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강면 구서 마시 덕촌 부암 하조 개룡 신촌 마을
“굽이굽이 맑은 물 반나절 찾아드니/흰 구름 깊은 곳에 종소리 들리네”(임준석, 1691) 조선 숙종 때 광양 현감이 성불사를 찾아 읊은 시 구절이다.
형제봉 아래 골짜기에서 여수지맥 비봉산 안쪽에 형성된 마을들. 신촌에서 순천 서면 청소골 가는 질매재는 여수지맥이 시작되는 곳이며, 예전에 안치리가 있었다. 성불계곡 하조마을까지 상수도 연결 공사를 하는 중이다.
맑은 물에 비친 마을의 역사
구서는 서당이 있었다는 뜻이고, 둔촌과 구석동이라고도 했다. 마을 서쪽 비봉산 해발 500m 고지에 암서와(岩棲窩)라는 자연 암굴이 있다. 마시는 마치와 시목으로 구분한다. 마치는 매재인데 말 모양의 뒷산에 큰 고개가 있고, 시목은 감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덕촌은 영촌과 덕평으로 구분된다. 도치재 마을 영촌이 덕촌이고, 덕평은 들판에 있는 마을이며 햇살수련원이 있다. 부암은 아랫먹뱅이를 고상하게 바꾼 것이며, 필동은 웃먹방이다. 하조 마을은 학(鶴)의 형국이고, 상조를 거쳐 구례 간전으로 가는 새재(산 사이의 고개, 鳥嶺)를 이름 삼았다. 성불사가 있고, 동학농민운동과 천도교 지도자가 났다.
개룡은 개룡과 영수로 구분한다. 개룡은 개룡사라는 절 이름을 따랐고, 영수는 시냇물이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다. 냇물을 중심으로 2개의 촌락을 이뤄서 양주동(兩州洞)이라고도 했다. 신촌은 띠밭골(莘基村)을 줄여서 썼고, 질매재(鞍峙里)는 광양 서쪽 끝이다. 임진왜란 때 활동한 형제 의병장의 묘와 사당이 있다.
농산촌 마을 새롭게 가꾸기
구서 이상호(56) 씨는 소를 20여 마리 키우는데 값이 하락하여 힘들며, 매실과 다래도 가꾼다. 덕촌 김경자(52) 씨는 보건진료소장으로 26년 근무하며 글을 몰라서 출장 표찰을 읽지 못하고 몇 차례 다녀가는 노인들을 위해 한글 교실을 운영하여 60여 명의 눈을 밝혔다.
부암 한기원(56) 씨는 대를 이어 양돈을 하는데 구제역 파동 2년 동안은 야반도주하고 싶었고, 사업을 줄여서 돼지 700여 마리를 키우며 매실도 가꾼다. 내동회 청년 활동을 하면서 해마다 경로잔치를 베푼 것이 이어지고 있어 보람이다.
하조 조일문(72) 씨는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여·순사건이 일어나 마을 45호가 소개했고, 빨치산 남태준 사령관과 얘기도 나눴다. 상조마을에는 호랑이가 내려와 가축을 물어가니 포수가 드나들었다고 한다.
김세광(56) 씨는 하조에 자리한 손윗동서 집에 모인 4동서가 이웃하며 살자고 의견을 모은 뒤, 07년 영업하는 집을 사서 들어왔다. 맑은 물 흐르는 곳이 좋았고, 광양 출신의 선배 이균영의 소개로 혼인했는데 부인 복향옥(47) 씨는 봉강초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엄마로 통한다.
신촌 서효석(49) 씨는 이장으로써 정보화마을과 녹색체험마을을 동시에 운영하며 활기를 더하고 있다. 김승기(57) 씨는 어머니를 모시려고 귀향한 지 8년째이며, 봉강권역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 운영위원장으로서 햇살수련원을 12년 7월부터 관리하며 소득사업으로 정착시키는 길을 찾고 있다.
김재중(39) 씨는 05년 10여 년의 도시 생활을 접고 부군의 고향 마을로 들어오니 큰 아들의 피부에 아토피가 사라져 좋았다. 복분자 사업에 참여했는데, 생산 과정에 손질이 많이 가고 고창의 북미산 복분자보다 비싼 토종을 알리는 일이 힘들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