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처럼 다가온 시(詩), 마음 한켠에 언제나 자리하고 있어요”
“숙명처럼 다가온 시(詩), 마음 한켠에 언제나 자리하고 있어요”
  • 이성훈
  • 승인 2014.07.14 10:02
  • 호수 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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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통해 소소하고 행복한 삶 꿈꾸는 정은주 시인

‘여우비 내린다
라고 쓰는 순간 지나갔다
뭉게구름이 하늘을 터번처럼 감고 있다
뭉게구름 한 송이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뭉게뭉게 부푼다
퉁게퉁게 흘러간다’
    정은주‘아름다운 것들’중

어렸을 때부터 마냥 책이 좋았다. 아버지 방에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히 채워진 책에서 풍겨오던 책 내음이 기억에 어렴풋하다. 막연히 어른이 되면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광양여고에 다니던 시절, 인근 광양여중에서 학생을 가르치던 소설가 양귀자 선생님으로부터 문학 이야기를 들으며 꿈은 더욱 확고해졌다. 어른이 된 후, 그녀의 꿈은 조금씩 이뤄졌다.

시를 통해 삶의 소박한 행복을 맛보는 시인 정은주. 시와 함께 살아온 인생이 어느새 이 십 여년이 훌쩍 넘었다. 시만큼 사람을 설레게 하는 것은 없다는 그녀는 “나이를 먹으니 시상도 잘 떠오르지 않아 걱정”이라며 수줍게 웃었다.

그녀에게 시는 ‘숙명’과 같다. 정 시인은 “시는 저에게 공기처럼, 없어서는 안 될 무엇이지만 가끔은 잊어버리기도 한다”고, “요즘이 그러해요, 시가 어디로 달아나버렸다”고 말한다.

시인은 “시상이 한창 떠오르던 시절에는 잠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시를 쓰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며“하지만 한 번 막히기 시작하면 몇날 며칠을 끙끙 앓아도 떠오르지 않아 애가 탈 때가 더욱 많았다”고 말했다. 창작의 고통 속에 탄생한 시 한편은 그녀에게 분신과 다름없다.

정 시인은“시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생명의 작업”이라고 단언한다. 똑같은 표현, 흔해빠진 단어로 이뤄진 시는 생명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녀는“시인마다 가지고 있는 감성, 독특한 표현을 바탕으로 한편의 시가 완성된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창작의 고통은 힘겹고 괴로운 과정이다”고 말했다.

“그동안 몇 편을 썼는지 잘 모르겠다”는 정은주 시인. 그녀에게는 수많은 작품 중 유독 애틋한 시가 있다. 바로 ‘아버지와 자전거’라는 시다. 어렸을 때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애틋함과 그리움을 담은 시 ‘아버지와 자전거’는 시인이 십오 년 전 썼다.

그런데 몇 달 전 그녀는 이 시의 모티브에 완벽히 맞아떨어지는 사진 한 장을 보게 되었다. 시 제목‘아버지와 자전거’처럼 수십 년 만에 자전거와 함께 찍은 아버지의 사진을 발견한 것이다. 애초에 아버지가 자전거 안장에 손을 얹고 있는 사진 한 장이 더 있었는데, 그 사진을 잃어버려 안타까워하고 있던 차였다.

정 시인은“조카가 자기 엄마 지갑 속에 들어있던 사진이라며 저에게 이 사진을 보여줘, 순간 너무 놀라웠다”며 시인은 자신의 휴대폰에‘아버지와 자전거’ 사진을 저장하고 틈날 때마다 아버지를 떠올려본다고 한다.

정은주 시인의 아버지는 정순기 옹으로 과거 광양군청에서 광양군지 담당을 하며 초안을 작성했다고 한다. 집에 불이 나는 바람에 아버지의 편지, 글이 대부분 없어져 너무나 안타깝다는 시인은“아버지가 저에게 조그마한 재능을 물려주신 것에 대해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그리움을 전했다.

정은주 시인은 그동안 써왔던 시들을 한데 묶어 시집으로 낼 생각이다.“조만간 시집을 내고 싶다”는 시인은 “부족하고 아쉬운 부분도 많은 시들이지만, 시가 더 늙기 전에 책으로 묶어야겠다”고 쑥스러워했다.

현재 광양문인협회회원, 시울림 동인, 광양문화연구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시인은“최근에는 생활도 바쁘고 시상도 잘 떠오르지 않아 작품 활동을 많이 하지 못했다”며“시가 써지지 않는다며 너무 조바심내지 않고,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일이니 묵묵히, 차근차근 해나가겠다고”고 소박한 소망을 전했다.               

아버지와 자전거
정 은 주

나의 유년은 자전거 두 바퀴 사이에 있었다
어쩌다 아버지가 오는 날
나는 아버지보다 반짝이는 자전거가 더 좋았다
가만히 페달을 돌리면 바퀴는 가운데가
텅 비는 원이 되었다
그 둥글고 희미한 구멍으로 알 수 없는
바깥 내음이 훅 끼쳐오곤 했다
아버지는 자전거에 나를 태우고 강변이나
산모롱이를 돌아다니곤 하였다
자갈길은 새끼줄처럼 끝도 없이 풀려나오고
큰 돌멩이라도 하나 만나면
아버지한테서 떨어져 나갈 것 같아
웃옷자락을 거머쥐곤 하였다
등 뒤에서는 앞이 보이지 않았다
백운산도 방앗간도 미루나무도
아버지 안으로 숨어버리고
나는 자갈길을 챙챙챙 감고
지나가는 바퀴소리만 세고 있었다
길 위에는 오래된 미루나무 즐비하고
안장에 한 손을 기댄 아버지는 길의 끝을 보고 있었다
그 때 아버지는 알았을까
생의 모서리에 서 있다는 것을
누군가 베어 물면 금방 떨어져나가고 말 귀퉁이 같은

생각난다
어느 하루 잿간처럼 깜깜했던 날
어머니는 결혼사진을 가위로 자르고 있었다
나란히 선 두 사람 사이에 닿을 수 없는 허공이 놓이고
아버지 오른 손은 떨어져나가면서도
어머니 손을 꼬옥 쥐고 있었다

열 번 스무 번…
경전선 기차가 아버지 잠 속으로 지나갔으리라
기차소리처럼 아버지 안으로
풀뿌리 나무뿌리 자꾸만 벋어왔을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자정 무렵의 대숲 같았다
금방이라도 뭔가 후두둑 뛰쳐나올 것 같은
-느그아부지 돌아가기 두 달 전까지도
집에 오질 않았니라 일헌다 핑계삼아 부용관에서
묵고자고 했지-
바람빠진 튜브처럼 한숨을 내쉬곤 하였지만
한사코 어머니는 자전거를 팔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는 아버지에 매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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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마나 무거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