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자 / 광양문인협회회원
차를 타고 긴 여행을 하다보면 잠시 쉬어 가는 휴게소가 중간 중간 있다. 이럴 때 대부분의 손님들이 들러서 가는 또 하나의 작은 나 홀로 쉼터가 있다. 새로 조성된 서해안 도로 시설과 함께 마련된 공중이 이용하는 그 장소가 으리번쩍하게 닦여져 있다. 일명 뒷간이라고 칭하는 그곳이 악취 아닌 향취가 후각에 와 닫는다.
공중이 이용하는 장 속에 나만이 소유하는 좁은 공간에 예쁜 캐릭터 그림글귀가 시안으로 신호등처럼 환하게 번져온다. “좋은 님이 머물다 간 자리는 아름답습니다”라는 짧은글이, 거리에 감시카메라보다 깊은 주의를 주는 명언의 단어이다.
언제부터 우리 사는 세상이 이처럼 좋아 졌을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시로 길을 나서면 급하게 필요한 그 문은 철통으로 차단 해 놓은 데가 다반사였다.
생각은 기억을 더듬어 속을 메스껍게 했던 옛 추억으로 향하고 있었다. 젊은 날 조그만 장사를 할 때 일이다. 한 건물 안에 상점은 다섯 집인데 볼일을 보는 그곳은 두 칸뿐이었다.
나보다 앞서부터 가게를 하는 그들은 건물 뒤 안쪽 흠이진 곳에 있는 그 문을 자물통으로 통제구역을 해놓고 살고 있었다. 어쩌다 급한 상황이 되어 달려가 보면 밤사이 옆집 음식점 손님들이 쏟아놓은 오물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 광경에는 오만상이 찡그려지고 먹은 게 넘어 오려했다.
그때 집주인이 선심 쓰듯 내어준 열쇠는 녹이 슬어 얼른 따지지도 않았다. 그럴 때 절박한 생리의 고통은 화를 초래했다. 평소에 깔끔한 나 자신은 아니지만 나날을 그냥 지날 수는 없었다. 가게 창을 열기 전에 뒤쪽을 치워야했다.
그러는 내 수고가 이웃에게도 손님에게도 큰 의미가 없는 걸 깨달았다. 문제는 개방하지 않는 화장실문이었다. 하고자 하는 일의 목적지인 벽이 꼼짝 안하니, 인적이 드문 음침한 벽 뒤에 지니고 간 그것을 쏟아놓는 현실이었다.
생각 끝에 문제의 그곳을 오픈 해 두자는 제의를 이웃들에게 했다. 통닭집도, 자장면집도 하나같이 웃어버렸다. 꼭꼭 잠가놓아도 그 모양인데 무슨 말을 하는 거냐는 것이다. 하지만 열어놓아야 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고 겨우 한 칸만을 따놓자는 합의를 보았다.
처음엔 뒷간을 터놓자는 목소리를 높인 결과로 이웃 상인들의 화재거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가는 사람 오는 사람 떠돌이 걸인까지 얼마나 드나들지, 볼만할 거라고”하는 말이 등 뒤에서 들렸다. 그러나 확실하게 드나들 수 있는 혼자 쓰는 그곳은 그 후론 문밖에까지 치울 일이 거의 없었다.
먹을거리 장사를 하면서 배불리 먹고 가길 바라는 장사 집에서, 급해서 거길 갔을 때, 꼭 잠긴 자물통이 황당함을 보여줄 때 , 주위의 눈치를 살펴 그 일을 해결하는 것은 관용적인 사실임을 지명할 것이다.
어린시절 우리부모님은 어려운 농촌살림을 하시면서도 행상을 하는 아주머니나 떠돌이 엿장수 아저씨에게도, 밥 먹이고 잠재워 주는 일을 일상처럼 하셨음을 보았다.
시대 변천과 함께 생존경쟁의 현실에 따라 나 자신도 우리부모님처럼 남에게 후한 인심은 베풀지 못한다.
길을 걷다 어쩌다 배고픔의 인내보다 절박한 볼 일이 생길 때 그 일을 해결 하고 간다면 그 일이야말로 구세주를 만난 듯 반가울 것이다.
일상에서 어쩌다 나그네 되어 쉬어가야 하는 급한 일 그 일이야말로 남성들은 여성과 달라 쉽게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여성들이야말로 그 문이 오픈 되어 있을 때 구세주를 만난 듯 이 보다 고마운 일이 또 있겠는가! 남에게 밥을 주는 일도, 잠을 재워주는 일도 아닌 일이 아닌가!
세상은 각박할지 몰라도 우리네 문화시설은 급성장을 했다. 고속도로 휴게소도 지방에 따라 그 시설 차이가 있겠지만 가는 곳마다 잘 갖추어져 있다. 가까운 공원이나 체육시설 광장에도 그곳을 찾는 이마다 불편하지 않게 두루마리 화장지 준비까지 설치해 놓았다. 이에 집집마다 사람마다 문화생활과 교육수준도 고차원적이다.
한집에 두 개의 화장실 시설에 자동차도 두세대나 있는 가정도 있다. 그 옛날 재래식 변소간은 전설의 고향의 이야기 제목이 되었다.
그러나 요즈음도 소규모 음식점이나 찻집에는 그 문을 차단해놓고 손님이 찾으면, 후한 인심이나 쓰는 것처럼 찬바람을 보이며 키를 내어주는 업주도 더러 있다. 그런 분을 대할 때 나는 어떻게 자기 집에 오신 손님들에게 불편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일을 하느냐고 말하고 싶을 때도 있다.
얼마 전 차를 운전하고 어느 지역에 화장실이 새로 조성되어 있다싶어 그곳에 이르니 빛 좋은 개살구처럼 건물만 조성해놓고 문은 잠근 채로 냉기를 내는 지방의 인심을 볼 때 때로는 끼니를 때우는 일보다 중요한 민생고 해결의 일원임을 실감한다.
인제는 우리도 사회 발전에 맞추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어느 상점, 어느 가정이라도 화장실 한번쯤은 쉽게 이용하는 좋은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중이 이용하는 장 속에 나만이 소유하는 좁은 공간에 예쁜 캐릭터 그림글귀가 시안으로 신호등처럼 환하게 번져온다. “좋은 님이 머물다 간 자리는 아름답습니다”라는 짧은글이, 거리에 감시카메라보다 깊은 주의를 주는 명언의 단어이다.
언제부터 우리 사는 세상이 이처럼 좋아 졌을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시로 길을 나서면 급하게 필요한 그 문은 철통으로 차단 해 놓은 데가 다반사였다.
생각은 기억을 더듬어 속을 메스껍게 했던 옛 추억으로 향하고 있었다. 젊은 날 조그만 장사를 할 때 일이다. 한 건물 안에 상점은 다섯 집인데 볼일을 보는 그곳은 두 칸뿐이었다.
나보다 앞서부터 가게를 하는 그들은 건물 뒤 안쪽 흠이진 곳에 있는 그 문을 자물통으로 통제구역을 해놓고 살고 있었다. 어쩌다 급한 상황이 되어 달려가 보면 밤사이 옆집 음식점 손님들이 쏟아놓은 오물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 광경에는 오만상이 찡그려지고 먹은 게 넘어 오려했다.
그때 집주인이 선심 쓰듯 내어준 열쇠는 녹이 슬어 얼른 따지지도 않았다. 그럴 때 절박한 생리의 고통은 화를 초래했다. 평소에 깔끔한 나 자신은 아니지만 나날을 그냥 지날 수는 없었다. 가게 창을 열기 전에 뒤쪽을 치워야했다.
그러는 내 수고가 이웃에게도 손님에게도 큰 의미가 없는 걸 깨달았다. 문제는 개방하지 않는 화장실문이었다. 하고자 하는 일의 목적지인 벽이 꼼짝 안하니, 인적이 드문 음침한 벽 뒤에 지니고 간 그것을 쏟아놓는 현실이었다.
생각 끝에 문제의 그곳을 오픈 해 두자는 제의를 이웃들에게 했다. 통닭집도, 자장면집도 하나같이 웃어버렸다. 꼭꼭 잠가놓아도 그 모양인데 무슨 말을 하는 거냐는 것이다. 하지만 열어놓아야 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고 겨우 한 칸만을 따놓자는 합의를 보았다.
처음엔 뒷간을 터놓자는 목소리를 높인 결과로 이웃 상인들의 화재거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가는 사람 오는 사람 떠돌이 걸인까지 얼마나 드나들지, 볼만할 거라고”하는 말이 등 뒤에서 들렸다. 그러나 확실하게 드나들 수 있는 혼자 쓰는 그곳은 그 후론 문밖에까지 치울 일이 거의 없었다.
먹을거리 장사를 하면서 배불리 먹고 가길 바라는 장사 집에서, 급해서 거길 갔을 때, 꼭 잠긴 자물통이 황당함을 보여줄 때 , 주위의 눈치를 살펴 그 일을 해결하는 것은 관용적인 사실임을 지명할 것이다.
어린시절 우리부모님은 어려운 농촌살림을 하시면서도 행상을 하는 아주머니나 떠돌이 엿장수 아저씨에게도, 밥 먹이고 잠재워 주는 일을 일상처럼 하셨음을 보았다.
시대 변천과 함께 생존경쟁의 현실에 따라 나 자신도 우리부모님처럼 남에게 후한 인심은 베풀지 못한다.
길을 걷다 어쩌다 배고픔의 인내보다 절박한 볼 일이 생길 때 그 일을 해결 하고 간다면 그 일이야말로 구세주를 만난 듯 반가울 것이다.
일상에서 어쩌다 나그네 되어 쉬어가야 하는 급한 일 그 일이야말로 남성들은 여성과 달라 쉽게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여성들이야말로 그 문이 오픈 되어 있을 때 구세주를 만난 듯 이 보다 고마운 일이 또 있겠는가! 남에게 밥을 주는 일도, 잠을 재워주는 일도 아닌 일이 아닌가!
세상은 각박할지 몰라도 우리네 문화시설은 급성장을 했다. 고속도로 휴게소도 지방에 따라 그 시설 차이가 있겠지만 가는 곳마다 잘 갖추어져 있다. 가까운 공원이나 체육시설 광장에도 그곳을 찾는 이마다 불편하지 않게 두루마리 화장지 준비까지 설치해 놓았다. 이에 집집마다 사람마다 문화생활과 교육수준도 고차원적이다.
한집에 두 개의 화장실 시설에 자동차도 두세대나 있는 가정도 있다. 그 옛날 재래식 변소간은 전설의 고향의 이야기 제목이 되었다.
그러나 요즈음도 소규모 음식점이나 찻집에는 그 문을 차단해놓고 손님이 찾으면, 후한 인심이나 쓰는 것처럼 찬바람을 보이며 키를 내어주는 업주도 더러 있다. 그런 분을 대할 때 나는 어떻게 자기 집에 오신 손님들에게 불편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일을 하느냐고 말하고 싶을 때도 있다.
얼마 전 차를 운전하고 어느 지역에 화장실이 새로 조성되어 있다싶어 그곳에 이르니 빛 좋은 개살구처럼 건물만 조성해놓고 문은 잠근 채로 냉기를 내는 지방의 인심을 볼 때 때로는 끼니를 때우는 일보다 중요한 민생고 해결의 일원임을 실감한다.
인제는 우리도 사회 발전에 맞추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어느 상점, 어느 가정이라도 화장실 한번쯤은 쉽게 이용하는 좋은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입력 : 2005년 1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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