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사회 전반에 걸쳐 세계를 놀라게 할 정도의 발전을 이뤘다. 하지만 사회양극화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그 이유는 다양한 요인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물질지상주의에 따른 사회병리 현상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는 모든 것을 금전적 가치로만 보고 해결하려는 천민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일그러진 가치관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변해야 할 때가 왔다.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는 시대가 되었다. 경제적 수준에 걸맞게 의식의 변화에도 새로운 물결이 일어나야 한다.
이에 발맞춰 요즘 우리사회의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선행의 종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최근 부영그룹 이중근 회장의 통큰 기부는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다.
한편 다른 기업에서도 새로운 기부문화가 형성되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물론 미국이나 다른 기부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은 걸음마 수준일지 모르지만 ‘시작이 반이다’는 말처럼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고 본다.
이 글을 쓰면서 돈에 관하여 우리에게 한 가르침을 준 사람을 생각하게 된다.
요즈음 재벌들의 행태를 살펴보면 돈을 제일 많이 벌었다는 사람과 돈을 제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이 점은 여러 가지로 음미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이를테면 내가 번 돈이라고 해서 꼭 내 돈은 아니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고, 돈은 벌기보다 쓰기가 더 어렵다는 그 흔한 얘기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돈은 쓰는 법을 알아야 한다거니 돈이 인생의 행복을 결정지워 주는 것은 아니라거니 하지만 요즘 세상에 그런 얘기해봤자 없는 사람의 넉두리로 밖에는 들리지 않는 것을 보면 돈이란 결국 나를 위한 것이오 수신서에 쓰여 있는대로 쓰기란 극히 어려운 일임에 틀림이 없다.
때는 1855년경, 서부 개척이 한창 무르익어갈 무렵 미국의 중부 오하이오주 클리브랜드에는 이제 겨우 16살 된 한 소년이 농산물 중개상에서 힘겹게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개척 시대의 어려움 속에서 벌이도 시원치 않았지만 5년 동안을 꾸준히 일하면서 농산물 장사의 기술을 터득하여 자기 나름 대로의 한 상점을 차릴 수가 있었다.
성실과 근면으로 4~5년 동안 열심히 돈을 번 그 소년은 정유업에 손을 댔고, 이것도 뜻대로 성공을 거두자 1870년에는 스탠다드석유회사를 설립하여 사장이 되었다. 이때 그의 나이 31살이었다.
그 이름은 죤 록팬러다. 스텐다드석유회사는 실패를 모르고 당시 미국의 철강을 지배하던 앤드루·카네기와 더불어 미국의 경제적 제왕으로 군림하는 동시에 적수공권으로 입신양명을 꿈꾸는 야망찬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었다.
1911년 그가 72세 되던 해에 사업에서 은퇴할 무렵 그는 자기가 애써 번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는데 이때의 어려움은 그가 벌 때의 어려움보다 더 감당하기 괴로운 것이었다.
그는 우선 시카고대학을 설립하여 자기의 배우지 못한 설움을 풀었고, 록펠러재단, 교육연구소, 록펠러기념관, 록펠러의학연구소 등을 설립함으로써 자기가 일생동안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하고 1937년에 98세라는 천수를 누리고 세상을 떠났다.
존 듀이는 인간 본성에 존재하는 가장 깊은 충동은 ‘인정받는 인물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라고 했다.
록펠러는 ‘돈의 축적’이 아닌 ‘돈의 나눔’으로 사람들에게 비로소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게 자신도 살고 사회도 사는 길이다. 하지만 이를 알지만 실천하는 사람은 드물다.
아직도 우리 사회가 더 정의롭고 양심이 살아있는 사회를 위해서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솔선수범, 모범정신이 선행되고 그것이 행동으로 실현되었을 때 밝은 사회는 약속될 것이다.
부영그룹의 베풂 실천이 한국기업의 기부문화의 초석이 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