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하실 건가요?”
“네?”
“정치계에 뜻을 두고 계시냐고요.”
가끔 받는 질문인데 얼마 전에 같은 질문을 또 받았다. 나의 대답은...
“그럴리는 없지만, 혹시라도 제가 정치판에 기웃거리는 모습이 발견되면 즉시 119에 신고해 주세요. 그건 100% 미친 겁니다”
이 말은 진심이었고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삶 그 자체를 정치와 분리시켜 생각할 수 있겠는가는 별개의 문제라고 본다.
오래전부터 정말 익숙하게 들었던 얘기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는 말은 살아가면서 그 의미를 늘 곱씹게 되는 진리로 느껴지는데 나만 그런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The personal is the political)”는 1960년대 래디컬 페미니즘 계열 사회운동에서 쓰였던 슬로건으로, 캐롤 허니쉬(Carol Hanisch)가 처음 사용한 이후 당시까지 개인적이고 가정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던 여성 문제를 정치적 주제로 공론화시키고자 하는 사상가들에 의해 재인용되었다.
다수의 사람들 앞에서 얘기를 할 기회가 많다보니 가끔은 참석자들 중 자신의 생각이나 신념과 배치되는 부분에서는 질문을 빙자(?)한 반론을 펴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그것을 꼭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몰아가는 게 물김치 없이 고구마 먹을 때처럼 답답할 때가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어떤 관심사가 생겼을 때 “우리”라는 동질감과 공동체 의식으로 마음을 모으고 서로 북돋우며 격려하고 뭉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왔지 않은가?
얼마 전, 어느 기관에 강의 요청을 받고 갔는데 참석자 중 한 분이 빨간 티셔츠에 팔각모를 쓰고 계셨다. 다음날이 토요일이어서 서울 집회에 가려고 작은 현수막도 준비했노라고... 벌써 사망 1주기가 되는 채해병 특검법 집회란다.
슬쩍 해병대 몇 기냐고 물었더니 3백00기라고 대답한다. 별 뜻 없이 내 남편은 2백00기라고 했더니... 오 마이 갓~!
나한테 경례를 붙일 기세다. 그리고 연평도에서 복무를 했다느니... 그 시절 얘기가 자동 재생되었다. 그리고 하나뿐인 자식 군대 보냈는데 전투 중 교전하다가 총에 맞아 전사한 것도 아니고 수해복구 지원 나갔다가 안전수칙이 어떻고 지시가 어떻게 됐는지 파악도 안 된 상태에서 사망을 했다면 그 가족은 밥이 제대로 넘어 가겠으며 잠은 제대로 자겠냐는 얘기 등을 주고받았었다.
그런데 또 며칠 전, 어느 국방부 관련 기관 강의를 갔는데 유난히 눈에 띄는 빨간 명찰을 한 간부 한 사람이 쉬는 시간에 다가와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자신도 우리나라 해병전우회가 굉장한 자부심과 요란한 전우회를 갖고 있다는 것은 웃음이 난다.
전혀 모르던 사람이 처음 만난 자리에서 몇 마디 통성명을 하다가 느닷없이 ‘경례질’ 해대는 것을 보면 다소 지나친 우스갯말로 ‘집단 정신병’이라고 농담까지 했었는데 본인도 어느 자리에서 연세 드신 어떤 분이 해병대 1백00기라고 하니까 자동반사적으로 경례를 붙였다며 한참을 웃었다.
그렇게 강의를 마친 후 정리하고 있는데 또 다른 간부 한 분에 조용히 다가와서 물었다. “그 세월호 뱃지는 왜 하고 계세요?” 속으로 “어허이~~ 또야?” 그리고 대답했다.
“자식 잃은 부모 마음 위로하고 싶어서요” 그러자 그분이 자신의 휴대폰 케이스에 붙여놓은 노란 리본을 보여주면서 “고맙다”고 하신다.
그분의 말인즉 강의가 진행되는 도중, 옆에 앉아 있던 젊은 참석자가 강사의 옷깃에 달린 세월호 뱃지를 정치적으로 얘기하면서 비난하는 게 마음이 아팠노라고... 그 젊은이를 붙들고 한마디 해주고 싶었는데 참았노라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정치의 존재 이유 아니냐고... 젊은 사람들이 다른 이들의 죽을 만큼의 아픔을 사소하게 치부하는 것이 참 안타깝다는 얘기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우리가 매일 먹는 밥처럼 사소하고 익숙한 것의 소중한 의미를 다시 한번 곱씹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