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웃고 울고 가슴 뭉클한 장면이 넘쳐나는 남북정상회담을 보면서 계획했던 기사를 바꾸기로 했다. 해방 이후 남북으로 나뉘면서 강원도 고성 북쪽의 외가가 그만 없어져버렸다, 어릴 때는 몰랐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친정엄마의 고향을 생각하게 됐다.
친정엄마께서 평생 고향의 친정을 얼마나 그리워했던지 그 모습들이 문득문득 생각 날 때는 너무 안쓰럽다. 90세에 하늘나라로 가셨지만 가실 때까지 치매가 없으셨기에 고성에 살던 집 주소와 가족들 이름을 다 외우고 계셨었다.
일을 하시다가도 가만히 앉아 책을 보시다가도 나와 동생들을 돌보시다가도 자주 동요‘오빠 생각’을 흥얼거리셨다, 아마도 고향의 친정이 생각났을 때일 것 같다. 내가 아이를 낳고 몸조리를 할 때 “내가 너희들을 낳을 때 그렇게 어머니 생각이 나더라…” 하시면서 눈시울을 붉히셨던 모습이 떠오른다.
금강산 관광이 가능했을 때 바로 신청을 하고, 60여년 만에 고향땅을 밟으셨다. 장전항 배에서 내리면서 두리번거리지도 않으시고, 어떤 방향을 가리키면서“저기에 내가 다니던 학교가 있고 모래사장이 있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반사적으로 북한 경비원에게 뛰어가서 물어보았더니 맞다고 했다. 얼마나 그리웠으면….
지금 치매 예방교육을 하면서 어르신들과 함께 하하 깔깔 정말 행복하다. 남북정상회담을 보면서 북한에도 어르신들이 계시고 치매에 걸리신 분들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과 함께 나는 또 다른 꿈을 갖게 되었다.
머지않아 북한에 계신 우리 어르신들께 치매 예방 프로그램을 알려 드리러 가는 것이다. 이 생각을 하니 나는 가슴이 설레며 벅차다. 만나면 하하 깔깔 행복하리라. 그 동안 오가지 못하고 만나지 못한 가족들 친지들 남북 어르신들이 오가며 치매 없는 행복한 남과 북을 만들어 갈 것이다. 어버이날에는 빨간 카네이션을 곱게 접어 달아 드려야겠다.
이정자 어르신 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