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 구속됐지만, 회복길 ‘요원’
“법률, 금융 등 원스톱 지원 필요”
전남도, 예산 등 이유로 ‘난색’

“갓난아이를 들쳐 업고 돌아다녔지만 전세사기 피해자로 전락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부동산 사기 수법에 능통하지 못한 제가 잘못이었을까요?”
전남동부권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지난 11일 광양시민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남 동부청사에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센터 설립를 촉구했다. 전국적으로도 광양·순천 등에서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전라남도에 접수된 전세 사기 피해는 979건으로 피해액이 900억원에 달한다. 이 중 광양시와 순천시는 각 457건, 217건으로 전체 피해의 70%에 육박한다. 전남 동부권은 일부 저가 아파트에서 전세가가 매매가를 넘어서는 일명 ‘깡통전세’ 현상이 도드라진 지역이다. 이 때문에 청년이나 신혼부부 등 사회 초년생들에게 피해가 집중됐다.
전날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힌 권모씨가 1심에서 징역 9년을 선고받았지만 피해회복은 까마득한 현실이다. 권씨는 2020년부터 3년 동안 광양에서 202채의 아파트를 매입했다. 피해자 121명에게 돌려주지 않은 전세 보증금만 100억원에 달한다.
전국적으로 이같은 문제가 대두되며 각 광역지자체들은 앞다퉈 ‘전세피해지원센터’를 운영하고 행·재정적 지원 절차에 나섰다. 특히 부산광역시의 경우 HUG 직원이 상주해 상담과 접수절차를 돕고 지역 은행과 연계한 금융 지원을 하는 등 원스톱 지원 시스템을 마련했다. 그러나 전남도는 생활안전지원자금 100만원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지원이 없는 실정이다. 이마저 이사 지원금을 받은 경우라면 차감된다. 광양시는 30만원씩 3달에 걸쳐 긴급복지지원비를 지원하고 있지만 기타 법률상담이나 심리상담, 금융지원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피해자들은 “잦은 인사이동으로 각 기관과 부서가 전문성을 갖추지 못해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내지 못하고 있다”며 “이 부분에 거듭해서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갈 기미는 보이지 않고 제자리걸음만 3년째”라고 토로했다. 이어 “신규로 피해자가 발생하면 기존 피해자들이 모여있는 단체에 도움을 받고 있다”며 “법률, 금융, 행정지원 등을 원스톱으로 제공하고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피해지원센터가 설립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양시 피해자로 나선 서보라 씨(33)는 “위험한 현장에서 일하는 남편의 목숨값이나 다름없는 퇴직금과 20대 전부를 바쳐 모은 전 재산을 전부 잃었다”며 “문제의 집에서 죽으면 전세금을 돌려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극단적인 선택이 떠오르기도 했다”고 울먹였다. 이어 “피해자 전용 대출이나 안정지원금 등 정책 지원을 받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알아 보았으나 실질적인 도움을 받긴 어려웠다”며 “법을 지키며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삶이 송두리째 무너져 버렸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5월 만기 예정인 전세사기 특별법 기간 연장 △전남 동부청사 내 전세피해지원센터 설립 등을 촉구했다. 한편 이날 열린 제388회 전남도의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는 박경미 도의원이 도정질문을 통해 같은 내용의 건의안을 대표 발의하고, 이튿날 광양시도 전남도에 전세피해지원센터 설치를 요구하는 내용이 담긴 건의문을 발송했다. 다만 전남도는 예산 등을 이유로 당장 센터 설치는 어렵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