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쌍사자 석등은 3기가 있다. 전남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석등(국보 제103호), 충북 보운 법주사 쌍사자석등(국보 제5호), 경남 합천 영암사지 쌍사자석등(보물 제353호)이다. 이 쌍사자 석등들은 우리 나라 뿐 아니라 세계에 유례가 없는 아름다운 것이다.
이중 가장 균형이 잡히고 멋진 석등이 바로 우리 광양의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이다. 이는 자타가 공인하는 객관적 사실로서, 이러한 연유로 인해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은 1919년 경복궁으로, 1931년 조선총독부에서 다시 경복궁 자경전으로, 1959년 경무대, 1960년 덕수궁, 1972년 경복궁, 1986년 중앙청, 1990년 국립 광주박물관으로 민족문화의 수난사를 대변하듯 유랑을 했다.
또한 일본인들에 의해 밀반출 하려는 것을 지역민들이 저지하기도 했다. 이처럼 훌륭하고 아름다운 석등이 우리 광양의 석등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石燈(석등)은 돌로 만든 燈器(등기)이다 燈(등)을 밝혀 진리의 光明(광명)을 열어주는 法器(법기)이다. 이 석등은 상ㆍ중ㆍ하대로 구분하고 중간의 竿柱石(간주석)을 불교의 팔정도를 의미하는 팔각기둥으로 하는 것이 보통인데, 쌍사자 석등은 지혜를 상징하는 사자 두 마리가 온 힘을 다해 연꽃무늬의 仰蓮(앙련:연꽃이 하늘을 보고 활짝 피어있는 모습)을 바치고 있고 그 앙련위에 등을 밝히는 火舍石(화사석)을 설치했다.
화사석은 4방(고. 집. 멸. 도)으로 火窓(화창)이 뚫혀 있고 그 위에 옥개석이 있고 정상 에는 寶珠(보주)가 놓여 있다. 火舍(화사)는 火(불)의 집이다.
진리의 불이 4방으로 난 화창을 통하여 어둠의 衆生界(중생계)를 영원히 밝혀 주고 있는것 이다. 앙련 위에는 즉 연꽃 위에는 부처님과 부처의 경지에 준하는 보살만이 연꽃위에 앉을 수 있다. 앙련 위에 놓여 있는 화사석에는 바로 부처님의 진리의 빛이 있는곳 이다.
중흥산성 쌍사자석등이 휼륭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이유는 전 세계에 하나뿐인 아주 특별한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같은 국보인 충북 보은 속리산 법주사의 쌍사자석등이 하대부분의 覆蓮(복련 : 연꽃을 덮어 놓은 모양)위에 쌍사자가 서 있다면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은 복련위에 다시 앙련을 만들어 연꽃이 땅과 하늘을 바라보게 하고 부처님이 앉아 계시는 앙련위에 쌍사자가 서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 가치 때문에 우리나라 중요한 기관에서 서로 욕심을 내서 석등을 가져가려고 했던 것이다.
사자 두 마리가 가슴을 맞대고 한 마리는 입을 벌려 시작과 창조를 뜻하고 한 마리는 입을 다물어 끝과 소멸을 나타내고 있다. 한 마리는 獅子喉(사자후)를 토하고 한 마리는 시작과 끝을 잇는 영원한 지혜를 상징하고 서 있다.
이렇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등이 광양 태생 이라는 것이 우리들의 긍지요 자부심 인것이다. 이제 2011년 2월말에서 3월초 광양역사문화관이 개관하게 될 것이다. 이 쌍사자 석등 진품이 역사문화관에 전시 된다면 얼마나 기쁜 일이 되겠는가.
참으로 아쉽지만 그 진품을 닮은 모형이 광양읍 읍내리 272-1번지 광양문화원내 광양역사 문화관에 전시 됩니다. 진품의 자료를 토대로 만들었지만 어찌 똑 같을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근100년 동안 광양을 떠나있던 국보 제103호 중흥산성 쌍사자석등의 실물크기의 모형이 우리 곁에 이제 서 있다. 시민 여러분들께서도 그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감상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우리 시민 모두가 마음을 모아 소중한 우리 문화재를 되찾는다는 시대적 사명감으로 바로 인근에 있는 광주국립박물관에 외롭게 서있는 쌍사자석등 진품을 꼭 광양으로 가져오는 범시민 중흥산성 쌍사자석등 제자리 찾기 운동을 힘차게 전개해야 한다고 생각 한다. 문화재는 제 자리에 있어야만 진정한 가치를 발휘 할 수 있다.
광양르네상스운동의 첫 작품으로 광양의 국보인 중흥산성 쌍사자석등 찾아오기 운동을 통해 우리의 국보를 우리 곁에 찾아 놓아야 할 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