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역사적인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제정되면서 희생자 유가족들의 73년 한을 풀 계기가 마련됐다. 현대사의 비극인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발생한 이후 여수와 순천을 포함한 전남지역은 물론 전북과 경남 서부 등에도 진한 상흔을 남겼고, 특히 광양은 백운산 계곡처럼 길고 깊은 상처에 고통 받아야 했다. 특별법 제정에 맞춰 인근 도시들은 ‘여순사건’을 지역의 역사·문화적 자산으로 확보하기 위한 발 빠른 행보에 나선 모습이다. 광양시도 전문가 토론회 개최와 바로알기 교육, 지역전문가 육성, 기념 시설 건립 등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계획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에 광양신문은 광양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여순사건과 한국전쟁 전후 여건과 피해 상황 등을 살펴보는 기획보도를 연재한다. 인용된 자료는 지난 2013년 광양시의회 의원 연구모임이 수행한 ‘한국전쟁 전·후 광양의 민간인 희생자 조사 연구 활동 결과 보고서’를 중심으로 정리했다. <편집자 주>
<글싣는 순서>
1. 73년 한 풀게 되나… ‘여순특별법’제정
2. 백운산 계곡만큼 깊고 긴 아픔
3. 가장 많은 피해자 나온 광양읍
4. 전쟁 전 큰 피해…봉강, 옥룡면
5. 군경과 빨치산 양쪽에 희생…옥곡, 진상, 진월
6. 섬진강변 25㎞ 늘어선 다압면의 슬픔
▶ 7. 이젠 진실 규명·명예 회복의 길로
여순특별법, 원안 대폭 수정…진실 규명 어려움
미비점, 시행령으로 보완해 특별법 취지 살려야
여순사건법 시행령 입법 예고
여순사건특별법 제정 후 정부에서도 여순사건특별법 시행령 제정에 착수하고, 관련 기관·단체의 의견 청취에 나서는 등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절차가 진행되고 있어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정부가 마련한 시행령 안은 11월 2일 입법예고(행정안전부공고제2021-664호)에 들어갔다. 의견을 제출할 기관·단체 또는 개인은 오는 12월 13일까지 통합입법예고센터를 통해 온라인으로 의견을 제출하거나, 행정안전부장관에게 의견서를 제출하면 된다. 이 안은 12월에 법제처 심사, 내년 1월 국무회의 통과 후 최종 공포·시행될 예정이다.
시행령 안에는 진상규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여순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위원회’(위원회) 조직 및 운영을 담고 있다. 또 진상규명을 위한 신고자의 범위 및 절차규정, 희생자·유족의 신고 및 심의·결정, ‘진상보고서 작성기획단’의 설치 및 운영 등 법률에서 위임 하고 있는 사항과 그 시행에 필요한 사항이 있다. 이밖에 의료지원금 및 생활지원금에 관한 사항, 재심의 신청 및 결정 등에 필요한 사항을 담고 있다.
따라서 시행령을 어떻게 마련하느냐에 따라 향후 여순사건의 진상규명과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이라는 특별법의 원래 취지를 효과적으로 추진해 나갈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순사건특별법은 당초 원안에서 대폭 수정돼 제정된 관계로 사건의 진실규명에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는 것이 지역의 공통된 인식이다.
시행령 잘 만들고, 법령 개정도 준비해야
이 때문에 올바른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서는 여순사건법의 미비한 사항은 시행령 제정으로 보완해야 하고, 필요하다면 여순사건법 개정 또한 조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역의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는다.
특히 지난 10월 27일 행정안전부에서 지자체에 조회한 ‘여순사건특별법 시행령 안’은 20년 전의 제주 4·3 특별법 시행령에서 한 걸음도 진전되지 못한 시행령 안으로 주민들의 바람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역의 비판에 직면했다.
이와 관련 여수시의회는 지난 9일 여순사건특별법의 보완을 위한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시행령 제정 촉구 결의안을 채택하기에 이른다.
여수시의회는 “미비한 여순사건법은 제대로 된 시행령 제정으로 보완이 필요하다”며 “정부는 현재의 시행령에 2000년 이후 여러 과거사위원회에서 보다 선진화된 조사방식으로 진상규명을 한 사례를 적극 수용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위원회에는 진상규명을 위한 구체적인 조직이 필요하다”며 “여순사건법 제3조 6항에 규정된 소위원회는 여순사건법시행령을 통해 위원회 심의·의결 안건을 사전 검토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설치하는 것이므로 그 권한을 명확히 함과 동시에 근거를 마련해 상설화가 요청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여순사건법 제3조 6항에 규정된 소위원회는 관계 부처 장관급들이 업무를 맡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므로 민간위원 위주로 구성될 수밖에 없다”며“소위원회의 소위원장이 결정되면, 소위원장을 중심으로 전체 위원회가 운영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의견을 냈다.
그러면서 “소위원장이 상임위원은 아니지만 의사부와 집행부를 총괄하고 조사 조직을 관장하게 하며 그에 맞는 권한과 책임이 주어져야 한다”고 강조 했다.
또 실무위원회는 신고 접수 및 희생자와 유족 관계를 확인하는 업무, 위원회 활동과 적극적인 신고 접수를 위한 홍보에 적합한 조직으로 구성되어야 하며, 실무조직은 파견직 공무원과 다수의 전문적인 별정적 공무원을 조사관으로 채용·구성되어야 하고 조사, 명예회복, 행정 업무 등 최소 5개과가 있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특히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조사보고서작성기획단은 소위원회 산하에 별도로 설치해 소위원장이 보고서 작성 기획 업무를 총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자문기구는 진상조사보고서 작성과 관련해 전문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단체·연구자, “시행령안 4·3 답습…전라남도 적극 역할”지적
민주연구단체협의회는 지난 10일 성명을 내고 “여순사건 특별법은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던 제주4·3특별법을 그대로 답습해 정부의 진상규명 의지를 의심케 한다”며 “유족의 나이가 이미 80~90대에 이르러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진상규명위가 집중적으로 조사활동을 할 수 있게 시행령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전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도 지난 3일 “한계가 뚜렷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여순사건의 진상을 규명할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유족과 주민의 우려가 크다”며 “실무위원회도 전·남북, 경남이 협의해 설치하고 신고처를 위원회와 3개 시·도 뿐 아니라 해외공관까지 늘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여순사건 연구자인 주철희 박사도 이번 시행령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이번 입법예고안은 제주4·3법을 그대로 인용해 만든 것으로, 이 말은 여순도 20년이 걸릴 수 있다는 얘기”라며 “시행령의 내용이 가장 중요한 만큼 지역사회가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합의하고, 강력한 투쟁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법의 한계와 부족한 부분을 살펴서 대선 후보들에게 새정부 탄생에 맞춰 법 개정 요구를 해야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실무위원회가 꾸려질 전라남도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며, 전남도가 적극 나설 수 있도록 지역사회와 언론의 역할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주 박사는 “전남도는 지역사회의 요구와 목소리를 어떻게 중앙에 전달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고, 실무위원회에서 실제로 조사를 담당할 인력을 양성하는게 급선무”라며 “하지만 도는 무슨 일인지 공청회라든가 공론화 과정도 갖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내년 1월 21일 위원회가 활동 시작하면 이때부터 준비하겠다는 심산 아니냐”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 서동용 국회의원(순천·광양·곡성·구례 을)은v“입법예고 과정에서 소병철, 김회재, 주철현 의원과 함께 지역여론을 수렴하고 의제를 정해 정부에 제출하기로 했다”며 “특히 이미 많은 분이 돌아가셨고, 기간과 장소도 넓다는 점에서 지역 전문가의 직권조사가 가능하도록 위원회 의결이 선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