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는 맑은 영혼의 울림이자 매개체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깨끗하게 하여 한없는 기쁨과 행복을 느끼게 해주고 메마른 현실에서도 희망을 갖게 하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또한 소설(小說)은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읽으며 우리가 가진 삶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게 해 줍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詩)나 소설을 한가히 읽을 시간이 없습니다.
현대는 속도전 시대입니다. 빠른 놈이 살아남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마음이 늘 분주합니다. 차분히 눈길을 주고받으며 이야기할 시간이 없습니다. 설령 함께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다 해도 머릿속은 늘 처리해야 할 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밥을 먹어도 여행을 가도 늘 종종걸음을 쳐야 합니다. 이것이 현대인들의 숙명입니다. 이렇게 살다가 세상을 하직한다는 것, 생각해보면 참으로 억울하지 싶습니다.
이쯤에서 만사분이정[萬事分已定]이면 부생공자망[浮生空自忙] 이라는 명심보감의 구절이 떠오릅니다. “모든 일의 분수는 이미 정해져 있거늘 생각 없는 사람들이 공연히 저 혼자 허둥지둥 바빠한다”는 말인데,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억울하지 않을까요. 아마도 우리 스스로 여유를 만들어 가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들어서 인공지능이 쓰나미처럼 몰려 들어올 때 지금의 인재들은 모두 속수무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수혜(修慧, 수행으로 얻은 지혜)가 인공지능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삶속에서 지혜(智慧)를 얻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지혜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잠시,‘나는 어떤 수준의 지혜를 가지고 있나’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필자가,“망치와 바가지가 부딪치면 무엇이 깨지나?”질문을 한다면, 젊은 사람이나 노인이나, 배운 사람이나 배우지 않은 사람 모두가“---당연히 바가지가 깨집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문혜(聞慧), 즉 듣고 보고 아는 지혜를 가진 사람은 당연히‘바가지가 깨진다.’라고 대답을 할 것입니다. 사혜(思慧), 즉 깊이 생각해보고 아는 지혜를 가진 사람은 ‘바가지가 재질은 쇠붙이이고 망치 재질은 프라스틱이라면 당연히 망치가 깨진다.’고 대답을 할 것입니다. 수혜(修慧), 즉 수행을 통해서 아는 지혜를 가진 사람은‘바가지든 망치든 어느 것이든 깨지기도 하고 깨지지 않기도 한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생자필멸(生者必滅), 회자정리(會者定離), 성자필쇠(盛者必衰)라는 불가(佛家)의 말씀처럼 사람의 일생에는 축복만 있는 경우가 거의 없고, 또 재앙만으로 일관한 예도 거의 없이 영고성쇠(榮枯盛衰)의 주기 속에서 산다 하겠습니다. 삶의 길목에서 순간순간 부딪치는 기쁨과 슬픔, 고통과 환희, 희망과 좌절, 후회와 자학 등, 만감이 교차하는 인생길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기뻐하는 마음도 슬퍼하는 마음도 인연(因緣)의 낙수(落水)가 일으키는 물거품으로 잠시 머물다 사라져버리는, 실체가 없는 마음의 작용들입니다. 생의 여울목에는 기억의 편린(片鱗)들만 조각조각 추억으로 남아 시공(時空)을 넘나듭니다. 이왕이면 떠다니는 기억의 파편들이 향기로운 꽃이었으면 합니다.
(최평규 박사 홈페이지 : www.youacceptm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