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읍성, 사료조사 마쳤다…복원은 ‘미지수’
광양읍성, 사료조사 마쳤다…복원은 ‘미지수’
  • 김성준 기자
  • 승인 2024.08.26 08:30
  • 호수 1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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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역 비해 객사 조성 시기 앞서
광양, 지리적 요충지였다는 반증
야간조명 활용 성곽길 등 제안돼
“특색없는 전면 복원은 지양해야”

광양시가 광양읍성 복원을 위한 첫걸음을 진행했다. 다만 상가와 주택들이 밀접한 탓에 복원을 결정하긴 쉽지 않을 전망이다.

광양시는 지난 21일 시청 상황실에서 ‘광양읍성 복원 관련 사료조사’ 최종보고회를 열고 문헌 내용에 기반해 현재 부지 내 현황조사 등을 공유했다.

이번 용역은 동신대학교 산학협력단에서 맡아 읍 성곽을 포함해 당시 읍치시설(조선시대 읍내 관청) 등에 관한 상세한 내용을 조사했다.

해당 용역에 따르면 광양읍성은 왜적의 침입으로부터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 기능을 담당하기 위해 1415년(태종 15년)에 목책으로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둘레 549m, 높이 3.9m, 해자 둘레 604.5m 규모의 성곽규모를 갖췄다.

3년 뒤인 1418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망해루에서 주변루로 일부 명칭이 변경된 점을 토대로 읍성이 증축됐다가 1430년(세종 12년)을 전후해 석축으로 개축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후 갖은 이유로 소실과 복원을 반복해오다 1910년 일제의 읍성철거령에 따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읍성 내 위치한 객사는 1624년 설립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타 지역보다 상당히 이른 편이다. 객사가 왕권을 상징하는 관청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앙정부에서 광양지역을 지리적으로 상당히 중요하게 바라봤음을 추측할 수 있다. 해당 부지는 1911년 공립보통학교로 사용됐다.

실질적으로 고을의 수령과 관아 아속들이 근무하는 행정 기관인 아사와 작청은 각각 1612년, 1650년 무렵에 지어진 것으로 확인된다. 일제시대 우선 철거 대상이었던 아사는 당시 등기소와 경찰소로 대지가 분리됐으나 작청은 군청으로 활용되면서 당시 대지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용역사는 사료조사 결과와 타 지자체 활용 사례를 바탕으로 야간경관과 미디어 파사드 등을 설치해 읍성을 따라 걷는 성곽길을 조성하거나 VR 등을 통한 3D영상 복원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다만 특색없이 천편일률적으로 진행되는 읍성 복원은 지양해야 한다는 의견도 함께 제안했다.

조근우 마한문화연구원장은 “그동안 읍성에 관한 체계적인 사료조사가 이뤄진 적이 없어 뜬구름 잡는 형태였다”며 “충실한 조사를 통해 읍성의 변화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어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시는 이번 용역 결과를 토대로 복원과 현행 활용이라는 두 가지 방안을 놓고 진지한 논의를 시작할 예정이다.

다만 이미 상가와 주택이 자리한 탓에 부지 매입절차에 막대한 예산이 수반되는데다 절차도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돼 복원을 결정하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박성배 순천대학교 학예연구사는 “이런 사업에서는 지자체의 의지와 구체화된 계획이 가장 중요하다”며 “단기와 중장기로 나눠 철저한 로드맵을 세우고 축적된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시민들과 충분한 소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준석 관광문화환경국장은 “당장 1~2년 안에 결정할만한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연차별로 맞는 계획을 수립해 추진해야 한다”며 “현재 계획 중인 읍 성터 남문 문화공간, 읍성길 경관광장 조성사업 등에 이번 사료조사 결과를 반영해 광양만의 특색있는 역사문화 공간을 만들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