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광 섭 순천 동산여중 교장
지난 9일은 한글날이다. 한글날은 한글이 만들어진 날이 아니다. 훈민정음 반포 568돌을 맞이한 날이다.‘한글’은‘큰 글’,‘세상에서 첫째가는 글’이란 뜻을 담아 주시경 선생이 20세기에 만든 말이다. 세종대왕이 1443년 창제한 글자는 ‘훈민정음’이다. 훈민정음의 반포는 1446년에 이루어진다. 3년 가까운 보완기간을 거쳐 발표된 셈이다. 한글날은 이 반포일을 기준으로 삼았다. 한글은 국어가 아니다. 한글은 문자의 이름이지‘한국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는 얘기다. 일본 문자의 이름은 가나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대목에서 많은 사람들이 혼동하고 있다.
한글은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사들이 만든 창의적인 문자이다. 다른 언어권 부족도 쉽게 익혀 쓸 수 있다. 이에 역사적으로 19세기 중국에서는 한글을 수입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청나라 위안스카이는 중국의 높은 문맹률이 어려운 한자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선의 문자를 중국의 소리글자로 도입하려 한 것이다.
그 당시 조선문자 도입 계획은 망한 나라의 글이라는 반대에 부딪쳐 백지화 되었다고 한다. 100여년이 지난 지금 중국은 그때 결정을 후회할 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세계는 IT기술의 진보와 더불어 한국이 위상이 계속 높아지고 있는 등, 국운상승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좋은 기회를 통하여 한국문화를 즐기려는 한류 현상이 뿌리를 내리려면 한국어의 보급이 뒷받침 되어야 장기적으로 가능하다.
한국어를 배움으로 역사와 문화 다방면으로 접근이 가능하며 더우기 한국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하여 한국인의 정서를 맛보게 됨으로 감성이 작동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필자의 경우 약 10여년을 일본인 및 재일 동포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경험이 있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88올림픽을 계기로 NHK방송이 한국어 강좌를 열기 시작하였으며, 이 무렵에는 한국의 역사, 한일관계의 역사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로 나이가 지긋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점차 배우는 층이 확산되어 갔으며, 한류의 확산과 더불어 중년 여성층이 한국어에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일본인의 경우는 한국어 배우기가 한국인이 일본어 배우기와 마찬가지로 쉬운 점이 많다. 그 이유는 한자음을 잘 읽어내면 단어가 확충되고 어순이 비슷하기에 그렇다. 그리고 일본어의 어원이 되는 것들이 한국어에 상당수이기 때문이다.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가장 보람을 느낀 것은 한 재일 동포가 한국어로 자기 이름을 쓰게 되었다고 눈물 흘리면서 감격하는 모습이었다.
약 2, 3시간이면 한국어로 자기이름을 쓸 수 있도록 하는 나의 강의에 대학교수, 언론사. 기자, 대학강사 등이 참여하였다는 것을 내 일생의 보람으로 기억되고 있으며, 한국어 변론대회를 실시하여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되고 있다.
매년 이맘때나 되어야 우리는 한글에 관심을 가지는데, 한국인보다 한글을 더 사랑하고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일본인 노마 히데키교수는 한글을 ‘유라시에 나타난 기적’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로 촉망받는 미술학도였지만 한글의 매력에 빠져 30여년간 한글 연구에 몰두, 한글의 탄생이라는 연구를 한 것이다.
지난 2010년 일본에서 출간한‘한글의 탄생’은 마이니치신문사가 주관하는 아시아태평양상 대상을 수상했다.‘한글은 우수하다’라고 주장하면 외국에서 볼 때, 자기네 세계를 자랑하는 것밖에 안보이게 된다. 그러면 진가를 판단하기가 어려워지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편적인 기준에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어판 출간을 위해 방한한 노마 교수는 한글을 인류 문화유산이라는 보편적 객관적 시각에서 널리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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