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시 옥룡면 추산리 백계산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옥룡사지는 통일신라시대 고승이시며 풍수지리설의 원조이신 선각국사 도선께서 35년 동안 머무시면서 수백 명의 제자를 길러 내신 후 열반에 드신 옥룡사가 있던 곳으로 우리나라 불교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천년 불교 성지로 손꼽히는 곳입니다.
옥룡사지 일대는 백계동 혹은 백학동이라 하여 길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옥룡사에 기거하던 선각국사 도선께서는 영암에서 추운겨울 빨래하던 최씨 낭자가 물에 떠내려 온 탐스러운 참외를 건져먹은 후 잉태하여 827년에 태어났습니다.
도선 국사는 15살 때 머리를 깎고 불교에 입문 하셨으며 곡성 태안사에서 당시 선종의 대가이시던 혜철선사로 부터 불법을 배웠으며, 그 뒤 전국의 명당자리를 익히며 수행을 하시다가 37세 되던 해에 옥룡사에 들어오셔서 도호를 옥룡자라 칭하고 35년 동안 머무시면서 수백 명의 제자를 길러내신 후 72세 때 입적하셨습니다. 옥룡사파라는 제자들의 모임이 만들어 지기도 했으며, 옥룡이라는 지명도 도선 국사의 도호인 옥룡자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당시 신라 말 혼란기로 신라가 망하고 고려 건국이 가까워 왔음을 예견한 도선 국사께서는 청년시절의 왕건에게 고려 건국에 필요한 덕과 지략을 가르쳤다는 일화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또한 당시 묘지 터를 중요시 여기던 중국의 풍수지리상을 과감히 깨트리고 모든 절터와 집터 촌락과 도읍지에 이르기까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것을 중요시 여겼으며, 결함이 있는 곳에 나무를 심고 탑을 세워 그 결함을 보완하는 것을 비보풍수라고 하는데, 비보풍수 즉 한국식 풍수지리상을 개창하신 분입니다.
이와 같이 선각국사 도선은 뛰어난 선승으로서 사회 혼란기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의 선각자요, 경세가로 우리민족의 지대한 관심사였던 풍수지리설의 대가로서 큰 발자취를 남기신 분입니다.
도선 국사께서 기거하던 옥룡사는 도선께서 옥룡사에 들어오실 때만 해도 작은 암자였다고 합니다. 암자 앞에 연못이 있었는데 그 연못에 아홉 마리의 용이 살면서 사람들을 괴롭히자 도선 국사께서 용들을 다 몰아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백용 한 마리가 남아서 계속 사람들을 괴롭히자 지팡이를 던져 눈을 멀게 하고 뜨거운 숯을 연못에 넣어 물을 끓게 하자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렇게 메운 연못위에 도선께서 864년에 옥룡사를 중수하셨습니다. 중수 후 도선 국사께서는 옥룡사에 백씨 성을 가진 자는 절대 들이지 말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 뒤 옥룡사는 임진왜란 등의 수난을 겪으면서 수 차례 불에 탔다가 다시 지어지곤 하다가 1878년에 화재로 완전히 소실이 되었습니다. 옥룡사가 불에 탄 뒤에 알아봤더니 옥룡사에서 불을 때던 공양주의 성이 백씨였다고 합니다.
만약 도선 국사의 말에 따라 옥룡사에 백씨 성의 공양주를 들이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우리 앞에 천년 고찰 옥룡사가 그대로 남아 있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와 더불어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또 옥룡사지에는 물 한바가지를 떠서 마시며 소원을 빌면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진다는 소원 우물이 있습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야당시절 이곳에 들린 적이 있었는데 물 한 바가지를 마시고 가셨다고 합니다. 그 뒤 노무현은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셨습니다.
뿐만아니라, 옥룡사지 일대에는 “나는 그대를 사랑합니다.” 란 꽃말을 가진 7천여그루의 동백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천년기념물 제489호인 동백림이 있습니다.
동백림을 포함한 옥룡사지 일대는 1998년에 사적 제 407호로 지정 되었습니다. 광양시에서는 순천대학교 박물관에 의뢰해서 지난 1994년부터 수차례에 걸친 정밀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로 정확한 절의 위치와 규모 등을 파악해서 원형 그대로 복원해 관광화 할 예정으로 있습니다.
여러분!!
꼭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습니까?
사랑 때문에 눈물짓는 젊은이들이 계십니까?
행운을 안겨 줄 옥룡사지가 여러분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