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퇴직한 최영식씨, 회사수첩 30권에 일기 기록

당시 광양만은 학교와 사원주택이 먼저 지어졌고 이후에 공장이 들어섰다. 최씨는“바다에 공장을 세워가지고 제대로 돌아갈까 의구심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공장이 무너질 거라며 말리는 사람도 있었다. 모래바람을 뚫고 출퇴근하고 술을 한잔 하려해도 태인도까지 배를 타고 가야했다. 수천 개의 모래기둥을 박아 매립하는 것을 보니 확신이 들었다.”
최씨 일기에는 지난 34년 동안 철강인으로 살면서 겪은 성취와 감동, 삶의 고단함과 애환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회사의 성장과 함께 있었던 일련의 사건 속에서 갈등하고 만족했던 순간의 감정이 애사심과 함께 기록됐다.
92년 포스코가 3조3교대에서 4조3교대로 전환하던 날, 최씨는 일기장에“선진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시작되던 것이다.
직원들 심신단련에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기록했다. 같은 해 10월 광양4기 공장 종합준공식 날에는“총 조강생산량 1,140만톤이 되었고 포스코는 총 2100만톤 조강생산체제를 갖췄다”며 “포항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광양만에서 세계를 향한 대역사를 마무리했다. 이런 현장을 지켜보는 나 자신이 자랑스럽고 회사에 무한 긍지를 느끼는 하루”라고 썼다.
93년 8월 1일 회사가 직원들의 편의를 위해 출퇴근화를 안전화에서 단화로 바뀔 때 그는“포항제철에 오랜 관습 하나가 깨뜨려지는 날”이라고 적었다. 94년 1월 27일에는“회사는 사상최대 흑자를 기록했다.
3200억의 순이익이 났다. 지난 1년 동안 직원 전체가 매우 열심히 일해 온 덕분”이라고 적기도 했다.
이밖에도 87년 6월 항쟁, 95년 포스코 민영화, 98년 IMF 금모으기 운동 등 회사와 사회를 뒤흔든 굵직한 사건은 물론 가정사와 개인사 등도 당시에 느낀 감정과 진솔한 의견을 담백하게 적어나갔다.
입사 당시 고졸이었던 최씨는 2008년 3월 한 지방대학 야간에 입학해 주경야독 만학도로 사회복지사, 보육교사, 청소년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올해 8월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쳤다. 그간의 일기는 학업에 대한 열정과 회사의 배려에 감사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회사가 매년 사원들에게 지급해온 수첩에 쓴 일기장은 총 30권. 그는 81년 1월 첫 봉급 8만원을 받았을 때부터 03년 1월까지 매달 회사에서 지급받은 월급봉투도 하나도 빠짐없이 간직하고 있다. 이후 회사가 월급을 계좌이체하면서 월급봉투는 사라졌다. 지난 19일 2014년 4분기 정년퇴직한 최씨는“한 평생 한 직장에서 한 가정을 일구고 일하게 해준 회사와 동료들에게 감사하다”며 고마움을 전하고 “후배들이 포스코를 영속된 기업으로 이끌어달라”고 당부했다.
저작권자 © 광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