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문화연구회가 만난 사람<7>아름답고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
광양문화연구회가 만난 사람<7>아름답고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
  • 광양뉴스
  • 승인 2014.07.28 09:39
  • 호수 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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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영동 벽화마을의 꿈을 키워가는 이현숙 씨

이현숙 씨
벽화를 그리는 그녀의 화두는‘소통’이다. 선과 면과 색이 벽이라는 물체를 만나면 마음과 마음이 연결된다.
골목과 골목이 연결되고 길과 길이 연결되고 가장 낮은 곳과 가장 높은 곳이 연결된다. 그래서인지 벽화가 있는 곳에는 날개를 그린 벽화가 꼭 있다.

그녀는 날개 그리기를 너무 싫어했다. 너무 흔하디흔한 그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소통의 통로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녀는 자신의 갤러리 카페 벽면에 날개 그리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지인들이 가끔 질문한다. 벽화 그리면 돈 많이 벌지? 글쎄 벽화를 그리고 제대로 돈을 받고 해본 적이 거의 없어 대답하기 힘들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그저 웃는다.

갤러리에 전시된 그림은 관객과 소통하기에는 벽이 높아 몇 몇 사람들의 향유물로 여겨지고 있기도 한 요즘, 그녀는 누구와 함께 어울려도 거리감이 없고 어디에서나 봐도 친근감이 묻어나는 생활 속의 거리예술을 하고 싶다는 생각, 소통하고 나누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하나의 책임감마저 느끼고 있다.

화가들의 작은 발표 공간 갤러리 '람카페’
카페는 광영중학교 정문 앞에 있다. 카페 이름은‘보람’,‘아람’ 두 딸의 이름 끝 자를 따서 ‘람카페’라고 지었다.
카페 입구에는 화분과 꽃나무를 가득 들여놓고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하는 작은딸 보람이가 만든 어여쁜 나상을 세웠다. 필자가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람이가 활짝 웃으며 필자가 좋아하는 카푸치노를 내놓았다.

처음에는 할 일 많은 딸을 바보로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직장 다니다가 휴가 온 딸을 엄마 편하자고 카페에 눌러 앉게 했기 때문이다. 이웃 분들은 갤러리 카페라 어려워했다고, 그러면서도 궁금한지 문을 열고 들여다보기도 하시고, 화분에 꽃 심는 법을 가르쳐 주기도 하시고, 만두를 빚어 와서 먹어 보라고도 하셨단다.

워낙 손님이 없는 곳이라 걱정을 하시는 분도 계셨다. 그렇지만 이렇게 조금씩 얼굴을 익히고 함께 고민하다 보면 삶이 묻어나는 예술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겼다.

요즘은 입소문을 타고 찾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고 있단다. 작품을 감상하고 전시에 대해 이야기도 나누고 또 가장 큰 무게를 두고 있는 벽화 이야기도 나눌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고 그녀는 해맑게 웃는다.

 ‘람카페’는 지난 2월 초에 문을 열었다. 벽에는 빙 둘러 처음 보는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작가도 그림도 소재도 필자에게는 생소하지만 의욕 있는 작가들에게 발표 공간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소통의 통로를 마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작품을 전시하고 싶으면 예약이 필수이다. 필자도 시화전을 해볼까 한다고 농담 삼아 말했더니 그녀는 활짝 웃으며 대환영이라고 했다.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
그림이 너무 좋아 그녀는 목포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에 진학해서 2012년도에 졸업했다.  늦깎이 공부였지만 그녀의 끼에 딱 맞는 공부였다. 남편이 외조를 너무 잘 해 주어서 가능한 일이었다며 개구쟁이처럼 웃는다.

벽화는 언제부터 시작했냐는 물음에 그녀는 할 말이 많다. 우연히 대학시절 교수님의 소개로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때는 그저 자기가 그린 그림이 커다란 벽에 있는 게 좋았고, 오고 가는 사람들이 자신의 그림을 보는 것이 좋았고, 한 팀을 이루어 작업하는 친구들이 있어 외롭지 않아 좋았다고 한다.

7년여를 벽화 그리기 봉사활동을 하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최고의 정성을 쏟았다. 그야말로 물감 값, 인건비 한 푼 안 받는 봉사였다. 언제까지 봉사만 할 거냐는 남편의 핀잔에도 할 수 있는 데까지라고만 했다. 남편은 고맙게도 응원해주며 그녀가 하는 일을 틈틈이 도와주었다.

정회원들이 있지만 워낙 많은 손이 가는 일이라 필요할 때마다 같이 벽화 작업에 참여해주는 여러 사람들이 있다.

회원이 좀 더 있었으면 하지만 처음에는 달려들었다가 실외에서의 벽화 작업이 고달프고 힘들고 더구나 이익이 창출되지 않는 일이어서 금세 손을 놓고 말았다. 너무나 큰 노동력에 비해 함께 한 사람들에게 그녀가 해 줄 수 있는 건 식사 한 끼였다.

벽화를 그릴 때마다 매번 다른 사람들로 교체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참 슬픈 일이었다고 지금도 그런 사정이 별로 나아진 게 없다고 한다.

 2012년 몇몇이 모여 다른 도시에서 만들어가고 있는 문화 예술 활동에 대해 이야기 하고 “우리도 뭔가 해야 한다” 는 말들이 오갔다.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뭉쳐 우리가 꿈꾸고 상상해 온 일들을 현실로 만들어가자고 마음을 모았다. ‘큰 그림’은 벽화라는 의미 외에 여러 사람들이 함께 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가장 큰 의미는 역시 소통이다.

현재‘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광영이라는 곳에 주목하는 이유는 광영은 공공미술의 대상이 될 만큼 낙후되고 열악한 동네의 모습이라고 하기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부촌이라고 하기에도, 완전 달동네라고 하기에도 어정쩡한 곳이기 때문이다.

제철이 들어서면서 금호동 주민들이 보상을 받아 이주한 곳이라 상가도 많았고 한 때는 부자 동네로 불리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손님이 없다는 이유로 상가마다 문을 닫을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주민들은 마땅히 갈 곳도 물건을 구입할 곳도 없다. 그나마 광영시장이 살아있어 다행이라 할 수 있지만  특별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가 힘든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공미술이 갖고 있는 수혜적인 면, 계몽적인 면을 일상에 밀착시키는데 이곳이 더 없이 좋은 곳이라고 여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필자도 회원들과 같이 광영중학교를 중심으로 그 둘레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칠 벗겨진 벽과 담, 보기 흉측한 빈 집들이 눈에 띄었다. 낡은 페인트를 긁어내는 것만도 큰일일 것이다.

소통의 벽화마을 광영동을 꿈꾸며
 그녀가 특별히 개인적으로 광영동이라는 마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된 것은 2010년 작업실을 광영동에 얻게 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거리를 걷다보니 죽어가고 있는 도시, 갈 곳이 없는 도시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광영이라는 도시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그동안 그녀는 광양시립도서관 실내와 태인초등학교, 옥곡노인전문요양원, 창덕에버빌 영어교실, 광양읍자전거 봉사대, 완도청소년수련관, 해남어린이집, 팔마초등학교 실내 벽화 등을 그렸다. 이처럼 조금씩 준비하고 여기 저기 벽화 봉사를 하던 중 작년 12월 우연히 작업실과 갤러리를 함께할 수 있는 카페를 임대하였다.

이제는 광영이라는 곳에서 가슴 속에 품었던 벽화 그리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겠다 싶어 설레었다.
무엇보다 동네 어르신들과 아이들이 함께 편안하게 소통하기 위한 장을 만들겠다는 첫 활로를 ‘람’카페의 벽화를 그리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그림을 좋아하는 필자도 스케치와 색칠을 하며 며칠 동안 동참했다.

필자를 보고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다는 과찬의 말에 당장 회원이 되었고 무리를 했는지 첫 작업한 다음날은 몸살을 앓았다.

햇볕과 바람을 맞으며 담벼락과 하루 종일 마주 보는 일은 허리와 다리가 아픈 것을 감수하는 것은 물론 인내심까지 스스로 시험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고된 일을 몸집도 작은 그녀는 왜 굳이 책임감까지 느끼며 하려고 하는 걸까?

그녀의 대답은 해를 지나면서 소외되고 외면된 공간이 변화되어가는 과정이 즐겁고 흥분된다는 거였다.
카페의 벽화가 완성된 날 천사 날개 벽화 앞에서 양팔을 활짝 벌리고 필자도 사진을 찍었다. 천사 날개는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날개를 벌리고 희망을 펄럭이는 것 같았다. 소외되고 외면된 공간이 변화되어 가는 과정, 그것이 주는 즐거움과 흥분이 바로 이것이구나 하고 비로소 필자는 그녀의 말에 공감할 수 있었다.

필자는 광양시립도서관에 갈 때마다 벽화를 자세히 들여다보곤 한다. 벽화에서 흘러나오는 생명력과 분위기와  감정을 통해 그녀가 전하려는 소통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곤 한다.

그녀는 현재 한국평생교육원에서 미술심리상담 전임강사로, 팔마초등학교 방과후 미술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필자와 함께 광양중진초등학교에서 방과후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전시회와 초대전도 많고 그림 그릴 것도 많고 강의 들어야 할 것도 많다. 그 바쁜 시간을 쪼개 그녀는 벽화로 소통하는 아름다운 광영동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이미 작가들과 시민들로 구성된 비영리단체를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다. 구성원으로는 글 쓰는 사람, 그림 그리는 사람, 조각하는 사람, 디자인 하는 사람 주부 등 회원 14명이다. 광양시청 도시과와 문화체육관광부와의 면담도 준비 중이다.

한 동네를 바꾸기 위해서는 큰 틀이 필요하다. 각자 생활방식도 다르고 소통하는 방식도 다르지만,‘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삶이 녹아내리는 문화예술을 만들기 위해 그녀는 노력하고 있다.

광영동이라는 곳이‘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의 손으로 아름답고 밝은 소통의 공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글, 사진 박옥경 (광양문화연구회원, 광양문인협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