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독일에서는 국회의원들의 몽블랑 만년필 과다 구입이 논란이었다. 115명의 국회의원들이 임기 말기에 396개의 만년필을 구입했는데, 약 6만8800유로, 이를 원화로 환산하면 8950만원 가량이다.
논란의 요지는 국민들의 세금으로 만년필을 구입했던 국회의원들의 비도덕적 행태가 독일 사회에서 정치적 신뢰를 파괴하는 사건으로 평가된 것이다. 그리고 올해 3월 독일 연방행정법원은 이들에 대한 명단의 공개 여부를 판시했는데, 판결문에서는 대중들이 갖고 있는 정보의 관심보다 의원들의 정치적 신뢰가 더 중요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소위‘만년필 사건’은 독일 사회의 단면을 볼 수 있는데, 먼저 만년필 구입 하나가 국회의원들의 정치적 신뢰를 물을만큼 공과 사가 구분됨을 알 수 있다. 우리에겐 만년필 구입이 뭐 그리 큰 잘못인가 할 수 있다. 그러나 독일에서 논란의 핵심은 만년필의 가격이 아닌 공직자의 정치적, 도덕적 자질을 평가하고 있으며, 최소한의 부정과 부패를 용납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전 연방 대통령이 휴가 기간에 기업인 친구에게 제공받은 호텔이 논란이 되고, 연방 장관들이 업무용 차량을 타고 휴가를 갔다가 국회에서 문책을 당한 일들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연방행정법원이 만년필 구입 의원들의 명단을 공개하는 처사보다 이들의 정치적 신뢰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이번 사건의 경과가 유사한 해프닝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또 만년필 구입에 대한 대중들의 일회성 헐뜯기나 웃음거리의 제공은 굳이 법원이 의도하는 처벌도 긍정적 효과도 없다는 것이다. 법원은 이미 독일 사회에 형성된 부정, 부패에 대한 보편적 양식과 판단 능력을 신뢰하고 있으며, 만년필 구입 의원들의 명단 공개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결정한 것이다.
이번 만년필 사건이 독일의 사회적 윤리상을 엿보게 한다면, 한국 사회의 윤리 또는 부정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은 어떠한가? 요즘 한국은 9월부터 시행될‘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소위 김영란법에 논란이 한창이다.
2013년 국회에 제출됐던 김영란법은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로 더욱 화제가 되었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국민 담화에서 “전, 현직 관료들의 유착 고리를 끊기 위한 부정청탁 금지법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호소”했기 때문이다. 국회에서는 여론에 밀려 지난해 3월 관련 법안이 통과됐다. 그러나 법안의 시행 2개월을 앞둔 지금, 정부와 국회는 물론 언론과 시민단체들이 동 법안의 시행을 방해하고 있다.
이들의 방해 논리는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 10만원의 제한이 내수경제의 위축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공직자의 반부패법안이 언론인과 교직원에 대한 규제까지 포함되어 있고, 오히려 정치인의 예외 조항은 정치인들의 부정부패를 근절할 수 없는 한계의 법안으로 비판하고 있다. 그래서 언론은 요식업계의 치명적 타격과 농수축산물의 불황을 연일 보도하고 있고, 심지어 동 법안의 위헌 여부까지 언급하고 있다.
외식업중앙회나 자영업자총연대로 불리는 시민단체들은 관련법안의 시행 저지를 위한 성명 발표와 거리 시위를 하고 있다. 아울러 각 정당들은 국민들의 볼멘소리에 발맞춰 법안의 개정을 재기하는데, 언론인과 교직원은 제외하고 대신 국회의원을 넣자는 주장에서 3,5,10만원을 내수경제를 고려한 액수로 증액하자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독일에서는 1997년대 공무원 반부패법이 재정됐는데,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면, 공직자들의 뇌물 수수, 특혜 시비가 잦았고, 매년 부패로 인해 약 2백억 마르크 이상의 손실이 있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실제로 60년대 이후, 뮌헨의 하수도 건설에서 카르텔 결성이 묵인되어 시장 가격보다 약 30%까지 가격이 형성되었는데, 이는 뮌헨시가 약 2억 5천만에서 7억 5천만 마르크의 손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했다.
이러한 선례는 국민들의 행정 불신, 공직자에 대한 불신으로 심화되었고, 각 주 정부에서는 이러한 부패 방지에 노력을 다했다. 그럼에도 공무원과 기업 간의 결탁으로 부지 매입이나 계약 수주에서 뇌물수수를 넘어 배임이나 문서위조에 공무원이 개입하는 범죄가 증가했고, 이러한 사회적 환경은 독일과 유럽연합 차원에서 반부패법의 논의가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 김영란법의 시행에서 증폭되는 논란들은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게 한다. 우리는 세월호의 비극과 4대강 사업의 환경파괴가 전체 사회에 가져다준 혼란과 피해를 잊고 있다. 그래서 김영란법과 같은 반부패법이 우리에게 왜 필요한지 어느 누구도 직설하지 않고 있다.
공교육이 무너져도 사교육 시장의 침체를 논리화했고, 막대한 조폭들의 지하경제가 자명해도 외면하고 있다. 마치 마약시장에 정부가 소극적이며, 무기시장에서 전쟁을 외면하는 논리와 동일하다.
부정과 부패는 어느 사회에나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이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방안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는 국가마다 상이하다.
우리 사회의 현실은 부정부패가 전체 구성원들에게 직접적으로 가하는 피해가 얼마인지 산출할 수 있는 능력도 의지도 없는 게 우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