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뙤약볕아래 목청껏 울어대는 매미의 울음소리도 어느 가장의 힘든 노동의 시간도 여름날의 하루는 온도계의 빨간 막대를 기록적으로 올려놓았다.
얼마나 더 기다리고 인내해야만 시원한 가을바람 한 자락 맞이할 수 있을까? 힘든 여름나기의 끝이 들녘의 곡식들을 영글어가기 위한 과정이라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니 어떤 방법으로 그 과정을 즐겨야 할지 곰곰이 생각하다 집 근처 도서관을 찾았다.
한 달에 한 번씩은 도서관을 찾아야겠다고 다짐을 하곤 했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게을리 했던 한 학기가 그렇게 훌쩍 지나갔고 학습장들은 종강을 했다.
어느 독지가의 기부로 몇 달 전 문을 연 집 근처 작은 도서관(용강도서관), 늘 그 앞을 지나가곤 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쉽게 문을 밀고 들어가지 못했다. 여유롭게 도서관에 앉아 지식의 숲속에서 여가를 즐기고 싶었던 욕망과는 다르게 한 학기동안 <강의>와 <문화관광해설> 등 투 잡을 뛰어야 하는 나의 여건이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아담한 도서관은 소소한 읽을거리들과 프로그램들이 나름의 빛깔을 잘 담아내고 있었다. 마을의 문화와 정서를 잘 그려내고 있는 도서관 도서목록을 따라 한 바퀴 휙~ 둘러보고 눈에 들어온 몇 권의 책을 선택해 담았다.
조선의 문장가들에게 배우는 <문장의 품격>과 류시화 시인의 <시로 납치하다> 그리고 박웅현의<여덟 단어>이들의 도서는 나에게 납치돼 우리집 서가로 옮겨왔다.
거창한 사회 문제나 심오한 사상이 아닌 형식과 제약에서 벗어난 일상에 대한 이야기들을 다채롭게 풀어낸 허균, 박지원 등 조선의 문장가들, 이들의 진솔한 내면을 드러낸 문장은 sns를 통해 짧은 글쓰기에 익숙한 우리에게 품격 있는 문장의 정수를 보여준다.
또한 <책은 도끼다>로 알려진 광고회사 대표 박웅현의 <여덟 단어>는 몇 년 전에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랐던 책이다. 그 때 읽고 또 한 번 뒤적거렸다.
여덟 개의 단어 키워드 속에 들어 있는 첫 번째 단어 자존은“나를 중히 여기는 것, 내 운명을 사랑하라”이 구절을 읽는 동안 숨이 탁, 멎었다. 그렇다. 나는 그동안 나의 본질의 모습을 얼마나 포장하며 살아왔던가? 어떠한 일에 최고가 되고 싶었고 경쟁의 대상으로만 나를 대하진 않았던가? 그래서 얻어지는 혹독한 가치의 기준점들이 무너지고 관계의 병까지 얻었던 나의 가치관이 바로 본질의 문제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김연자의 노래 아모르파티 가사가 눈에 들어 왔다.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누구나 빈손으로와
소설 같은 한 편의 얘기들을
세상에 뿌리며 살지
자신에게 실망 하지 마
모든 걸 잘할 순 없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돼
인생은 지금이야 아모르파티…”중략
- 김연자 아모르파티 가사 중에서-
아모르파티!(amor fati)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 인간이 가져야 할 삶의 태도를 설명하는 철학가 니체의 운명관을 나타내는 거라고 한다.
중년의 여성들이 왜 김연자의 노래 아모르파티에 열광하는지 이제야 그 의미를 되짚어 보며 오늘 나를 위한 선곡으로 아모르파티를 들었다. 그리고 근사한 저녁 한 끼를 나에게 대접했다.
아모르파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