦달해서 문제가 해결될 리가 없다. 지금도 현장에서 사고수습을 위해 애쓰는 대다수의 공무원들, 경찰, 군인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의사결정권은 갖고 있으면서도, 책임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고위직들에게 있다.
그러나 우리가 정부를 없애지 않는 이상, 정부를 불신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해법을 찾아야 한다. 결국 해법은 의사 결정권을 가진 힘 있는 사람들이 제 역할을 하게 만드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공직윤리도 힘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부터 제대로 지키게 해야 한다.
대통령, 법무부, 검찰, 감사원, 장관,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원, 고위관료들의 공직윤리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이들이 제 역할을 다하지 않으면서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거나 직권을 남용하거나 법과 공직윤리를 지치지 않는 행태를 보인다면, 지금의 총체적 난국을 헤쳐나갈 길이 없다. 이들이 책임을 다하지 않는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킨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들이 국민세금을 엉터리로 쓰는 상황에서 날로 어려워지는 국가의 살림살이를 제대로 꾸려나간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대통령도 ‘이권카르텔’만 외칠 것이 아니라, 내 주변의 ‘무책임하고 무능하면서 국민세금을 축내고, 직권을 남용하는 카르텔’이 없는지부터 살펴야 할 것이다. 결국 모든 국정의 책임은 대통령에게 귀결될 수밖에 없다.
지방자치단체장들도 이번 재해상황에서 일어난 일들을 반면교사로 삼아서, 자신과 주변의 공직윤리부터 바로 세우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다른 고위공직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공직을 맡았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책임을 지기 싫으면, 공직을 맡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