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 출신 故문명금 할머니 ‘재조명’
11월, 문 할머니 기림의 날 ‘예정’
지난 10일 광약역사문화관 인근 광양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맞아 광양나비문화제가 열렸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은 매년 8월 14일로 故김학순 할머니(1997년 별세)의 공개증언을 맞이해 제정됐으며 올해로 10회차를 맞이하고 있다.
행사는 이경자 정의당 광양지역위원장의 사회로 △헌화 및 분향 △세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제정 의미 설명 △앙상블 오카리나 공연 △추모시낭송 △세계공동행동 연대공연 △문명금할머니 기림 ‘명금의 봄’ 합창 △문명금 평화의 상 제정과 문명금 할머니 생애 낭독 △‘위안부’할머니들 유언 매달기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다소 우울한 날씨 속 진행된 행사에는 30여명의 시민들이 찾아 슬픔을 나누고 추모했다. 특히 이은아 시인이 추모시를 낭송할 때 시민들은 마음 아파하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이어진 ‘명금의 봄’ 합창은 기존 ‘고향의 봄’을 개사한 노래로 광양시 청소년문화의집 자원봉사동아리 ‘봉우리’ 학생들이 함께해 더욱 뜻 깊은 시간을 가졌다.
이 날 행사에 참여한 단체와 시민들은 광양 출신 ‘위안부’ 故문명금 할머니(2000년 별세)를 기억하기 위한 평화의 상 제정에 크게 공감했다.
문명금 할머니는 1917년 광양군 진상면 구황리에서 태어나, 18세에 공장에 취직시켜주겠다는 친절한 일본인을 따라갔다. 이후 중국 헤이룽장성 손오현(孙吴县)이라는 낯선 땅의 군인회관에서 ‘에이꼬’, ‘노부꼬’ 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하루에 20~30여명의 일본군을 상대했다. 해방을 맞이한 1945년까지 10년 동안 열여덟의 소녀는 지옥을 경험했다.
여든이 돼서야 밟게 된 고국 땅에서 “정말로 내가 우리나라에 온 것이 맞냐”고 목 메여하던 문명금 할머니는 2000년 11월 3일 심근경색 등 합병증으로 안타까운 생을 마감했다. 할머니의 묘비에는 “죽어서도 사과받으러 올거야”라고 쓰여있다.
이에 문 할머니의 고귀한 삶을 기리고 그 뜻과 정신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문명금 평화상’ 제정 움직임이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제정되지 못했다.
행사에 참여한 김상기 다사리연구소 대표는 “안타까움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우리 광양시민사회가 해결해 가야 할 숙제이기에 뜻을 함께하는 시민들의 동참을 제안한다”고 호소했다.
“오는 11월 문명금 할머니의 기일을 맞아 수요집회를 개최할 예정이니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