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지역史연구회‘마로희양’…창립기념 특강 통해 공개 예정
조선 순조 5년이던 1805년 음력 3월 20일 광양에는 약한 동풍이 불었고 먹구름이 드리운 뒤 비가 내렸다. 당시 광양현감 이시명은 광양 3월의 날씨 상황을 음력 4월 1일 전라좌수사에게 보고했다.
이 같은 내용은‘광양현 건대산봉수 음청일기(光陽縣 件臺山烽燧 隂晴日記)’에 기록된 것으로 남한에서 가장 오래된 음청일기로 평가받는다.
건대산은 현재 구봉산의 조선시대 명칭이며, 음청일기란 조선시대 봉수의 운용과 보고를 기록한 것으로, 앞 달의 일기 상황과 봉수 근무자의 성명을 다음 달 초 상부기관에 일기 형식으로 보고하던 것이다.
광양현 건대산봉수 음청일기(가로 62cm × 세로 103cm)의 소장자는 광양지역사연구회‘마로희양’의 이은철 대표다.
이 대표에 따르면 2017년 11월 경, 평소 이 대표가 광양 지역史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던 한 골동품 수집가가“음청일기는 나보다 이 선생이 소장하고 있는 게 더 낫겠다”며 호의를 나타내 구입한 것이다. 이 골동품 수집가는 음청일기를 2014년 광주의 한 골동품상에서 구입했다.
이은철 대표는 자신이 소장하게 된 광양현 건대산봉수 음청일기와 그동안의 연구결과를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공개는 오는 26일 19시 구봉산전망대 홍보관에서‘마로희양’창립기념 특강과 함께 이뤄진다.
광양지역사연구회‘마로희양’은 지난 3월 발족됐으며, 연구회 이름은 광양의 삼국시대 지명‘마로’와 통일신라시대 지명‘희양’에서 따온 것이다.
세세한 당시 상황 기록 눈길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음청일기
조선시대 봉수의 운용과 보고는 일기 형식으로 거행됐으며, 일기는 대부분‘음청일기’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지금까지 학계에 공개된 음청일기는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LH 토지주택박물관 등에 23점이 소장돼 있다.
도별로 살펴보면 △함경도 1점 △황해도 4점 △충청도 2점 △경상도 15점 △전라도 1점이다. 안타깝게도 현존하는 음청일기 23점 중 발신과 수신기관, 작성 연월일, 봉수 근무자, 기상 상황 30일(29일) 전부를 갖춘 자료는 10점에 불과하다.
마로희양이 공개하는‘광양현 건대산봉수 음청일기’는 작성 시기를 기준으로 1804년에 제작된 함경도 무산진 음청일기에 비해 1년 늦은 1805년에 작성된 자료이다. 남한만 한정한다면 가장 오래된 음청일기다.
그동안 전남에서 유일한 음청일기는‘해남현 관두·황원 음청일기(1877)’ 1점이었다. 이번에 공개되는 ‘광양 건대산봉수 음청일기’는 해남현 음청일기에 비해 시기적으로 72년이나 빠를 뿐 아니라, 날씨기록과 봉수 근무자의 이름이 아주 자세하다.
1805년 음력 3월 한 달간의 날씨가 날짜별로 맑고 흐린 상태, 바람의 세기와 방향까지 정확하게 기록돼 있다.
특히 봉수 근무자의 이름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우리나라 고유한자를 사용하고 있어, 1800년대 초반에 광양에 거주하였던 주민들의 실제 이름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이은철 대표는“봉수는 변방의 위급한 상황을 중앙에 신속히 보고하기 위한 옛 군사 통신 수단이지만, 실상 역사 속에서 적의 침입이 있었을 때 그 역할을 제대로 한 적은 별로 없었다”며“오히려 국태민안(國泰民安) 시절에 나라의 평안함을 알리는 심리적 효과가 더욱 컸다. 그래서 평상시에 올리는 1거를‘평안화’라고 불렀다”고 설명했다.
이어“이번‘광양 건대산봉수 음청일기 연구’를 통해, 1805년 3월 조선의 변방 광양 건대산봉수에서도 날마다 평안화가 피어올랐음을 볼 수 있었다”며“비록 백성의 입장에서 가장 혹독한 세도정치가 막을 여는 시기였지만, 광양의 봉수군들은 묵묵히 맡은 바 임무를 다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이번 특강을 통해 건대산봉수의 실제 운용 상황을 실증적으로 이해하고, 조선의 봉수제도에서 건대산봉수가 지니는 의미를 자리매김 해보고자 한다”며“아울러 광양 시민들이 지역 역사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번 특강은 코로나19 상황으로 참석자의 숫자를 제한함에 따라 특강 참석을 희망하는 사람은 반드시 마로희양에 사전 신청(010-4520-6833)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