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남원에 있는 서남대가 지난 2월 폐교됐다. 폐교 이후 서남대 주변 상권은 그야말로 초토화됐다. 대학이 무너지는 것은 공동체가 무너지는 것과 같다. 광양은 서남대 폐교 사례를 더욱더 깊이 있게 살펴봐야 한다. 곧 우리에게 닥칠 위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광양보건대와 한려대의 존폐 문제를 놓고 여전히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서남대 폐교와 지역 상권이 무너진 현장을 직접 다녀왔다.<편집자 주>
빈 원룸만 덩그러니 사람 흔적 거의 없어…남원 상권 초토화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폐교된 서남대 정문을 들어서는 순간 법정스님의 책 제목처럼 학교는 고요했다. 캠퍼스 곳곳에 벚꽃들이 만발한‘화려한 봄’이 찾아 왔지만 학생들이 떠난 인기척 없는 캠퍼스는 첩첩산중 절간보다 더 적막한 기운이 감돌았다.
2월말 폐교 된 이후 학교 측이 정문에 설치해 놓은 펜스를 통과해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웅~웅’대학본부 건물 앞 붉은색 대형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한 것으로 보아 전기도 끊긴 듯 했다. 조심스럽게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바람에 날아 든 낙엽들이 복도에 나뒹굴고 인기척 없는 건물 안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썰렁했다.
발전기로 불을 밝힌 3층 사무실에는 3~4명의 직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핸드폰카메라 셔터 소리가 공기를 가르는 적막한 캠퍼스를 한 바퀴 돌다가 운동을 나온 인근 광치마을에 산다는 주민 이영섭(64)씨와 마주쳤다.
이 씨는“학교에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건 가끔 찾아오는 취재진 뿐이다. 최근에도 jtbc, ytn 등 취재진들이 다녀갔다”며“학교 주변의 원룸과 상가들은 거의 문을 닫았다. 한 원룸 당 16세대 이상이었는데 지금은 모두 텅텅 비었다”고 말했다.
서남대 정문을 통해서만 들어 올 수 있는 학교 뒤편 자연마을‘솔터’는 1991년 학교가 개교하면서 원룸과 상가들이 생겨났고 주민은 물론 외지에서 온 사람들의 생계수단이었다.“멀리서 왔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며 이영섭씨가 학교 주변 원룸과 상가를 안내해 주겠다고 해서 함께 주변을 살폈다. 이 작은 마을에 당구장이 9개가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융성했던 상가들이 마치 폭탄이라도 맞은 듯 폐허가 된 모습이었고 사람들의 모습조차 찾아 볼 수 없었다.
마침 중국집 한 곳이 문이 열려 있어 이야기도 들어 볼 겸 들어가서 자장면을 시켰다. 1996년부터 이 곳에서 원룸과 중국집을 운영해 온 김용태(59)씨는“하루에 한 그릇도 못 판다. 가게를 싸게 내놔도 팔리지 않아 이제 포기했다. 갈 곳이 없어서 그냥 버티고 있다”며“남원은 변변한 기업마저 없어서 서남대는 다른 도시의 대기업과 같이 지역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했다. 지금은 폐교의 충격으로 택시, 시내버스, 택배 등 남원의 서민경제가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소연했다.
김 씨는 대학 정상화 추진 모임 등 서남대 폐교를 막기 위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빚을 얻어 원룸을 짓고 생계를 유지했던 주민들 중 야반도주 했다는 사람도 있다. 한 사람의 비리로 도시 전체가 초토화 됐다”며“주민들의 삶을 들여다보지 않고 폐교를 단행한 교육부가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자장면 세 그릇에 1만6000원, 차마 카드를 내밀 수가 없어서 현금으로 계산하고 중국집을 나와 학교 건너편 광치 마을로 갔다. 이 마을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원룸마을’이라 불러도 될 만큼 마을 전체가 원룸으로 빽빽한 이 마을은 서남대 주변의 유일한 원룸 집중촌이었고 1000여명의 학생들이 살았던 활기 넘치는 곳이었다. 마트가 9개나 됐고 매일 밤 마을회관 앞에서 포장마차가 열렸다. 마트, PC방, 편의점, 당구장, 주점 등도 많았으나 폐교 이후 찾아오는 발길이 뚝 끊겨 모두 문을 닫았다. 상가들은 아직 빛바랜 간판을 내리지 못하고 지난 날 화려한 추억을 간직하며 그저 초라하게 자리만 지키고 있을 뿐이다.
학생이 떠난 서남대 주변은‘한 때 이곳이 대학가였구나’하는 흔적만 남기고 과거 속으로 소멸했고 동시에 주민들의 삶도 피폐해졌다. 학교 주변 뿐 아니라 학교에서 떨어진 향교동 등 남원 시내까지 학생들이 사라진 도시는 유령도시가 됐다.
폐허가 된 서남대 주변 대학가를 돌아보며 광양 보건대와 한려대가 있는 덕례리 원룸촌을 떠올렸다. 죄는 비리 재단이 짓고 그 피해는 학생, 교직원, 지역주민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 서남대 폐교와 같은 현상이 광양에서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대학 구조조정과 비리 재단 퇴출이라는 교육부의 명분에 토를 달수는 없지만 그런 명분아래 지역 현실을 살피지 않고 폐교가 된다면 생계가 걸린 대학가 주변의 광양시민들의 삶도 폐허가 될 것은 불을 보듯 뻔 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