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지역 시민단체들의 초청으로 강연을 하는 경우들이 있다. 재작년에는 한 지역에서 민주시민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선거제도에 대한 강의를 요청을 받았다.
평일 오전에 진행된 프로그램인데도, 다양한 분들이 오셨다. 선거제도에 대해 설명을 하니, ‘처음 듣는 얘기인데, 선거제도가 이렇게 중요한지 몰랐다’는 분들이 있었다.
선거제도뿐만이 아니다. 지역에서 지방자치나 주민자치를 주제로 강연을 하면, 대한민국 지방자치의 역사에 대해 설명을 하게 된다. 그런데 1950년대에 이뤄졌던 읍ㆍ면 자치와 동장 직선제에 대해 강의를 하면, ‘우리에게 이런 역사가 있었는지 몰랐다’는 얘기를 하시는 분들이 많다.
이런 자리에 가면 숫자는 많지 않아도 진지하게 경청하는 주민들을 만날 수 있다. ‘별 기대없이 왔는데, 의외로 유익하고 재미있다’는 얘기를 하는 분도 있다. 사실 민주주의나 정치제도에 관한 얘기는 딱딱한 주제이지만, 우리 삶에 너무나 큰 영향을 미치는 주제이다. 우리가 부딪히고 있는 경제위기, 불평등과 양극화, 고령화와 인구감소, 남북관계와 외교문제 등 모든 문제들은 결국 민주주의 제도와 정치를 통해서 풀어야 하는 문제이다. 따라서 주권자라면 누구나 이런 교육을 쉽게 접할 수 있어야 한다.
주권자 역할을 제대로 하려고 해도 정보가 필요하고 학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주권자들이 알아야 할 정보들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제대로 제공해주지 않는다. 학교 교육에서도 그렇고, 지역사회에서도 그런 편이다. 지방자치단체마다 각종 ‘주민대학’‘00학교’같은 프로그램들을 하지만, 교양이나 취미 중심인 경우도 많다. 물론 그런 프로그램들도 필요하지만, 민주주의가 제대로 되려면 주권자들에게 민주주의와 정치제도에 대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지금 국회에서는 선거제도가 뜨거운 감자인데, 정작 주권자들은 언론을 통해 피상적인 정보만 접할 뿐이다. 선거제도에는 다수대표제와 비례대표제라는 양대 축이 있고, 그 중 어느 것을 택하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정치구조가 바뀌는 중요한 문제이다. 다수대표제는 양당제로 수렴되는 경향이 있고, 비례대표제는 제대로만 하면 자연스럽게 다당제 구조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양당제냐 다당제냐는 정치구조의 기본 틀이고, 그중 어떤 구조가 만들어지느냐에 따라 정치의 양상이 완전히 달라지는 문제이다. 그래서 스위스, 뉴질랜드같은 국가들은 국민투표를 거쳐 선거제도를 선택하기도 했다. 그만큼 중요한 문제인데, 대한민국의 주권자들은 그에 관해서 제대로 된 정보를 접할 기회가 부족한 것이다.
또한 2020년부터 투표권 연령이 만18세로 되었기 때문에 청소년들에 대한 주권자교육은 시급한 과제이다. 당장 내년 총선에서도 생애 첫 번째 투표를 하는 ‘신규 유권자’들이 상당수 있다. 그런데 과연 이 유권자들에게 선거제도와 투표방식, 표의 계산방식, 각 정당의 정책적인 차이 등이 제대로 교육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아직까지 선거제도가 확정되지 않은 것도 문제이지만, 제대로 된 주권자교육을 할 수 있는 체계와 준비도 미흡하기 때문이다.
정치가 비교적 안정되고 국민들의 삶의 질이 높은 정치선진국일수록 정치교육, 주권자교육을 중시한다. 시민들이 정치에 대해 제대로 알고 참여해야 민주주의가 제대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교육의 질이다. 듣는 사람들이 졸리는 교육이 아니라, 생생하고 토론이 가능한 교육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이런 주권자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민주시민교육에 관한 조례가 제정된 지방자치단체들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교육의 양이나 질이 턱없이 미흡한 상황이다.
이런 주권자 교육의 부족이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어려움을 겪는 한 원인이기도 하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수록 가짜뉴스에 휩쓸리기 쉽다. 진영논리에 사로잡히기도 쉽다. 정치를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의견이 다른 상대방을 제거하는 권력적인 작용으로 잘못 인식하기가 쉽다.
그런데 지금은 국가에 제대로 된 주권자교육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런 점에서 지역에서부터 주권자교육이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뜻있는 지방자치단체나 교육청이 학교에서부터 주권자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지역사회에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주권자교육의 장을 만들어나가는 것도 필요하다. 마침 내년 4월 총선도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