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감사 마음으로, 새 생명 얻어
민주화 운동, 불교 수행 인생역정
물질·이념 내려놓고 얻은 풍요
광양읍에는 민주화 운동과 불교 수행에 매진하며 중도의 지혜를 실천하는 노신사, ‘신보주’ 선생이 살고 있다.
광양신문이 지난 3일 신 선생의 인생역정을 경청하는 시간을 가졌다.
신보주 선생은 스무살이 채 안 된 1970년대 초반부터 30년간 광고 업체 대표로 활동했다. 광양읍 ‘제일 극장’ 간판을 그리는 일을 시작으로 옥외 광고업 등으로 생계를 꾸렸다.
이 시기 본업을 살려 현수막과 피켓 제작 등을 지원하며 지역 노동운동과 시민사회 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신보주 선생은 민주화 운동에 매진했다. 80년대 중반 신문기사를 통해 대학생 분신 사망 소식을 접한 순간이 계기였다.
목숨 바쳐 민주주의를 열망하다 스러져간 대학생들의 꽃다운 생명이 안타까워, 술과 담배로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며 열렬히 투쟁했다.
1985년 그는 기독교 농민회 광양 준비위원으로 활동하며 1987년 ‘국민평화 대행진’ 때 광양 5일장에서 최초로 가두시위에 참여했다.
이후 민주헌법 쟁취 국민운동본부 광양군 지부 실행 위원으로 활약하며 ‘6월 항쟁’ 확산에 기여했다.
신 선생은 최근 ‘자랑스러운 6월 항쟁인상’을 수상하며 민주주의를 향한 헌신을 37년 만에 공식 인정받았다.
佛法 수행으로 이어진, 연민의 마음
15년 전 신 선생은 치열했던 인생역정을 뒤로하고 광양읍 한 조용한 도심 속 암자에서 승복을 입고 수행을 시작했다. 늦은 나이에 불법 공부에 매진해 ‘성종’이라는 정식 법명을 받았다.
8년 전, 위와 대장에 자라난 암 덩이를 도려낸 자리에는 긍정과 감사의 마음을 심었다. 생사의 고비를 넘고 난 그의 정신은 숨 쉬는 것만으로 만족감을 느낀다.
그는 “많은 것을 얻으면 그만큼 만족감이 커진다는 말은 논리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우리 삶 속에서는 실현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신보주 선생은 모든 관계에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화를 내려놓는 연습’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자기 기준’을 버리고 다양한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지혜롭고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지름길이라 믿고 있다.
또한 세상에서 겪는 고난과 시련이 결국 우리를 성장시키는 마음공부의 일환이라고 강조한다. 모든 경험이 끝내 우리 삶에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적대적인 사람조차도 마음공부 실마리를 제공하는 ‘귀인’이라는 것이다.
신보주 선생은 모든 것이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기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도 주장한다.
그는 “물질과 이념은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지 못한다”며 “바르고 지혜롭게 중도의 마음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더 나은 사회 위한, 끊임없는 호기심
칠순이 넘은 나이지만 신 선생은 동영상 콘텐츠 제작과 AI 기술 발달로 인한 사회 변화를 예리하게 통찰하고 있다. 그는 “개인을 넘어 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끊임없는 호기심으로 세상을 넓게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신보주 선생은 불법을 수행하는 불교 신앙인이지만, 시민 한가운데 서서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지를 기반으로 사회 변화를 열망하고 있다.
오늘도 신보주 선생은 지역 사회와 소통하기 위해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생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