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숙 가야금 독주회!
그리고 가족과 사제지간의 하모니!
‘아리랑’을 부르며 가야금을 뜯는 그녀가 너무나 아름답고 멋있어 보였다. 딸은 아쟁을, 사위는 고수북, 남편은 카메라맨, 딸아이의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은 사회자로 등장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뿌듯한 광경이었다는 말로 다 설명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가족이 같은 길을 가고 있는 모습은 신선했다. 서른이 넘은 초등학교 제자의 가족 음악회에서 사회를 맡은 우계남 선생님도 정말 멋졌다.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뀌는 세월을 가야금과 함께 보냈습니다. 돌아보니 인생에서 짧지 않은 세월을 가야금과 함께 했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가야금을 접하고 배우던 열정을 그대로 간직한 채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광주로, 화순으로, 원거리를 마다않고 공부하러 다니면서 늘 즐거움으로 여겼습니다. 가야금을 연주하는 동안만큼은 모든 것을 잊고 음악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장미숙 가야금 독주회에 관객이었던 모든 분들은 생각보다 높은 연주 실력에 놀랐고, 어여쁜 딸 부부와 함께 음악회를 가질 수 있는 그녀를 부러워했다. 그녀는 제자인 김아영과도 함께 무대에 올랐다.
사제지간의 연주 또한 그날 함께 했던 이들에게 잊지 못할 명장면으로 남았다.
가야금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으로!!
전남 해남 송지가 고향인 그녀가 처음에 가야금을 접하게 된 사연을 들어보자. “고수북을 하시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끼가 발산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옛날 녹음기나 오디오가 없던 시절에 아버지는 늘 유성기와 북을 가까이 하며 노래를 하셨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라며 자연스레 음악에 대한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부끄러움이 남달리 많았기에 가야금을 통해서 자신감을 갖고 싶기도 했고요. 가야금 특기반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때로는 불도 없이 다락방에서 연습을 하면서도 너무나 재미있고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얼굴이 상기되어 그 동안의 감회를 쏟아놓는 모습이 아름답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개인지도를 받으며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혼을 한 후 10년 동안은 아이들 키우랴 살림하랴 벅찬 생활 때문에 쉬었지만 가야금에 대한 열망은 가슴 속에 내내 숨겨두었지요.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자 본격적으로 가야금을 익히기 시작했습니다. 10년 동안 방치해 두었던 탓에 습기에 맞아 가야금이 망가졌습니다.
가야금을 다시금 고쳐서 선영숙(인간문화재-광주) 선생님을 찾아가 주 1회 지도를 받으며 본격적으로 다시 가야금 수업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가야금도 역시 학력이 있어야 대외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선생님은 대학 진학이 필요 없다고 하셨으나 고집을 꺾지 않았으며 대학에 입학하여 가야금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열정적이고 진취적이다. 가야금에 관련된 일이라면 더욱 열정이 솟구친다고 한다.
그녀에게는 국악을 물려받은 어여쁜 딸 김참다운이 있다!
그녀의 딸 이름은 김참다운이다. 아쟁을 전공했다. 유치원 때부터 가야금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는데 유독 끼를 보였다고 한다. 전문가와 상담을 한 결과 가야금 분야는 인원이 넘쳐나서 비전이 없을 것이라며 아쟁을 해보라고 권유를 했다. 그래서 시작한 아쟁은 그녀의 분신이 되어 국립국악고등학교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원을 졸업하여 현재 국립국악원 단원으로 활동 중이며 수원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에 출강하고 있다. 2013년에는 김참다운 아쟁산조 음반을 발매하였으며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전수자가 되었다.
광양에서 태어나 성장한 김참다운은 우리 고장의 자랑스러운 인물로 인정됨이 마땅하다.
김참다운의 남편은 김인수이다. 그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를 졸업했다. 서울시무형문화재 제25호 판소리 고법 전수장학생으로 뽑히기도 했으며 지금은 정가악회 단원으로 활동 중이다.
자그마한 체구에 야무진 입매가 그를 말해주듯 착하고 세련된 정신을 갖고 있는 청년이라며 장모인 장미숙 선생은 사위 자랑에 빠진다. 처의 외조부님 뒤를 잇기라도 하듯 고수북을 하는 사위가 장모인 그녀 입장에선 새삼 고맙고 기특하기만 하단다.
봉사하는 사람으로! 최고의 지도강사로!
장미숙 선생은 1997년부터 가야금 연주 재능기부 봉사를 하고 있다. 그녀가 가르치는 수강생들과 함께 광양시노인전문요양원과 진상노인공동체, 그리고 광양우리동산요양원을 찾아가 재능기부 봉사활동을 펴고 있다. 그녀는 전라남도광양평생교육관에서 가야금 지도강사를 하고 있다. 그녀의 가야금 교육발전에 대한 바람을 들어보았다.
“앞으로의 가야금 연주는 고전 음악 그대로를 80% 유지하면서 현대 음악을 20% 정도만 가미하여 가야금 본래 음색의 명맥을 이어가기를 바랍니다. 재미와 인기만 생각하여 퓨전을 너무 좇다보면 가야금 정통의 명맥이 끊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가진 연주자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광양에는 제가 맨 처음 가야금의 향기를 전달하였습니다. 그래서 더욱 이 고장에 대한 애착이 강합니다.” 그리고 광양에서 가야금을 배운 사람치고 그녀를 거치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앞으로 더욱 정진하여 우리의 전통 가야금 문화가 사라지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녀와 이야기하는 내내 내가 살아있음을 강하게 느꼈다. 그녀가 열정적으로 가야금 연주를 할 수 있는 그날까지 좋은 후학들이 뒤를 이어 번성하길 기원한다.
백숙아 광양문화연구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