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기업, 삼성이 운영하는 리움미술관은 최첨단 하이테크놀로지의 향연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미술관 곳곳에 삼성의 최첨단 전자 기술이 녹아들어 작품을 관람하러 온 관람객들이 자연스레 삼성 제품을 곳곳에서 마주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건축가들이 설계에 참여한 미술관 건물에서도‘고품격’만을 추구하는 삼성의 기업정신을 더불어 엿볼 수 있었다.
미술관 자체가 최고의 예술품
1965년 삼성문화재단 설립 이후 소중한 문화유산을 보전하고 대중에게 알린다는 취지로 2004년 서울 한남동에 삼성미술관을 세웠다. 이 미술관의 이름이 리움(Leeum)이다. 리움이라는 미술관 이름은 설립자인 이병철 회장의 성을 영문 표기한 Lee와 미술관을 뜻하는 영어 뮤지움의 어미-um을 합성한 것이라 한다. 사족이지만 에버랜드에 있는 호암미술관의 호암도 이병철 회장의 호이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남산자락에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세를 지닌 한남동에 자리한 리움은‘자연과 건축의 조화’를 강조하는 건축물로 세워졌다.
대지 700평에 연면적 3000평인 뮤지움 1과 대지 500평에 연면적 1500평 규모인 뮤지움 2는 각각 고미술과 현대미술 상설 전시를 위한 공간이다. 미술관 입구에 자리한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는 대지 1200평에 연면적 3900평으로 다음 세대의 창의력 증진을 위한 교육 관련 시설이다.
뮤지움 1은 스위스 건축가 마리오 보타(Mario Botta)가, 그와 나란히 들어선 뮤지움 2는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이 디자인한 작품이다. 이 미술관 건축물은 네덜란드 출신의 건축가 렘 쿨하스(Rem Koolhaas)가 설계한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와 함께 문화 공익단지를 이룬다. 하나의 미술관을 위해 각기 개성이 다른 우리 시대 최고의 건축가들이 모인 것은 세계 속에서도 그 예가 드문 역사적 사건이다. 이 세 건축물은 건축가의 개성을 드러내는 다양한 재료와 혁신적 기법이 사용됐다.
뮤지움 1, 전통의 뿌리와 힘을 상징
먼저 뮤지움 1의 설계를 맡은 마리오 보타는 미술관 건축은“과거에 종교 건축이 했던 역할, 즉 경건함과 숭고함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역설해 왔다. 건축가의 가치관이 투영된 뮤지움 1은 전통과 고미술품의 불변하는 가치를 수호하는 요새 또는 성(城)을 연상시킨다. 특히 흙과 불로 만들어진 외벽의 테라코타 벽돌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온 한국의 도자기를 상징한다.
남산을 호위하는 듯한 직육면체와, 남쪽 도로와 만나는 땅에 박힌 듯한 역원추형 외관은 서로 대비되면서도 단순한 볼륨의 조화를 이룬다. 건물의 스카이라인은 중세의 성곽에서 유래한 요철의 형태로 처리했다. 이 옥상부에 배치된 나무들은 요새의 깃발을 연상시키며 역동적 뉘앙스를 자아낸다.
성곽 도시라는 서울의 지리적 전통을 은유하는 이러한 요소는 렘 쿨하스 건축의 수평적 플랫폼(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과, 은둔자적 이미지를 주는 장 누벨의 육중한 매스(MUSEUM 2) 사이에서 단지 전체의 이미지를 주도한다.
뮤지움 2, 기술과 예술의 감각적 이미지
첨단 테크놀로지로 구현되는 기술 미학과 현대 예술이 교차하는 접점에서 건축 디자인에 임해온 장 누벨은 건축을 “공간을 구성하는 기술일 뿐만 아니라 이미지를 생산하는 작업”이라고 규정한다. 뮤지움 2는 그러한 장 누벨의 디자인 프로세스가 가장 잘 구현된 작품이다.
움푹 파인 대지 속에서 육중하게 솟아난 뮤지움 2는 대지 위로 자라난 나무들과 함께 그 형상 자체가 계속 생성되고 있는 현대 미술을 상징하는 듯하다. 지상으로 올라온 상층부는 유리로 된 외벽과 다양한 크기의 직육면체‘전시박스(cube)’를 주 요소로 삼고 있다.
자유분방하게 배치되는 이 전시박스들은 건물 내부로는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전시 공간을 체험하게 하며, 동시에 건물의 외부 형태를 역동적으로 만들어 준다.
전시박스의 재료로는 세계 최초로 부식 스테인레스 스틸이 이용됐다. 녹이 슬지 않도록 처리된 스테인레스 스틸에 녹을 슬게 한다는 이 역설적 발상을 구현하기 위하여 수많은 견본 검토와 테스트를 거쳐야 했다. 사물을 역설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생성해내는 현대미술처럼 뮤지움 2는 기존의 생각을 뛰어넘는 재료와 공간을 통해 건물 자체를 도시의 대지 위에 들어선 하나의 거대한 미술품으로 승화시켜 낸다.
뮤지움 2는 한국 근·현대미술가뿐 아니라 도널드 저드(Donald Judd),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등 세계 정상의 현대 미술가들을 망라하는 상설 전시 공간으로 사용된다.
뮤지움 3, 자신을 숨기고 자신을 드러낸 공간의 오디세이
건축이 드러나지 않는 건축, 이것이 가능할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꾸준히 시도해온 현대 건축의 아방가르드, 렘 쿨하스는“나는 건축이 어떻게 이벤트의 흐름을 보내고, 강화시키고, 유연하게 하고, 투명하게 하는지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자신의 건물을 지나치게 드러나지 않게 함으로써 자신의 건축을 표현하고자 한 렘 쿨하스의 의지는 이 건축 단지를 내부순환이 이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조화로운 도시의 모델로 승화시키고 있다. “건축은 통찰력과 주위 여건의 부딪힘”이라는 렘 쿨하스의 언명을 가장 잘 나타내는 공간 계획 가운데 하나가 바로 아동교육문화센터다. 렘 쿨하스의 디자인에서 건축가의 의도와 표정은 최소화된다. 그는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의 설계를 맡아 개별 건물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동선을 제안했다. 대지의 경계면을 따라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와 주차 공간의 유리 벽면이 자연스럽게 흐르게 했을 뿐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 무덤덤한 흐름 안에는 미래의 공간이 강력한 에너지를 품은 채 진동하고 있다. 유리를 통해 보이는 거대한 블랙박스와 그 블랙박스를 품은 높이 17m의 유연한 공간은 동선과 시점마다 서로 다른 공감각적 체험을 하게 하는 건축의 모험이다.
렘 쿨하스는 또한 뮤지움 1, 뮤지움 2로 이루어지는 삼성미술관 Leeum과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가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기 위해 어떻게 대지를 포용하고 조절할 것인가 하는 근본적 문제에도 적극 참여했다.
내 손안의 도슨트, 디지털가이드
리움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디지털가이드였다. 무전기 같은 설비에 관람 순서에 맞춰 숫자를 누르면 원하는 언어로 해설을 들을 수 있다. 이런 오디오 가이드 시스템은 세계 전역의 전시관들에서 널리 이용되고 있지만, 삼성 리움의 디지털가이드는 이보다 한 차원 앞선 것이었다.
갤럭시 노트2를 전시관람용 단말기로 만든 디지털 가이드 기기를 받고 조작방법을 찾으며 계단에 들어서자, 미술관의 안내 멘트와 함께 작품 설명이 시작됐다. 이후에는 별도의 조작 없이 작품 앞의 빨간 점 위에 올라서면 자동으로 해당 작품 설명이 진행됐다.
주요 도자기 작품에는‘360도 View기능’이 탑재되어 있어 직접 작품을 돌려가며 전시장에서는 볼 수 없는 작품의 뒷면까지 감상하실 수 있었다. 화첩 작품은 책장을 넘겨가며 전시 되어있지 않은 부분까지 감상할 수 있었다. 증강현실 기능은 고서화에 포함된 한문 텍스트를 한글로 해석해 줬다.
이미지다운로드 기능을 사용하면 간직하고 싶은 미술관 건축물 이미지를 내 휴대폰에 옮길 수 있었다. 관람을 마치고 ‘작품 다시보기 기능’을 클릭하면 감상했던 작품의 리스트도 확인할 수 있었다. 디지털 가이드 하나로 미술 초보인 나도 작품 감상의 재미와 폭이 넓어진 느낌이 들어 ‘와, 역시 삼성답다’라는 찬사가 절로 나왔다.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를 지원한다. 초등학생 이상부터 대여 가능하며 별도의 비용을 지불하거나 종일 관람권을 매표하면 사용 가능하다.
/공동취재 정인서 광주문화도시계획 상임대표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