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혀있는 광양의 독립운동 ④ 광양읍에서 옥룡•진월까지…요동쳤던 3.1운동의 기운
묻혀있는 광양의 독립운동 ④ 광양읍에서 옥룡•진월까지…요동쳤던 3.1운동의 기운
  • 김영신 기자
  • 승인 2019.02.15 17:33
  • 호수 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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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룡 운평리 서당‘현룡재’10대 소년 7명…‘백절불굴 기개진월 임태일, 무적도 시회에서 만세 부르려다 실패,‘체포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지역에서도 광양의 3.1운동 다시 알기 움직임이 일고 있다. 후대에 알려지지 않고 묻힐 뻔한 진상출신 황병욱 선생과 1929년 4월에 있었던 제2의 3.1운동 주역 중 태인동 출신 최한원, 최백근, 최영근, 김태수와 진상 출신 김무일 등 애국지사들의 이름과 활약상이 알려지고 있다. 이 가운데 한 단체가 오는 4월1일, 5일장에서 광양의 3.1운동을 재연하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광양신문은 지역신문의 역할을 다하고자 광양의 3.1운동 역사를 돌아보고 독립유공자에 추서되지 않았지만 광양의 독립운동에 참여한 인물들을 찾아 내 독자와 시민들에게 알리고자 한다. <편집자 주>

 

△진월면 망덕 무접섬 - 진월면 청년 임태일이 1919년 4월 15일‘시회(詩會)’가 열리는 무적도(무접섬)에서 만세를 부르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1919년 4월 1일 서경식, 정귀인, 박용래 등의 광양읍내에서의 만세운동이 전해지자 민심은 감동했고 요동쳤다.

옥룡면 운평리 서당‘현룡재’학생 이기수, 김영석, 최준수, 서성식, 서찬식, 박병원, 나종길 등 15~16세의 소년들은“선배들이 독립만세를 부르다 왜적들에게 끌려갔는데 우리가 어찌 앉아서 공부만 할 수 있느냐?”며 이튿날인 4월 2일 태극기를 만들어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부르며 읍내를 향해 가다 발각 되어 심한 폭행을 당했다.

△옥룡중학교에 서있는 7의사 기념비 - 옥룡면 운평리 서당‘현룡재’학생 이기수, 김영석, 최준수, 서성식, 서찬식, 박병원, 나종길 등 당시 15~16세의 소년들은‘백절불굴’의 기개를 보여줬다.

일제의 심한 폭행에도 불구하고 소년 이기수는“기어 다니는 어린애도 어머니를 부를 줄 안다. 내 비록 어릴지라도 내 나라를 위해 국치(國恥(국치))를 씻고자 한 것이다. 너희들의 법이라는 것을 내 어찌 겁내리오”하며 일제의 협박에 태연자약 했다.

김영석도“남의 나라를 강탈한 강도 놈들이 무슨 잔소리인가? 내 한 몸이 두 동강이 되어도 마음은 한 마음 뿐이라”고 말해 백절불굴의 기개를 보여주었다.

운동의 기운은 진월면까지 이어졌다. 4월 15일에는 진월면 선소리 무적도(지금은 무접섬이라 불림)에서 시회(詩會)를 이용하는 만세운동계획이 있었다. (무적도는 일대의 선비들이 1년에 몇 차례씩 시회를 가져오고 있었다.)

진월면 송금리 청년 임태일은 무적도에서 시회가 열린다는 말을 듣고 직접 시회에 참가, 모인 문사와 학도들을 촉구해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심하고 전날인 14일 동리 서당에서 수명의 생도들과 함께 태극기 2장을 그려 월길리 서당으로 가서 학생들에게 조선독립을 외칠 것을 촉구했다.

15일이 되자 임태일은 태극기를 꺼내들고 만세를 부르려고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는 정보를 입수한 일제에 의해 태극기를 빼앗기고 만세도 부르지 못한 채 검속 당하고 말았다.

이후에도 광양의 3.1만세운동, 조국의 독립을 향한 열망은 멈추지 않았다.

다압면 출신으로 하동에서 교직생활을 하다 일진회의 반역적 행위에 분개해 교직을 사퇴한 박제웅은 국내의 만세운동이 국권회복의 성과를 거두지 못함을 보고 중국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요원으로 활동할 것을 기도했다.

박제웅은 임시정부로부터 충청남북도 및 전라남북도에 임시 지방 교통국 설치와 임무와 대동단으로부터 군자금 모집의 임무를 맡고 귀국, 나창헌, 이재연 등과 연락해가며 광주·대전 등지에서 활약했다.

광양을 빛낸 자랑스러운 독립운동가들은 김상후, 정귀인, 정성련, 박용래, 서경식 등 광양 5의사와 김석용, 박용수, 김영호 광양읍의 3의사, 이기수, 김영석, 최준수, 서성식, 서찬식, 박병원, 나종길 등 옥룡 7의사로 이들은 시지나 공훈전자사료관 등 자료에 나와 있는 인물들이다.

이 중 독립유공자에 추서된 인물도 있지만 태인동 출신 최한원, 최백근, 최영근, 김태수와 진상 출신 김무일 등은 최근 하동역사문제연구소에서 찾아냈고 진상면 황병욱은 5의사중 한 사람인 김상후 의사의 4대손이 발굴해냈다. 지역에서도 조명을 통해 이들의 고귀한 업적을 기리고 유공자에 추서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 -다음호에 계속-

정리=김영신 기자

 

(*이 기사는 공훈전자사료관, 국가기록원, 광양시지 등의 자료에서 발췌했으며, 지역의 역사에 관심 있는 아동문학가 김미정 씨의 수고가 있었음을 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