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歷史) 속으로 사라진 역사(驛舍)‘간이역’…사라진 ‘쉼표!’
역사(歷史) 속으로 사라진 역사(驛舍)‘간이역’…사라진 ‘쉼표!’
  • 김영신 기자
  • 승인 2018.11.01 20:34
  • 호수 78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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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더 빠르게…사라진 시간

“하이패스는 빠르고 편리합니다”

간이역 이야기를 하려는데 고속도로 톨게이트 하이패스를 권장하는 문구가 생각나는 것은, 요금소를 불과 몇 초 더 빠르게 통과하는 고속도로 하이패스처럼 이제 기차 레일에도 곡선이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빨리, 더 빨리’. 세상도, 사람도‘빨리 더 빨리’에 이미 익숙해진지 오래지만 직선 레일 위를 300km 이상 달리는 고속열차도 느리다는 생각을 할 만큼 사람들은 아직도‘빠르게 더 빠르게’를 원한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일주일을 보내고 나면 무언가에 홀려 시간을 허공에 날려 보낸 것 같은 허허로움에 빠질 때가 있다. ‘속도를 줄이면 사람이 보입니다’보행자를 보호하는 교통안내 글귀처럼 일상의 속도를 늦추니 계절이 보이고 내가 보인다.

그러나 어느새,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이 계절이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왔다가 벌써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일상의 쉼표!‘간이역’

가을바람에 이끌려 그곳으로 가봤으나…

 

‘아직 늦지 않았다’…위로 삼으며 서늘해진 가을바람에 이끌려 간이역으로 간다.

고독마저 감미롭고 낭만으로 승화되는 시간, 코스모스 하늘거리는 간이역은 소박한 행복을 느끼기에 어울리는 곳 중 하나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작고 소박한 행복을 마주할 수 있는 간이역이라는 공간이 지도에서 점점 사라질 준비를 하고 있거나 이미 사라졌다.

▲ 역 폐쇄로 찾는 이 없는 옥곡역 앞 슈퍼.

느릿느릿 옆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삶은 계란을 까먹던 완행열차 대신 눈 깜짝할 새 모든 풍경을 스쳐가는 고속주행열차가 간이역을 시나브로 삼켜버린 것이다.

광주 송정역을 출발해서 밀양 삼랑진역에 닿는 경전선 300.7㎞ 중 광양을 거쳐 가는 간이역은 광양역, 골약역, 옥곡역, 진상역 등 4곳이다.

경전선 33개 역 중 열차는 이제 14개의 역에서 멈출 뿐, 이별과 만남을 이어주는 작은 간이역에서 더 이상 열차가 멈추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됐다.

더구나 복선화작업이 시작되면서 골약역과 옥곡역 등 두 개의 간이역은 1968년 개설이후 50여년 만에 폐쇄됐다.

▲ 더이상 기차가 오지 않는 옥곡역.

폐쇄된 간이역과 함께 사람들의 추억도 묻혔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 온 어떤 이는 광주에서 대학을 다니던 국문학도였다. 그 사람은 어느 겨울 눈 오는 날, 광주 송정역에서 골약역까지 비둘기호를 타고 기차여행을 왔었다고 했다.

여행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가 경전선 완행열차에서 채집한 겨울감성을 한편의 시로 썼던, 대학시절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이라고 했다.

프랑스의 수필가이자 철학 교수였던 피에르 상소는‘느리게 사는 즐거움2’에서“당시의 기차들은 속도 때문에 풍경을 그대로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또 작은 도시와 큰 도시를 차별하지도 않았다…”라고 추억의 완행열차에 대해 이렇게 썼다.

♬슬픔은 간이역에 코스모스로 피고...

코스모스 피어 있는 정든 고향역…♬

김창완도, 나훈아도 이렇게 간이역을 노래했다. 슬픔이 꽃으로 피고 애틋한 고향생각도 나게 하는 간이역. 이렇게 완행열차가 지나던 간이역은 삶의 쉼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 곁의 간이역은 역사(驛舍)와 함께 철로도, 이별과 만남 앞에서 울고 웃던 사람들도, 붉은 신호기를 든 역무원의 정겨운 모습도 볼 수 없게 됐다.

 

▲ 추억이 멈춘 간이역.

가난한 오빠, 청춘의 낭만

김치국물 세라복 여고생의 추억을 품어준 그 곳,‘간이역’

 

엄마가 싸 준 도시락을 보자기에 야무지게 싸서 가방에 넣었지만 새어나온 김치 국물 냄새를 어찌할 수 없어서 얼굴 빨개지던 진상역의 세라복을 입은 여고생의 모습도 추억 속에 묻혔다.

간이역 대합실과 플랫폼을 서성이던 사람들의 흔적마저 모두 사라져버린 지금, 간이역은 기억 저 편에 몇 컷의 이미지 사진으로 박혀있을 뿐이다.

생겨났다고 때가 되면 모두 소멸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렇더라도 흔적은 남겨두었어야 했다.

▲ 옛 광양역 앞에서 열리던 장터.

광양역은 자취 없이 새 역사를 지어 이사했고 골약역, 옥곡역은 생긴 지 50여년 만인 지난 2016년에 사람들의 애환과 추억을 품에 안고 긴 시간이 남겨 준 촘촘한 삶의 조각들을 기억할만한 어떤 장치하나 없이 역사 속으로 소멸해 갔다.

푸릇한 스물 네 살 겨울, 갑자기 겨울바다가 보고 싶어 친구들과 함께 밤 열차를 타고 해운대를 가기로 했다.

밤 열한시 넘어 순천역을 출발해 부전역으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에 올랐다. 열차 안은 젊은이들로 북적였고 좌석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통로를 가득 메워 열차 안은 사람들의 체취와 함께 퀴퀴한 묵은 냄새가 진동해 미간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새로운 곳을 향해 가는 여행의 즐거움에 들떠 차창 밖으로 점점이 빛나는 밤 풍경을 보면서 캔 맥주를 따서 마셔가며 설레는 청춘의 시간을 박제했다.

경전선 열차의 추억은 옆 동네 사는 친구 오빠 이야기에도 숨어있다.

국민학교를 졸업한 가난한 친구의 오빠는 중학교에 가지 못했고 부산의 한 신발공장에 취직했다. 그 친구의 신발이 유난히 좋아보였던 이유이기도 했다.

가난한 전라도 사람들이 대도시 부산으로 생업을 찾아 떠나기 위해 몸을 실었고, 때로는 이십대 청춘들의 낭만여행 아이콘이 되기도 했던 경전선 완행열차가 소임을 다하고 사라지자 열차가 머물던 간이역도 함께 사라졌다.

골약역의 없어진 선로는 더 그리웠지만, 역사 주변으로 잡초만 무성하고 해질 무렵 굳게 닫힌 옥곡 역사(驛舍)입구에 혼자 쓸쓸히 서 있으려니 갑자기 사람이 몹시 그리워졌다.

역 마당 한켠에 키 큰 은행나무가 시간을 이고 서있는 옥곡역은 아직 역사(驛舍)가 그대로 남아있어 방치하기엔 아쉬운 공간이다.

더 이상 기차는 오지 않지만 아직 모습을 간직한 옥곡역은 소박한‘쉼’의 공간으로 우리 곁에 오래도록 남아 주었으면 좋겠다.

 

*후기: 골약, 옥곡, 진상역 등 코레일 광양역에서 관리하는 간이역들에 대한 이야기는 블로거들이 올려놓은 블로그에서, 역의 유래와 역사는 인터넷 지식백과에서만 희미하게 찾을 수 있을 뿐 별도로 관리하는 자료가 없어 아쉬움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