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군사기지, 일제강점기 상흔 간직한 아픈 섬‘지심도’
일본 군사기지, 일제강점기 상흔 간직한 아픈 섬‘지심도’
  • 김영신 기자
  • 승인 2017.08.11 18:12
  • 호수 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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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이후 국방부 소유, 지금은‘한려해상국립공원’ 동백나무 군락‘절경’

입추가 지났지만 더위는 아직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비가 오지 않아 계곡은 말랐고 더위에 지친 사람들의 여름나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휴가를 안 갈 수도 없는 일, 어떤 이들은“더운데 어디를 가느냐”며 고개를 젓지만 즐기기에 가장 좋은 계절은 그래도‘여름’이다. 또 그 여름을 즐기기엔‘섬’만한 곳이 없다. 지난달 17일부터 19일까지 한국언론진흥재단 부산지사 현장연수‘도서지역의 생태환경과 문화’를 통해 거제도 이수도와 지심도 두 곳을 탐방하고, 7월 31일자‘이수도’에 이어 이번 호에는 오래된 동백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동백섬‘지심도’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가슴 아픈 역사 안고 있는‘지심도’

거제 장승포 동백섬 지심도 터미널에서 뱃길로 약 20분 남짓, 출렁이는 푸른 바다 위를 유유히 흘러 병풍처럼 펼쳐지는 작은 섬들을 스치고 스쳐 도착한 지심도. 바다를 향해 바위에 앉아있는 인어공주가 지심도를 찾는 여행객을 맨 처음 반긴다.

용왕의 딸 인어공주와 호랑이의 슬픈 사랑을 간직한 범바위

범 바위에 얽힌 호랑이와 인어공주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있고 동백꽃이 흐드러지는 계절이면 섬 전체가 탐방객으로 넘쳐나는 아름다운 섬이지만 지심도의 속살은 일제강점기의 아픈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 있다.

한반도와 대마도 사이의 대한해협을 지나는 길목이라는 지리적 조건과 바위 절벽으로 되어있는 섬 주변 환경 때문에 외부의 접근이 어려워‘난공불락’의 천연 요새로 판단한 일본이 1936년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섬 주민들을 강제로 내쫓고 해군기지로 활용했다. 해방 후에는 국방부로 이관돼 군사시설로 사용되다 지난 3월, 지심도 국방과학연구소 해양시험장의 소유권이 거제시로 반환됨에 따라 80여년 만에 드디어 주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주민들을 강제로 내쫓은 일본은 섬 곳곳에 콘크리트로 덮은 포진지와 탄약고를 만들었고 선박과 사람들을 감시하기 위한 서치라이트 보관 장소를 설치했으며 대포를 쏘기 위해 남쪽의 해금강, 북쪽의 부산 진해, 동쪽의 대마도 등 각 방향을 향해 방향지시석을 세웠다. 이때 만들어진 탄약고는 현재 지심도 역사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고 일장기를 달았던 망루의 국기게양대는 철제 게양대를 새로 세워서 2015년 8월부터 태극기를 게양하고 있다.

한려해상국립공원 김현권 해설사의 말에 의하면 이 국기게양대는‘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국기게양대’라고 한다.

동백나무, 후박나무, 육박나무, 대나무 등 수령이 최소 100년 이상 300년 된 지심도의 나무들은 울창한 숲이 되어 시원한 그늘을 이루고,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가 함께 해 걷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포진지와 방향지시석, 탄약고 등 일제강점기의 흔적을 지나칠 때면 역사의 아픔이 고개를 든다.

빼앗긴 삶터에서 조상들은 적국 일본의 전쟁 승리를 위해 힘든 노동을 해야 했다. 실제로 일제강점기 지심도에는 징용으로 끌려 온 한국인들이 많았다고 해설사는 설명했다.

지심도에는 서릿대가 유독 많다. 이유는 대나무는 뿌리가 옆으로 퍼져 포를 쏠 때 진동이 크기 때문에 땅속으로 뿌리를 내리는 서릿대를 심어 진동을 최소화했다고 한다.

서치라이트 보관장소
포진지

 

이미자 노래‘섬마을 선생님’이 생각나는 섬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 선생님 / 열아홉살 섬 색시가 순정을 바쳐 사랑한 그 이름은 총각 선생님 /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가지를 마오~’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천천히 걷다가 1995년에 폐교되어 마을회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일운초등학교 지심도 분교로 들어서니 이미자의‘섬마을 선생님’노래가 생각난다.

너무 깊숙한 섬, 선생님들은 보통 두 달 이상을 버티지 못하고 육지로 돌아갔으나 53년에 부임한 어느 선생님은 3년을 머물렀다고 한다.

섬 모양이 마음 심(心)자를 닮았다고 해서 1896년 고종때부터 ‘지심도’라 불렸고 동백나무가 60~7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어 동백섬이라 부르기도 하는 이 섬은 동백이 피는 초겨울부터 3월에 가장 많은 인파들로 붐빈다.

‘툭’하고 봉오리째 떨어지는 동백꽃의 모습이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연상하게 하지만 지심도에는 행복한 사람들이 있다. 현재 지심도에는 20여 가구, 4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일본군 장교가 머물렀던 곳. 지금은 민박집으로 사용하고 있다.

일본군 장교가 쓰던 일본식 집의 원형이 그대로 남아있고 주민들은 그 집을 민박집으로 꾸며 생업을 이어간다.

섬을 떠날 시간이 다가오자 배우 안재홍을 닮은 민박집 주인이 싱싱한 자연산 돌 멍게와 해삼을 급히 썰어서 소주 한 병과 내온다.

 

추억은 남기고 쓰레기는 가져오시라!

지심도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일부다. 섬을 이용하는 여행객들이 무분별하게 버리는 쓰레기들로 섬은 몸살을 앓고  탐방객과 주민들과의 마찰도 종종 일어난다고 한다.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지심도 선착장엔 접안시설이 없어 하선시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는 선장의 당부를 들으며 섬에 발을 디딘지 1박 2일, 섬 여행이 끝났다.

‘외로운 섬’이었던 도시의 사람들이 지심도에 와서‘또 하나의 육지’가 되었다가 다시‘육지의 섬’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친절한 민박집 주인이 4륜 오토바이 수레에 일행의 짐을 싣고 선착장까지 배웅했다. 민박집 주인의 일곱 살 난 딸은 배를 타고 장승포에 있는 유치원에 다닌다.

친절한 민박집 주인과 그의 예쁜 딸이 건강하게 잘 지내기를 바라며 뱃머리에 부서지는 파도와 시원한 바닷바람을 느끼며 일상이 기다리는 육지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