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문화연구회가 만난 사람<36> 인생 3모작을 사는 영원한 학생 꼰대 이야기
광양문화연구회가 만난 사람<36> 인생 3모작을 사는 영원한 학생 꼰대 이야기
  • 광양뉴스
  • 승인 2015.03.06 21:28
  • 호수 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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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평론가 강석태 선생님

 


“소크라테스가 왜 사형을 당했다고 생각해요?” 라고 강석태 선생은 대뜸 질문을 던진다. 선생의 사무실 겸 사재를 가득 메운, 얼핏 봐서 7천 권은 됨직한 영어와 일본어, 한국어 서책들에 눈이 팔렸던 필자가 뜬금없는 질문에 멈칫하자 “소크라테스는 만나는 사람들을 붙들고 닥치는 대로 온갖 사물에 대해‘왜(Why)’라고 질문을 던졌어요.

‘왜 당신은 밥을 먹느냐? 왜 당신은 일을 하느냐? 왜 당신은 신을 섬기느냐?’는 질문으로 사람을 붙들고 늘어진 겨죠. 이런 문답식 교육에 사람들은 점차 싫증을 느꼈지요.” 라고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시민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것은 그가 끊임없이 던진“Why~?”때문이라고 하셨다.

 


사람은 누구나 학생으로 살다 죽는다

선생은 교직에 있던 분이라서 남달리 교육에 관심이 많으시다. 미국에서 30여년을 살다보니 미국의 교육방식 중 좋은 것을 본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신 것 같다. 그 교육 방식이 바로 소크라테스의 문답식 교육이라면, 우리나라의 교육은 학생이 아닌 교사와 교과서가 주체라고, 학생을 교재나 교사의 말을 달달 외우는 기계로 만들어 내는 일종의 공장 같은 풍토가 바뀌지 않았다고 한탄하셨다.

진도 앞바다에서의 세월호 참사도, “가만히 있으라”는 선원의 지시를 지킨 것이 수백 명을 희생시킨 원인 중의 하나라면, 그 죄가 누구에게 있는가. 강의를 듣게만 하는 수동적 교육방식과 교육정책이 아니겠냐고 열변을 토하셨다.

“물음표를 보세요. 여기에 요렇게 눈, 코, 입, 귀를 달면 바로 사람 옆얼굴이지요. 이건 정말 기막힌 서양의 발명품이자, 인류의 문화적 유산이 아니겠어요? ‘Why’를 가르치지 않고‘어떻게 (How)’ 라는 것만 머릿속에 쑤셔 넣으려는 교육, 선생을 그대로 모방하는 교육이 ‘청출어람’을 막고 있어요.

교육의 궁극적 목표가 SKY대(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에 입학하는 것이 보편화된 판국이니, 지방대 나오면 갈
곳 없는 현상이 행복하지 않은 사회를 말해주지요. 1년에 딱 한 번 치르는 수능시험으로 수십만 명 학생의 등급을 매기는 것은 부당하죠. 7~8번 시험 칠 수 있는 패자 부활의 기회를 주어야 해요. 우수한 학생을 뽑아 가르친 명문 대학에서 아직까지 노벨상 하나 나오지 않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건가요?”

이어서 선생은 우리네 조상님들의 신기한 인생관 내지 교육관을 피력하셨다. 예부터 망자를 가리켜(남자인 경우) ‘학생’이라 했다. 아버지 제사를 모시면 그 신주를‘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 즉 현고는 아버지를 나타내고‘학생’은 신분이다.

아버지가 자헌대부 벼슬을 하셨다면 ‘현고자헌대부부군신위’라 하고 서민으로 살다가 죽으셨으면 모두‘학생’ 대접을 받는 것이다. 설사 기역자 뒷다리도 배우지 못하고 농사만 짓다 돌아가셨어도 역시 학생 신분 대접을 받는 것이다.

학생의 한자는‘배울 학(學))’과 ‘날 생, 또는 삶 생(生))’이다 즉‘삶 자체를 배우는 자’라는 뜻이 담겨 있다. 선생은 단호하게 말씀하신다.“교사로 평생을 살다 죽어도 역시 신분은 학생이죠. 선생은 없습니다 .”

교사의 임무는 아이들의 행복한 삶을 인도하는 것.

이처럼 교사나 학생이나 다 같이 학생 신분이므로, 교사는 학생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탓에 아동 학대라는 문제도 발생한다고 교사들의 폭행에 대해서도 엄하게 꾸짖으셨다. 또한 아이들의 건강을 소홀히 하고 맹목적인 암기식, 주입식 교육에 학원 공부를 더하니 아이들의 장래가 걱정이라고 하셨다.

흔히 교육의 3대 목표를‘지덕체(智德體)’라 하는데, 그 순서가 잘못이란다. 이것을 ‘체덕지(體德知)’의 순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드는 것인데 아침밥을 챙겨 먹이지 못하는 부모, 시간에 쫓겨 굶으면서 공부해야 하는 아이들, 잠을 자지 못해 책상에 엎드려 자는 학생이 태반이라는 수업 풍경 등이 모두‘지덕체’의 망령에 사로잡힌 탓이란다.

소크라테스의 문답식 교육이 살아나야 하고, 미국이나 덴마크, 스웨덴 등의 선진화된 교육제도를 본받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하신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건도 비교육적인 수학여행이란 것에 일말의 책임이 있지 않느냐고, 평소에 아이들을 학교라는 감옥에 가두어 두었다가 1년에 한 번 바깥바람을 쐬게 하는 것이 무슨 교육적 효과가 있는지 형식적, 전시효과를 노리는 것 같은 교육행사는 집어치우는 게 옳다고 하셨다.

선생의 교육관은 철두철미 아동 중심, 인권 중심인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 태어났고 그렇게 살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아이들의 삶은 특히 ‘행복한 삶’이어야 한다고, 행복론을 펼치셨다.

 


사교육과 대안학교에 대해

사교육과 대안학교에 대해필자는 선생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나라의 사교육과 대안학교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했다.

“사교육은 없어져야 하는데 없어질 수는 없어요. 학교졸업장이란 것은 그 다음의 상급학교에서 수학할 자격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죠. 졸업장을 햇수만 채우면 수여하는 따위로 남발하지를 말고, 몇 해든지 유급시켜서 확실한 실력을 길러 준 후에 졸업장을 수여한다는 구상은 왜 못할까요? 내가 만일 문교행정의 수반이라면 한 번 시행해 보고 싶어요.”

“대안학교는 많이 생길수록 좋다는 생각이에요. 여기저기 버려진 폐교를 활용하여 대안학교를 만들 수 있다면 난 거기서 학생들과 생활하고 싶어요. 경남 거창의 거창고등학교가 자립형학교로 유명한데 이 학교의 중건자이신 (고)전영창 선생님께서 작성하신 직업선택 10개조는 내가 특별히 관심을 갖는 것이죠.”

그러면서 자신의 스마트폰에 올려놓은 10개조 사진을 보여 주셨다. 그 중 필자는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가 인상적이었다. 이 직업선택 10개조가 마음에 들어 자신 소유의 국제문화교류회 건물 2층에 직접  설립하고 추진 중인 광양시민대학에 걸어놓으셨단다.

광양시민대학을 세계 최소의 대학이라고 자랑도 하셨다. 거창고교를 키운 (고)전영창 선생님의 “학교란 인재 양성 교육이 아닌, 인격 교육의 장이 돼야 한다.”는 주장에 100 퍼센트 공감이라고 덧붙이셨다.

배움이 즐거운 3모작의 꼰대 인생

선생은 진월면 망덕리 장재마을에서 태어나 진월초등학교를 졸업하였고 진주사범학교에 들어갔다. 고등사범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일제통치하에서 폐지된 영어를 독학하였다. 해방을 맞고 나서 초등학교 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평택에서 교사를 하며 보성전문학교(고려대 전신)에 입학했으나, 6.25사변으로 귀향했고 고향에서는 중고교 영어교사로 근무하면서 지방대학을 마쳤다.

한 때 교직을 떠나 상경하여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5.16 쿠데타로 직장에서 쫓겨났고 전두환 등 군사정권을 피해 미국 이민길에 오르게 되었다. 미국에서 뉴저지 주 북부지역 한인회장을 지냈고, 김대중 대통령 후보 후원회장을 역임하였다. 귀국 후에는 참여연대와 참교육학부모회 등에서 활동하면서 교육교양잡지 ‘꿈나무’를 발행하였다.

강석태 선생은 올해 89세이다. 선생은 자신은 3모작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한국에서의 50년, 미국에서의 30년, 다시 한국에서의 현재 생활에 의미를 부여한다. 고향을 국제적 위상이 높은 도시로 성장시키는 데 일조하고자 (사단법인)광양국제문화교류회를 결성하는 등 쉬지 않고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장차‘꼰대 인생 3모작’이란 책도 낼 생각이란다.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고 기대 된다. 장수의 비결을 물으니 끊임없이 공부하는 것이라고, 죽는 날까지, 아니 죽은 후에도 영원히 ‘학생’이니 배우는 것만큼 재미있는 게 어디 있냐고 하신다.

요즘은 무위사상에 매료되어 노자와 꼰대친구로 지내고 계시단다. 3월부터는 세계 최소의 대학인 광양시민대학을 열어 강의 할 계획이라고 손수 쓰신 계획표도 보여주신다.

“저도 배우러 올게요”라며“마지막으로 한 말씀 더 해 주세요”했더니“박 시인은 시 쓰는 사람이니 좋은 시를 많이 써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길 바란다”고 가슴 뭉클한 말씀을 해주셨다. 선생님께서 항상 건강하게 학생으로 계시길 바라며 돌아오는 길, 가슴 깊은 곳에서 시처럼 바람처럼 매화 피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박옥경 (광양문화연구회원,광양문인협회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