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의 대표적인 지역축제라 할 수 있는 올해 5대 축제가 모두 막을 내렸다.
봄철 매화, 동백, 철쭉 등 꽃 축제를 시작으로 8월 전어, 10월 숯불고기에 이르기까지 광양시가 가진 다양한 볼거리, 먹거리가 축제로 지역민들을 맞이했다.
광양시는 이런 대형 행사들을 치르면서 ‘1회용품 없는 축제’, ‘역대 최대 방문객 달성’ 등의 보도자료를 내고 성공적인 축제였노라 자평한다. 그러나 지역민 입장에서 축제 내막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고구마를 100개는 먹은 듯 답답할 따름이다.
지역축제를 경험한 것이 20년도 더됐다. 광양시와 전어축제 추진위원회에서는 전어축제의 전통성을 강조하면서 지역 중학생들을 전어잡이 전통행사에 동원했기 때문이다.
당시 진월남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나는 방과 후마다 땡볕 아래서 흰색 한복을 입고 바퀴가 고장난 배를 끌었다. 전어잡이 소리를 맛깔나게 부르던 친구를 배 위에 태우고서.
준비 과정이 힘들기도 했지만 조용하기만 했던 동네에 열리는 대규모 행사에 들뜬 마음을 감추기 힘들었다.
TV에서나 볼 수 있는 가수들이 마을을 찾았고, 구경하기도 힘든 돼지 바비큐가 24시간 돌아가고 있었다. 야구공을 던지거나 장난감 총을 쏴 각종 경품을 뽑는 재미도 쏠쏠했다.
밤 8시도 되지 않아 모든 불이 꺼지던 동네에서 축제는 그야말로 잔치였다. 인근 다압에서 열리는 매화축제도 마찬가지였다. 약속 없이도 축제장에 가면 친구들이 있었고,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또 하나 스쳐가는 기억은 가족들 손을 잡고 숯불구이를 먹으러 갔던 기억이다. 살림이 넉넉지 않은 탓에 광양전통숯불구이는 축제 때나 돼야 한번 맛볼 수 있는 메뉴였다. 달콤하면서도 사르르 녹는 환상적인 맛에 매년 숯불구이 축제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기도 했었다.
당시 광양에서 막 생겨나기 시작한 축제들은 한 소년의 유년시절에 ‘별천지’를 선물했다.
지역의 전통성과 먹거리를 자랑하기 위해 만들어진 축제들은 근래 들어 빠른 속도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많은 관광객이 찾는지, 얼마나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됐는지 등이 축제를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광양시도 매년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교통대책 마련, 유명 가수 초빙, 화장실 정비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관광객들의 높아진 눈높이를 맞추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스마트 폰을 이용해 언제 어디서나 타 지역의 축제를 볼 수 있고, 좋아진 교통망으로 타 지역의 축제장을 방문하는 것도 어렵지 않은 시대다.
접할 수 있는 정보가 많아지면서 비교군이 전국유명축제 혹은 해외까지도 늘었다.
이제 더 이상 남부지방 중소도시에서 20년이 넘게 해온 뻔한 축제는 급속도로 경쟁력을 잃어간다는 의미다.
결국 소비자들의 니즈를 맞추기 위해 발 빠르게 ‘변화’를 택한 지자체들도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남원시는 지난 5월 제94회 춘향제를 개최하면서 백종원 더본 코리아 대표의 컨설팅을 받았다. 이전까지 바가지 음식 등으로 언론으로부터 강한 질타를 받던 춘향제는 백 대표와 협업 이후 여러 온라인커뮤니티에서 “달라졌다. 또 가겠다”는 호평이 쏟아졌다.
안동시는 ‘2024년 안동 국제 탈춤페스티벌’에 백종원 대표와 손을 잡았다. 먹거리 축제가 아니였음에도 불구하고 백 대표는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고등어 김밥 △고등어 케밥 △참마육전버거 등을 선보이며 148만 관광객을 끌어모으기도 했다.
이 외에도 축제 주제를 활용한 체험 콘텐츠를 강화하고 최근 유행인 ‘요리 예능’ 등과 협업해 특색있는 먹거리를 만드는 지자체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선도적인 시도들은 유튜브나 온라인커뮤니티에서 입소문을 타고 지역 경쟁력까지 강화되는 모습이다.
‘별천지’에서 전어배를 끌었던 한 소년이 어른이 되어 광양지역 축제장을 찾을 때면 향수가 느껴지는 그대로인 풍경에 반가운 마음보단 씁쓸함이 앞선다.
더 이상 초대 가수들은 신기하지 않고, 바가지 일색에 비위생적인 야시장은 눈살만 찌푸려진다. 먹거리 축제 메뉴는 20년이 지나도 크게 변하지 않았고 즐길거리라고 해봐야 매력없는 빤한 콘텐츠들만 가득한 실정이다.
광양시도 지역축제를 수술대에 올려놓고 칼질을 해야 할 때가 왔다.
트렌드에 맞춘 축제 다변화, 파격적인 협업, 다양한 먹거리 개발 등 맞춤 전략을 수립하고 관광객들을 유혹해야 한다.
이미 폭넓은 시도로 성공한 사례가 점차 늘어나고 있으며 필요하다면 적극적인 벤치마킹과 축제추진위원회 폐지 같은 과감한 조치도 고려해 봐야 한다.
공공연히 말하는 지방소멸의 시대다.
지역을 살리고 지역경제에 활기를 불어놓기 위한 지역축제가 변화없이 현실에만 안주한다면 지방보다 지역축제가 먼저 소멸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