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어디를 가나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분위기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흘러나오는 우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화가 치밀어 오른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이에 각 분야에서 책임지는 리더들의 책무가 막중함을 느끼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개개인의 사회적 지위는 직업에 따라 차등화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기제는 학교교육 과정의 시험이다. 누가 더 좋은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는가는 그가 나온 대학, 다시 말해서 이전에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했는가를 통해서 정당화 된다.
학교에서 거론되는 사회적 성공의 의미는 오직 공부를 잘 해서 의사, 변호사가 되거나 사업을 통해서 성공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세습이 아닌 개개인의 능력을 바탕으로 한 더 좋은 사회적 자리를 갖게 하는 기제가 되어야 하며, 그러할 때 학교의 교육은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다.
과거만 해도 이 같은 논리는 사회 전체적으로도 열심히 노력하는 자가 성공한다는 선순환 구조를 낳았다. 즉 일종의 교육의 순기능이 작동했었다.
2000년대 이후 한국교육을 살펴보면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더는 통용되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 입시제도의 변화를 통해서 공정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실패로 이어지는 것은 교육이 계층상승의 도구로서 기능을 상실했음을 의미한다.
부자든 빈자든 치열하게 공부한 자가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력과 정보력을 가진 특정 계층, 본래의 부자계층과 교육을 통해서 성공한 베이비 부머 세대층이 교육의 상층구조, 높은 사회적 지위를 독차지하게 되었다는 의미다. 이러한 결과로 한국은 양극화가 더 심화되었고, 중산층 이하 시민의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없어지고, 사회적 이동이 거의 사라진 국가가 되었다.
돌이켜 보면 1990년대 말부터 교실붕괴 담론이 나오고 기존 학교교육 문제와는 다른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지만, 그에 대한 답을 학교교육은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과거성장 중심의 사회에서 소수의 학생들만이 성공하는 구조, 그리고 다수의 학생들이 학교에서 실패하고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를 가진 일자리를 갖는 구조는 복지국가에 맞는 교육이 아니다.
지난 20년간 학교교육은 복지국가, 즉 모든 국민의 행복을 목표로 하는 국가에 맞는 교육 청사진을 그려내지 못했다.
그 결과 현재의 학교는 모두가 만족하지 못하는 곳이 되어버렸다. 학교교육에서 성공하지 못한 학생들, 즉, 사교육을 받지 못하고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한 학생들에게 학교는 관심이 있는가? 학교가 오직 대학 진학만을 위해서만 기능한다면 학교는 제 역할을 하는가에 대한 성찰이 매우 부족하였기 때문이다
21세기 복지국가에서 한국교육은 모든 학생들이 교육을 통해서 건강한 시민(주체로서의 개인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성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국민 모두가 행복하기 위한 교육을 목적으로 한다면 학교부터 행복해야 한다. 그런데 학교의 행복도는 매우 낮은 분위기다. 학생들이 그러하고 교사들도 가능한 학생들과의 대면을 기피하는 경향이 눈에 띈다.
학생과 교사가 진심으로 만나지 않고 소통이 안 되는 공간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
이처럼 교사가 행복하지 않다면 학생들의 만족감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이제 학교는 공부 잘 하는 학생들만의 대접받는 공간에서 탈피해야 한다.
교육은 모든 국민의 의무이자 권리이기 때문이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 공부를 못하는 학생, 딴생각이 많은 학생, 아무 생각이 없는 학생 등 다양한 개성들이 모인다.
이중 문제가 있고 어려움이 클수록 더욱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교사의 마음이 지금 교육 현장에 필요한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