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호남의 3대 정원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담양 양산보의 소쇄원, 완도 보길도 윤선도의 부용동정원, 강진 이담로의 백운동정원을 3대 정원으로 꼽고 있는데, 그 저변에는 지자체의 관광 마케팅이 한몫하고 있다.
호남에 현존하는 고(古) 정원 중에서 조경의 역사적 및 학술적 가치를 따질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광양 버들못정원(유당공원)이다. 광양 버들못정원은 호남 3대 정원으로 언급된 곳들보다 가장 먼저 조성됐다.
버들못정원은 1528년 당시 광양 현감 박세후(朴世煦, 1494-1550)에 의해 조성됐다. 조광조(趙光祖, 1482-1520년) 문하에서 박세후와 함께 동문수학했던 양산보(梁山甫, 1503-1557년)의 소쇄원은 1520년대 중후반부터 건축이 시작돼 1542년 정도에 완공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완도 부용동정원(芙蓉洞庭園)은 1636년에 윤선도(尹善道)가 보길도에 정착하면서 거처할 집을 짓고 그에 딸린 정자와 연못 등을 만든 정원이다.
강진 백운동정원(白雲洞庭園)은 월출산 아래인 강진 성전면 백운동에 있다. 현재의 건물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1812년 이곳을 다녀간 뒤 제자 초의선사에게 백운동도를 그리게 하고 시문을 남겼는데, 그것을 바탕으로 재현한 것이다.
호남 3대 정원으로 자랑하는 곳들의 공통점은 별서정원(別墅庭園)이다. 경치가 좋은 곳을 찾고 찾아 선택한 후 산기슭에 건물을 짓고 정원을 조성한 곳으로 주변 풍광 자체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데 비해 버들못정원은 평지에 경관을 만들어 낸 곳이다.
버들못정원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정원으로 구분되는 궁궐정원, 민가정원, 별서정원에 포함되지 않은 공공정원으로 관에서 조성했다. 조성목적은 해상의 방위에 전념했던 현감이 바다로 접근하는 왜구의 시야를 피하기 위한 보안림의 역할에 큰 비중을 둔 가운데, 광양 읍성으로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막는 방풍림의 역할과 풍수적 결함을 보완하기 위한 것도 있었다.
목적은 보안림과 방풍림을 위한 것이었으나 조성 내용은 연못을 파고 버드나무를 심어 놓은 점, 조선 시대 정원에서 나타나는 풍수지리설과 음행오행설이 반영되어 있는 유희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또한 도교의 신선사상과 함께 중국 송나라 때 저자 미상의 수학 및 천문학 문헌인 《주비산경(周髀算經)》에 기록된 것으로 “모난 것은 땅에 속하며, 둥근 것은 하늘에 속하니,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라는 뜻의 천원지방(天圓地方)이 정원에 반영되어 있다.
버들못정원은 호남 3대 정원이라고 하는 곳과 달리 500년 가까이 된 이팝나무를 비롯해 느티나무, 팽나무, 왕버들나무, 푸조나무 등 고목이 생존해 있는 것도 특별하다. 근세에는 달맞이를 했던 곳(釜山日報. 柳塘公園の觀月. 1916年9月18日) 등 모두의 정원이었고, 근린공원의 역할을 했던 독특한 한국의 정원이기도 하다.
광양 버들못정원은 위와 같이 그 역사와 조경 양식, 조성목적, 조경수, 공공정원 역사 측면에서 우리나라 정원사에 중요한 의미가 있는 문화적 자산이다. 그런데도 학술적 연구가 되어 있지 않고, 그 가치를 아는 사람도 찾기 힘들다.
이웃 순천에서는 순천만국가정원박람회, 강진은 백운동정원, 담양은 소쇄원, 완도는 부용동정원을 앞세워 정원 관광 마케팅을 펼치고 있으나 광양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호남 최고의 정원이라 할 수 있는 버들못정원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있는 듯하며, 살리지도 못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