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 수
향 수
  • 광양신문
  • 승인 2006.09.14 14:23
  • 호수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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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돈 국 / 광주지방법원 집행관
이른 아침 아파트 창밖에 까치 울음소리가 구성지게 귀끝을 스친다. 언제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으며 정감이 가는 어렸을 때의 고향의 까치 울음소리다.

고향에서 어떤 소식을 전하는 것일까?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아침에 우는 까치 울음소리는 길조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근심이 된다.

내 고향은 가야산 줄기 아래 조그마한 정산마을이다. 광양읍내에서 성황리를 넘어오는 길목인 고삽재와 수마실계곡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듯 양팔로 북쪽을 감싸고 그 아래 몇배미 논, 밭을 지나서 된동이 모퉁이 아래 초가집 몇채가 옹기종기 모여 이마를 맞대고 오순도순 살고 있다. 가야금 연주곡처럼 들리는 개울물을 중심으로 윗동네 아랫동네 안골 외박골로 구분되어 있다.

마을 한복판 윗동네 빨래터에는 아낙네들이 모여 동네 소식과 이웃마을 소식 그리고 읍내소식까지 서로 전하며 이것이 관심거리 뉴스이고 하하호호 깔깔대며 빨래 방망이 소리는 산울림이 되어 안방까지 전해준다. 오일장이 되면 닭 몇마리, 쌀, 고추, 콩, 깨 등을 챙겨 지게나 머리에 이고 사리문을 나선다. 아침이슬을 밟으며 숨이 턱에 닿도록 헐떡거리며 읍내장으로 갈때면 고삽재에서, 옥실장으로 갈때면 말궁구리 굴목재 할미당 옆에 앉아 이마의 땀방울을 씻어준다.

예부터 할미당을 지날 때 돌덩어리를 하나 얹어주면 복이 온다고 해서 꼭 납작하고 잘생긴 돌멩이 하나를 소중하게 얹어주고 지나간다. 힘들게 가지고 간 물건들은 얼마나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을까? 하며 담배 한 대를 피우시는 아버지의 모습은 잠시나마 피로를 잊으시는 것 같았다.

장에 가신 분들이 해가 넘도록 돌아오지 않을 때는 저마다 마중나가는 등불들이 줄을 선다. 반딧불이 번쩍번쩍 거리며 모퉁이를 지나 좁은 계곡까지 빛을 비추며 서로 어울려 장마중을 간다.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실 적에는 빈손으로 오시지 않으신다. 농사를 지으시며 가사에 필요했던 물건들과 내 양말과 검정색 운동화, 그리고 조그마한 과자 한 봉지를 사 오신다. 날이 밝으면 옆집 친구들에게 자랑도 하고 사탕 하나씩 나눠주며 의시대던 적도 있다.

비 오는 날 애호박 부침개를 먹을 적에도 옛 생각을 잊을 수가 없다. 앞집 뒷집 흙담 위로 호박넝쿨 애호박과 호박잎은 서로가 마음을 털어 놓고 따먹던 후덕한 인심이 있었다.

입맛이 없을 적에는 어머니가 죽을 써서 쟁골댁, 목골댁 하면서 담장 너머로 나누어 주시던 것, 시커먼 쑥떡, 보리개떡을 만들어서 가까운 이웃들을 집으로 불러들여 와상에서 먹던 그 훈훈한 온정이 오고가고한 흔적들이 머릿속에 남아 있다.

그러했던 내 고향은 지금은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가. 초가지붕도 흙담도 빨래터도 다 허물어 없어지고 현대식 건물과 벽돌담, 콘크리트로 포장된 도로로 변해있다. 그렇게 인정이 넘치고 웃음을 나누시던 어른들도 한분씩 떠나시고 없다.

보릿고개 시절 풋보리를 가마니나 바구니에 담아 연자방아를 돌린다. 햇볕에 얼굴을 그을리며 물래방아처럼 돌다보면 어지러움에 뒤뚱거리고 소도 힘에 겨워 설사를 하며 입멍에서 거품이 뚝뚝 떨어지고 소를 쫓다 설사똥에 옷을 다 버리곤 했다. 그러던 연자방앗간은 지금은 창고로 변해버렸다.

이른 봄이면 오솔길 양지바른 언덕위에 곱게 피었던 개나리꽃은 온데간데 없고 확 트인 4차선 산업도로위로 광양제철소 용광로에서 구어낸 무거운 철재들을 가득 싣은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가고 있다.

모든 것이 다 변했지만 까치 울음소리만은 변함없이 내 고향 소식을 전해주고 있다.
 

입력 : 2005년 02월 17일


내 고향 정산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