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표 / 통일부 통일교육전문위원옥룡천
하늘을 나는 새들도 죽을 때가 되면 고향을 향하여 머리를 두고 죽는다고 하는데 하물며 사회적 동물이요,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타향 객지에 나와서 살다보면 고향의 향수에 젖어보지 않는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내 고향땅이 눈앞에 아른거리지만 고향을 가지못한 사람들은 몸이 아파 건강이 허락하지 못해서 고향을 가지 못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출세를 못하고 돈을 못버는 등 경제적인 여유가 없다보니 마음의 여유도 없는지라 고향땅을 가고 싶어도 1년에 한두번 갈까 말까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리라 본다.
본인은 광양시 옥룡면 추동 마을에서 태어났고 현재는 서울에서 살고 있다. 옥룡에는 옥룡사와 도선국사, 학사대, 중흥사, 고로쇠 등 자랑거리가 많이 있다. 하지만 어린시절에 옥룡천에서 미역감고 놀았던 추억을 되새겨 보면서 자랑스럽게 생각해 봤던 옥룡천 냇가의 추억이 그리워진다.
옥룡은 구슬옥(玉)자 룡룡(龍)자인데 신라말에 영암에서 출생한 도선국사가 득도를 한 후 삼각산에 도선사를 창건하고 옥룡면에 내려와서 옥룡사를 창건할 때 옥룡면의 개천이 너무나 아름답고 용이 기어가는 계곡천으로 보였기 때문에 '옥룡자'라는 자기호를 따서 옥룡으로 이름을 지었던 것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 용이 승천한다는 설과 용이 승천을 했다는 설을 종종 들으면서 자랐다. 1960년대 어린시절, 옥룡천 계곡이나 시냇가에는 바위돌도 많았고 물이 깊은 '소'나 '담'이 많았다. '용소', '구렁소', '까막소' 등등에는 많은 물이 잠겨 있었는데 옥룡면 용문동앞에 용소의 깊은 물속에는 아무도 들어간 사람이 없었고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
타지에 사는 사람이 용소의 깊이를 알기위해 명주실을 넣어본 결과, 명주실 세 꾸러미가 들어가고도 더 들어가므로 그 깊이를 감히 상상할 수밖에 없다는 설과 100리 밖에 있는 남해 앞바다까지 바다로 굴이 뚫어져 있으므로 용이 살고 있다는 설을 흔하게 들으면서 자랐다.
우리는 어렸을때 미역감고 목욕하면서 뛰어 놀았던 옥룡천에서 용이 승천한다고 하는 물기둥을 본적이 있다. 여름철에 소나기가 오면서 물기둥이 생기는 것을 가끔 보게 되는데 물이 많은 '담'이나 '소'에서 하늘로 향하여 물기둥이 솟구치고 엄청난 위력으로 회오리를 치는 물기둥은 물인지, 구름인지, 바람인지 구분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물기둥은 하를과 연결되어 회오리를 치면서 올라가는데 동네사람들은 이것을 '용이 승천을 한다'고 하였다.
물기둥의 모습이 정확하지는 않아도 물기둥 속에는 용의 얼굴과 같은 구름의 모습이 보였고, 용의 발과 같은 구름의 모습도 보였으며 용의 몸통과 같이 꿈틀거리는 구름의 모습도 회오라치는 물기둥 속에서 보였다.
초등학교 어린시절에 회오리치는 물기둥 모습을 지켜보면서 '구렁소, 까막소'에서 용이 승천하였다고 동네 어른들은 말했다. 이런 일이 있는 후에는 사방 4km 주변, 도로변에 보면 피라미, 메기, 빠가사리 등 많은 물고기가 여기저기 길거리에 있는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신기하다는 점을 발견했으면서도 그에 대한 원인과 결과를 알아내지 못한채 살아왔고 타향 객지 서울에 와서 생활한지가 30년이 후딱 넘었다.
내고향 옥룡은 농가수입은 농토에 한계가 있어 수입은 한정되었으나 자식들 공부는 많이 시켜서 학력수준은 높았다. 산세가 좋은 옥룡에서 인재가 많이 배출되는 것도 백운산의 정기를 받고 옥룡천의 구슬같은 '룡'의 정기를 받았으리라 생각한다. 옥룡천의 구슬같은 룡은 현재도, 미래도 지구가 존재하는 한 계속 인재를 배출하리라 믿는다.
옥룡에 살면서 옥룡에서 자손을 낳은 사람들과 옥룡에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다가 외지로 나온 후배들은 장차 큰 인물들이 무한정으로 배출되리라 생각하면서 옥룡천을 아시는 독자여러분들은 옥룡천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아끼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내 고향땅이 눈앞에 아른거리지만 고향을 가지못한 사람들은 몸이 아파 건강이 허락하지 못해서 고향을 가지 못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출세를 못하고 돈을 못버는 등 경제적인 여유가 없다보니 마음의 여유도 없는지라 고향땅을 가고 싶어도 1년에 한두번 갈까 말까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리라 본다.
본인은 광양시 옥룡면 추동 마을에서 태어났고 현재는 서울에서 살고 있다. 옥룡에는 옥룡사와 도선국사, 학사대, 중흥사, 고로쇠 등 자랑거리가 많이 있다. 하지만 어린시절에 옥룡천에서 미역감고 놀았던 추억을 되새겨 보면서 자랑스럽게 생각해 봤던 옥룡천 냇가의 추억이 그리워진다.
옥룡은 구슬옥(玉)자 룡룡(龍)자인데 신라말에 영암에서 출생한 도선국사가 득도를 한 후 삼각산에 도선사를 창건하고 옥룡면에 내려와서 옥룡사를 창건할 때 옥룡면의 개천이 너무나 아름답고 용이 기어가는 계곡천으로 보였기 때문에 '옥룡자'라는 자기호를 따서 옥룡으로 이름을 지었던 것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 용이 승천한다는 설과 용이 승천을 했다는 설을 종종 들으면서 자랐다. 1960년대 어린시절, 옥룡천 계곡이나 시냇가에는 바위돌도 많았고 물이 깊은 '소'나 '담'이 많았다. '용소', '구렁소', '까막소' 등등에는 많은 물이 잠겨 있었는데 옥룡면 용문동앞에 용소의 깊은 물속에는 아무도 들어간 사람이 없었고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
타지에 사는 사람이 용소의 깊이를 알기위해 명주실을 넣어본 결과, 명주실 세 꾸러미가 들어가고도 더 들어가므로 그 깊이를 감히 상상할 수밖에 없다는 설과 100리 밖에 있는 남해 앞바다까지 바다로 굴이 뚫어져 있으므로 용이 살고 있다는 설을 흔하게 들으면서 자랐다.
우리는 어렸을때 미역감고 목욕하면서 뛰어 놀았던 옥룡천에서 용이 승천한다고 하는 물기둥을 본적이 있다. 여름철에 소나기가 오면서 물기둥이 생기는 것을 가끔 보게 되는데 물이 많은 '담'이나 '소'에서 하늘로 향하여 물기둥이 솟구치고 엄청난 위력으로 회오리를 치는 물기둥은 물인지, 구름인지, 바람인지 구분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물기둥은 하를과 연결되어 회오리를 치면서 올라가는데 동네사람들은 이것을 '용이 승천을 한다'고 하였다.
물기둥의 모습이 정확하지는 않아도 물기둥 속에는 용의 얼굴과 같은 구름의 모습이 보였고, 용의 발과 같은 구름의 모습도 보였으며 용의 몸통과 같이 꿈틀거리는 구름의 모습도 회오라치는 물기둥 속에서 보였다.
초등학교 어린시절에 회오리치는 물기둥 모습을 지켜보면서 '구렁소, 까막소'에서 용이 승천하였다고 동네 어른들은 말했다. 이런 일이 있는 후에는 사방 4km 주변, 도로변에 보면 피라미, 메기, 빠가사리 등 많은 물고기가 여기저기 길거리에 있는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신기하다는 점을 발견했으면서도 그에 대한 원인과 결과를 알아내지 못한채 살아왔고 타향 객지 서울에 와서 생활한지가 30년이 후딱 넘었다.
내고향 옥룡은 농가수입은 농토에 한계가 있어 수입은 한정되었으나 자식들 공부는 많이 시켜서 학력수준은 높았다. 산세가 좋은 옥룡에서 인재가 많이 배출되는 것도 백운산의 정기를 받고 옥룡천의 구슬같은 '룡'의 정기를 받았으리라 생각한다. 옥룡천의 구슬같은 룡은 현재도, 미래도 지구가 존재하는 한 계속 인재를 배출하리라 믿는다.
옥룡에 살면서 옥룡에서 자손을 낳은 사람들과 옥룡에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다가 외지로 나온 후배들은 장차 큰 인물들이 무한정으로 배출되리라 생각하면서 옥룡천을 아시는 독자여러분들은 옥룡천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아끼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입력 : 2005년 03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