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과 인구 패러다임 변화로 전국적으로 폐교, 폐창고 등 폐시설이 해마다 늘고 있는 가운데 지자체마다 활용방안을 놓고 고민이다.
광양지역도 도시재생과 문화도시조성 사업으로 폐시설 활용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 보다 필요한 가운데 때마침 한국언론진흥재단 광주지사에서 ‘오래된 공간, 지역명소로 귀환하다’라는 현장연수가 지난달 28일부터 30일까지 2박 3일간 진행됐다.
폐교와 창고, 상업시설 등 버려지고 잊혀져가는 공간이 지역문화거점공간으로 변화하는 현장에서 공간재생전문가와 현장 활동가들의 강의를 들으며 광양의 폐시설은 어떻게 활용되어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편집자 주>
▷ 전북 고창 책마을 해리
한 사람의 열정이 이룬 문화공간의 정수
이름도 예쁜‘책마을 해리’를 찾아가는 길은 구불구불, 가도 가도 논과 밭, 산만이 차창 밖으로 펼쳐졌다. 대체 누가 이런 오지에 도서관을 만들어서 전국의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것일까? 궁금증이 더해지자 호기심도 커졌다.
1939년 세운 고창의 나성초등학교는 한때 900명이 넘는 학생들이 꿈을 키우던 곳이었으나 저출산, 이농현상으로 학생 수도 줄었고 결국 2001년 폐교 됐다.
국문학을 전공하고 영상문학 전문가로 전국을 다니며 강의와 심사위원을 하며 마을공동체 전문가로 알려진 이대건 씨가 전북 고창 해리 월봉마을‘책마을 해리’촌장이다.
이 촌장은 증조부가 세운 나성초등학교가 기능을 잃고 폐시설이 되는 것이 안타까워 서울의 삶을 접고 가족과 함께 고향으로 내려왔다. 26년 동안 책을 재산으로 삼아 온 이대건 촌장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은, 폐교를 도서관과 출판사로 바꾸는 것이었다.
스스로를‘폐교에서 농사짓는 고창의 해리포터’라고 말하는 이대건 촌장의 열정이 이룬‘책마을 해리’는‘누구나 책, 누구나 도서관’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기증받은 17만권의 책이 숲을 이루고 있다.
책마을 해리는 서가에 꽂힌 책들을 읽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읽고 쓰고 펴내는 출판캠프, 기획부터 보도자료까지 써보는 청소년인문출판학교, 지역을 한권의 책으로 펴내는 로컬콘텐츠출판, 어르신들과 아이들의 마을학교, 자서전 학교, 학교 교사 이야기를 담아내는 교사 책 학교, 청년의 고민과 우울이 빛나는 청년 책학교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지역과 어울려 서로 읽고 쓰고 펴내는 책 공동체로 자리잡았다.
이 작은 시골 오지 책마을 해리에서는 한국지역도서전, 책 영화제를 비롯 매월 ‘부엉이와 보름달’이라는 작은 축제를 열어 마을주민들과 방문객들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책마을 해리는 마을신문을 만들어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등 한 사람의 열정이 쓸모 없게 될 폐교를 차별화된 문화공간으로 바꿔 놓았다.
▷ 오래된 카세트테이프 공장이 전주 팔복예술 공장으로
카세트테이프가 늘어나 노래가 늘어지자 냉동실에 테이프를 넣는 모습. 몇 년 전 인기를 끌던 한 방송사의 드라마에 나오는 장면이다.
디지털 음원으로 모든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지금, 카세트테이프는 물론 CD도 MP3도 쓰임을 잃어버린 도구가 됐다. 잃어버린 도구들을 만들던 사람들과 공간들도 추억의 산물로 남아있을 뿐이다.
전주 팔복동에 가면 그 흔적이 남아있다. 공장이 폐쇄되고 27년 동안‘공장속의 섬’으로 남아있던 한 카세트테이프공장은 건물자체를 예술작품으로 다듬고 내부를 지역예술가들의 레지던지로 꾸몄다.
88년 노조 설립 후 1990년 폐쇄된 카세트테이프공장은 한때 500명의 노동자 중 450명이 여성이었다고 하는데 여성들은 화장실 4칸을 나눠 쓰며 밀려드는 주문에 납품기한을 맞추려고 야간작업까지 했다고 한다.
팔복예술공장을 관리하는 전주문화예술재단 관계자는“재생은 과거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골격이 튼튼한 1970~80년대 건물을 그대로 남겨놓았다”고 말했다.
5시만 되면 적막이 흐르는 팔복산업단지에서 팔복예술공장은‘음악’대신‘기억’을 재생하며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