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이야기 : 4-2 3. 그림자와 거울>
할머니와 망원경
나는 어린 시절 할머니와 함께 산촌에서 살았다. 부모님께서 초등학교 3학년 때 산촌살이가 어렵다며 도시로 이사 가셨기 때문이었다. 번듯한 방 한 칸 구할 수 없어서 어린 내 동생만 데리고 가셨다. 할머니는 손수 지은 논밭의 농산물이나 산나물을 채집하여 시골장에 내다 팔아 생계를 이어갔다.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생활이었지만 내 학용품과 옷을 사주는 일이나 용돈을 주는 일에는 아까워하지 않으셨다.
5학년이 끝날 무렵 할머니께서는 망원경을 사 오셨다. 할머니, 이게 무슨 망원경이에요? 이걸로 뭐하게요?” 망원경은 멀리 있는 것도 잘 보인다더라. 네가 멀리 멀리 봤으면 좋겠다.”
뭘 멀리 보라는 건 지 이해할 수도 없었고, 별로 볼 것도 없을 것 같아 시큰둥하게 받아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다.
6학년이 되어 3월이 다 끝나 갈 때까지도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오후에 우연히 책상 서랍에 든 망원경을 보게 되었다. 나는 망원경을 꺼내 들고 요리조리 초점을 맞추어 저 멀리 앞산부터 뒤지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나무들과 바윗돌들이 산으로만 어울려 보였던 것이 망원경 안에서는 하나 하나 별도로 보였다.
그때부터 나는 틈틈이 망원경을 꺼내 들고 앞산을 탐사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산은 부드러운 연초록에서 차츰차츰 깊은 연초록으로 예민하게 변해갔다.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산의 변화가 신기해서 수시로 망원경과 함께했다.
그해 여름방학을 며칠 앞두고 할머니께서는 내가 죽더라도 울지 말거라. 나는 죽어서 별이 되고 싶단다.”라는 말씀을 남기고 끝내 돌아가시고 말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부모님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셨다. 조상 대대로 이어온 논밭을 팔아 치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할머님이 돌아가신 일은 안타까웠지만 부모님이 돌아오신 일은 다행이었다. 내 생활도 차츰 안정을 되찾아갔다. 그 후로부터 나는 망원경을 꺼내 들고 밤하늘 별들을 곧잘 관찰하곤 했다. 어딘가 정말 할머니의 별이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별들이 앞산처럼 선명하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조금 앞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졌을 뿐이었다. 그래도 할머니의 별이 그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아 심심하면 망원경을 꺼내 들었다.
나는 학교 도서관에서 별자리에 관련된 책을 빌려와 밤하늘에서 직접 위치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저게 북극성이고 그 옆에 국자처럼 생긴 것이 북두칠성이고, 북극성을 가운데 두고 카시오페이아고 등등의 별자리를 하나씩 찾아가는 즐거움에 흠뻑 빠져버렸다. 별자리에 얽힌 이야기까지 곁들이니 더욱 재미있었다. 나는 어느새 천문학자가 되어 있었다. 아니 꼭 천문학자가 되어 할머니의 별을 찾고 싶었다.
할머니께서 멀리 멀리 보라는 말씀이 이제는 이해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망원경 이야기
요만큼만 더 가까이 와 응?
늘 네가 보고 싶어
왼쪽 뺨에 언뜻 얹히는 보조개
콧잔등의 까만 점
살짝 비치는 덧니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움직이거나 달아나면
또다시 허둥지둥 뒤져야 거야
앞 냇가 푸른 들녘 건너서
저 산 너머 멀리 멀리까지
한참을 헤매야 할 거야
동그란 내 눈 안에
그렇게 가만히 있어 줘
너만의 냄새
음- 음- 흠뻑 맡고 싶어
요만큼 더 가까이에서
늘 만져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