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장애인수영협회, 장애 특성 맞춰 각각 다른 훈련법
장애인 시설·체육 인프라 확대, 생활체육 인구 늘어
코치, 비장애인·장애인 함께 즐기며 성취감 갖는 보람
도쿄 외곽 작은 수영장, 진정한 ‘베리어 프리’ 구역
대한민국의 등록장애인 수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2001년 전체인구의 2.4%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기준 5.1%를 기록했다. 인구 고령화가 심각한 전남으로 좁혀보면 장애인구 비율은 전국 최고 수준인 7.6%에 달한다. 갈수록 낮아지는 출산율, 한층 더 가까워진 초고령화 사회 등 급격하게 나빠지는 여러 사회지수는 더 이상 장애는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경종을 울리는 모양새다.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복지와 시혜 차원을 떠나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광양시도 등록장애인구 8000명을 향해가는 등 전국적인 흐름을 빗겨가긴 어렵다.
정인화 시장은 지난 2023년 직접 ‘무장애 도시’를 선포하는 등 촘촘한 복지망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나섰다. 이에 <광양신문>은 장애인 생활체육 선진사례를 둘러보기 위해 광주, 진주, 일본 도쿄 등을 방문했다. 장애인 생활체육 중에도 특히 인기가 높은 수영시설을 위주로 4회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주>
<보도 순서>
1. 왜 장애인 체육시설이 필요한가
2. 재활도 운동도 만능운동, 수영-도쿄 장애인 수영협회
3. “못하는 스포츠는 없습니다” -도쿄도 장애인종합스포츠센터
4. ‘동행’의 첫걸음-광주 북구·진주 반다비체육센터
수영, 장애인에겐 더 특별한 운동
걷기나 가벼운 달리기를 제외하고 장애인들이 가장 희망하는 운동은 단연코 수영이다. 신체가 불편해 보행이 어렵더라도 물에 몸을 맡기게 되면 부력 덕에 움직임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물속에서 움직이는 것만으로 근력을 향상시켜 건강 유지에도 도움이 되지만 재활면에서도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 특히 발달장애가 있는 아동들의 경우 드라마틱한 효과를 거두기도 한다.
사카이 야스하 일본 장애인수영협회 대표는 “비장애인들은 성장 과정에서 기거나 걷는 법을 배우게되면서 피부에 와닿을 때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능력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며 “그러나 발달장애아동들은 나이가 들더라도 이런 반사가 남아있는 경우가 많아 사소한 자극에도 깜짝 놀라거나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렸을 때부터 수영을 배우게 되면 물이 피부에 닿는 느낌부터 천천히 적응하게 되면서 일반적인 외부 자극에도 예민하지 않게 된다”며 “발달장애를 겪고 있다면 물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재활 효과가 있다”고 덧붙였다.
특성맞춤지도, 정신건강에도 ‘맞춤’
사카이 대표는 총 80여명의 발달 장애아동을 지도하고 있다. 아이들 개개인의 장애 특성에 맞춰 각자 다른 훈련법으로 지도한다. 이를 위해 장애아동만을 위한 특별한 수영보조기구도 개발했다.
그는 “무엇보다 아이들이 돌발 행동을 보일 때 그에 맞춰 진정시킬 수 있는 방법을 빠르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탈의실이나 화장실 등 조용한 공간에서 진정되길 기다려줄때도 있고 물장구를 쳐주면서 진정시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엘리트 체육 목표로 하고 있지 않아 아이들이 부담없이 ‘생활체육’ 자체로 수영을 즐긴다. 종종 출전하는 경우가 있지만 대회라기보단 비장애인과 함께 즐기는 수영축제에 가깝다. 그래도 코치없이 정해진 프로그램을 완료하고 나면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나는 효과가 있다.
사카이 대표는 “국가대표가 되어 여러 대회에서 수상하는 것도 의미가 크겠지만 결국엔 ‘나도 할수 있다’는 성취감을 심어 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한번 성취감을 느낀 아이들은 일상생활에서도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는데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강조했다.
이렇게나 달라질 수 있다니
직접 도쿄를 찾아 사카이 대표를 만나보니 놀라울 정도로 장애가 호전되는 사례를 들어볼 수 있었다.
사카이 대표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처음 수영을 시작할 땐 물에 들어가기는커녕 옷을 갈아입거나 간단한 대화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며 “특히 수영장은 소리가 울려 퍼지기 때문에 아이들이 돌발행동을 자주 보일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카이 대표의 묵묵한 기다림과 끈질긴 지도 속에 아이들은 수영장이 가장 편한 공간이 됐다.
실제로 사카이 대표에게 장기간 수영을 배워온 한 중학생은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심한 자폐를 앓았다. 보행은 가능했으나 숫자를 세거나 대화를 나누는 등 의사소통이 어려웠다. 물에 대한 감각을 익히는 데만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지만 수영을 배운 지 6년이 지난 현재는 싱크로나이즈 대회에 출전까지 할 정도다. 탈의실에 들어가 환복하는 것은 물론 대기와 시작신호를 인식하고 정확하게 시간을 셀 수 있게 됐다.
사카이 대표는 “싱크로나이즈 대회를 출전하면서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모른다”며 “점차 증상이 나아지면서 다른 곡들도 연습해 더 많은 대회에 출장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애인, 없는 게 아니라 숨는 것”
사카이 대표를 도와 발달장애 아동들을 지도하고 있는 테라니시 마사토씨는 30여년전부터 시각장애인 국가대표 수영 코치로 활동했다. 엘리트 체육계에 있어오면서 페럴림픽에 나가 메달을 획득할때도 많은 보람과 자부심을 느껴왔지만 최근에는 조그만 수영장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는 재미에 흠뻑 빠졌다.
마사토 코치는 “국가대표 코치로 있을때는 장애인들이 이렇게나 많은지 몰랐다”며 “이들이 없어서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 갖춰지지 않아 활동하기 힘들기 때문에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도쿄도 올림픽 같은 대형 체육행사를 통해 장애인 시설 및 체육 인프라를 확대하다 보니 점차 생활체육을 즐기는 인구가 늘고 있다”며 “페럴림픽에 나가 메달을 따는 것도 좋지만 기본적으로 체육 저변 인구를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함께 사는 법, 작은 수영장에서 찾아
일본 장애인 수영협회는 현재 도쿄도 미타카시에 위치한 SUBARU(스바루) 스포츠센터 수영장의 한 레인을 빌려 쓰고 있다. 25m 풀 레인 8개, 수심이 얕은 건강증진 레인 2개를 갖춘 규모의 수영장이지만 처음에는 시설을 이용하는 비장애인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불편함을 드러내는 노골적인 시선뿐 아니라 직접 발달장애 아동들에게 면박을 주기도 했었다.
사카이 대표는 “강습 초반에는 아이들을 이해해달라고 설명하고 사과하는 시간도 적잖게 소요됐다”며 “그래도 지금은 먼저 인사를 해주거나 간단한 과자를 건네기도 하는 등 모두들 편하게 대해주신다”고 말했다.
가볍게 웃어보이며 설명하는 사카이 대표였지만 사실 이 과정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 항의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방문해 아이들이 이 시설을 써야 하는 이유를 꾸준히 설명한 그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되려 아이들은 더욱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 도쿄 외곽에 위치한 작은 수영장은 비장애인들과 장애인들이 함께 즐기고 생활하는 진정한 ‘베리어 프리’구역이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