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문화연구회가 만난 사람<26>농사는 양심이다.
광양문화연구회가 만난 사람<26>농사는 양심이다.
  • 광양뉴스
  • 승인 2014.12.22 09:55
  • 호수 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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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 농사꾼 황영기 씨 -

싱그러운 초록 숲

 

시장이나 마트에서 농산물을 살 때면, 농약에 대한 불신 때문에 마음이 찜찜했던 기억을 주부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시댁이나 친정에서 농사를 지어 먹거리를 보내주는 집은 덜하겠지만, 그린 푸드니 친환경이니 유기농이니 하는 가게들을 보면 내가 먹고 있는 것들은 안전한지, 도대체 무엇을 먹어야하는지 하는 고민들을 한 두 번은 해보았을 것이다.

옥룡면에서 비닐하우스 농사를 짓는 쉰다섯 농부 황영기씨. 처음 황영기씨를 만난 것은 백운요 김정태 도공과 가벼운 산책을 나선 길에서였다. 길 끝에 황영기씨의 비닐하우스가 있었고, 차 한 잔 얻어 마시며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다가 예사롭지 않은 농사철학을 들으면서, 이 분을 취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바깥 날씨는 엄동설한인데, 비닐하우스 문을 밀고 들어서니 싱그러운 기운이 마치 봄 나라에 온 듯하다. 적당한 습도와 온도, 눈앞에 가득한 초록 넝쿨이 저절로 심신을 무장해제 시킨다.

황영기씨가 농사를 지은 지는 16년 남짓 되었는데, 원래는 장비 기사였다고 한다. 경남 사천 사람으로, 광양제철이 들어서던 무렵 광양에 와서 벌써 30여 년 째 광양 사람으로 살고 있다. 처가는 옥룡면 선동이다. 선동 처녀 김효순(52)씨에게 장가들어 옥룡면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옥룡이 참 좋은 곳이에요. 볕바르고, 안온하고, 물 좋고 다 좋은디, 딱 하나, 논에 꽃을 심응께 안 좋아. 비닐은 썩어 없어지려면 50~70년이 걸리고, 제초제를 뿌린 땅은 복구가 되려면 50년 정도가 걸려요. 게다가 꽃나무를 분(盆)으로 떠서 내면, 흙이 한 10cm 정도는 파여진단 말이지.”

“꽃논을 하게 되면 자갈논이 되어부러요.” 김효순 씨가 옆에서 거든다.
“흙 다 떠 가불지, 땅 다 베려불지. 비 오면 윗물이 아래로 흐르니 약을 안 쓰는 논도 베려분당께요.”
요즘은 새벽 4시 반에 출근해서 밤 아홉시나 열시 쯤 퇴근한다.

“울 집 사람도 나 만나고 농사지었어요. 여자가 하기에는 힘에 부치는 일이지요”
'애들 다 키우고 나면‘힘 알아서 쬐끄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내 자식한테 먹이는 딱 그 마음으로

농사라는 것은 내 자식한테 반찬해주는 딱 그 마음으로 지어야한다고 황영기씨는 말한다.“다른 일도 그렇지만, 특히 농사는 양심을 걸고 해야 하는 일이에요. 친환경 좋지요, 하지만 인증을 받고, 안 받고 그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 양심을 지키는 일이란 말이요.”

아이엠에프 때, 하던 일이 부도가 나고 농사를 짓기 시작하였다. 농사지은 지 4년인가, 5년 만에 새농민상을 수상하였다. 새농민상 수상자가 광양에 한 서른 명 남짓 밖에 되지 않으니 꽤 어려운 상을 받은 것이다. 머리가 아주 좋은 것 같다고 말하자, 엄청나게 노력하였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미니 파프리카, 미니 오이, 베이비 오이 등 듣도 보도 못한 작물들도 재배하였다.

건설회사 다닐 때보다 지금이 훨씬 마음이 편하다는 황씨. 몸은 고되지만, 땅을 밟고 흙을 만지고 사는 것이 편하고 즐겁다고 한다.

올해는 애호박 농사를 짓고 있다. 비닐하우스 세 동, 1400여 평에 호박 넌출이 가지런히 벋어 푸른 숲을 이루고 있다. 서쪽 면에 해가 붉은 빛을 드리운다. 올해 첫 수확하는 애호박이 손수레에 가득하다. 첫 물이라 애호박은 앙증맞은 크기이다. 세 물을 따 내면 정상적인 크기가 된다한다.

 “박사들은 암껏도 아니랑께요. 농사짓는 사람들이 젤 영리해, 농사기술이 젤 어려워요.” 잎과 잎이 나오는 그 사이를 한 마디라 할 때, 마디 사이가 너무 넓으면 호박 넝쿨 키가 너무 자라게 되니 그만큼 사람 손이 많이 가게 되고, 또 마디 사이가 너무 좁으면 호박이 잘게 열리니, 마디 사이를 넓지도 좁지도 않게 유지하는 것이 기술이다.

“그게 에롭당게요. 허기는 만사가 다 에롭소.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이 없소.”

 


액비와 영양제
 
무슨 작물이든 집단재배를 하게 되면 병충해에 취약할 수밖에 없고, 농약이나 비료를 하지 않고는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인데, 이곳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 것일까? 가장 중요하면서 가장 궁금한 질문을 해 보았다. 농약이나 비료는 전혀 쓰지 않는다고 농부는 잘라 말하였다.“벌레들이 도망가삐리는 액비를 만들어 쓰고 있어요.”

목초액과 마늘, 청양고추를 2~3년 동안 발효시켜 쓰는데, 균을 잡기 위해서는 황과 황토 배합물을 쓴다고 한다.

영양제는 설탕과 칡순, 대나무순, 미나리 등을 1:1 배합으로 절이는데, 원액 한 말 정도면 1년 농사가 거뜬하다고 한다. 원액을 희석시키기 위해서는 남해대교 아래, 수심 30미터 정도에서 길어 올린 깨끗한 바닷물을 사용한다.

바닷물보다 더 좋은 것은 미네랄이 풍부한 간수라고 한다.“이렇게 하면 병도 잘 안와요.”
하우스 안의 공기가 깨끗한 것은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건강한 농사 
호박꽃이 일일이 다 반쯤 뜯겨져 있다. 왜 그런가 싶어 물어 보았더니, 수정을 하고, 수정했다는 표시로 꽃잎을 뜯어놓은 것이라 한다.

벌을 통해 수정을 해보려 하였으나 번번이 실패하였다.“벌이란 놈들이 여남은 마리가 한 꽃에 들어간단 말이지. 근디 호박꽃은 하루 만에 아물어 버려. 꽃이 자물세분게 벌이 못나오고 꽃 속에서 죽어 불더란 말이요. 그래서 손으로 일일이 수정을 해줘요. 아침 8시쯤 수정을 하는데, 18도 이상이 되어야 수정이 잘 됩니다.

수정이 완전히 된 다음에는 꽃을 따줘야 해요. 꽃술이 대에 닿으면 바로 물러 버리거든요. 이것이 참 보통 일이 아니요. 하루 한 5시간은 환기를 해야 하는데, 겨울에도 최소 두 시간은 환기를 해줘야 해요. 기름으로 온도를 유지하려면 한 해, 한 오천만원 정도가 들어가는데, 전기는 1200~1300만원 정도가 들어요. 단 전기시설은 초기 투자가 2억 1650만원 정도가 들어야 하니 5년은 넘어야 수지타산이 맞아 들어가지요.”

황영기씨 이야기를 들으면서, 감탄했던 부분이 그런 점이다. 수첩을 보지 않고도 숫자를 줄줄 말하는 남다른 기억력 말이다. 자기 일에 열정을 가진 사람의 능력일 것이다.

마침 이야기 중에 중국과 FTA가 체결되었다는 문자가 들어오는 모양이다. “무슨 작물이든 수입이 좋지 않기는 하지요. 신선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약품을 쓸 수밖에 없으니까, 무엇이든 막 따서 바로 먹는 것이 제일 맛있고, 영양가도 좋지요. 그런 점에서 저는, 농사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먹지 않고 살 수는 없지 않소.”

건강한 밥상이 건강을 지킨다. 건강한 농사를 짓는 황영기씨 같은 농사꾼이 참 고마운 이유이다. 건강한 작물, 건강한 땅을 생각하며 농사를 짓는 농사꾼이야말로 천하의 근본을 지키는 사람이라 할 것이다.               

정은주 광양문화연구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