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 광양인만의 ‘멋과 맛’
광양, 광양인만의 ‘멋과 맛’
  • 광양신문
  • 승인 2006.09.14 14:21
  • 호수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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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경 호 / 특허청 심사관
섬진강과 백운산으로 상징되는 광양의 이미지와 광양인들의 끈질기고 질박한 삶의 유전인자가 내게도 대물림되었는지, 고향을 떠난지 30여년이 넘었는데도 나는 아직 광양사람 특유의 그 얀다무진(?) 기질을 어느 정도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자란 봉강면 구서마을이 광양의 변방이요, 깡촌이라는 사실을 중학교 입학해서야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중학교 입학 마지막 시험 세대인 나는 호롱불 아래서 공부를 하여 읍내에 있는 중학교를 들어가면서 짜장면이란 것도 처음 먹어보고, 전깃불 켜진 양장점과 양화점이며 다방 같은 것도 처음 구경하였다.

모험심 많은 마을 악동선배 예닐 곱 명이 생전 처음 도보로 순천까지 진출하여 아스팔트 길이 나타나자 (신발을 벗어야 하는 걸로 알고) 모두 고무신을 벗어들고 도로변을 당당하게 행진하였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도 당시 봉강 촌놈인 내겐 조금도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다.

1970년 당시 군내 중학교는 광양중학교와 진상중학교, 그리고 처음 입학생을 받은 광양여자중학교가 전부였다. 그래서 중학교 동창 중에는 골약이나 옥곡 등지에 사는 친구들이 꽤 있었다.

순천에 가면 "관양 너머 갈~래?"하고 광양말투를 흉내내던 것처럼, 그 쪽에서 유학 온 친구들의 경상도 사투리가 신기하여 놀려대곤 했었다.

진월에서 시집오신 외숙모님을 비롯하여 마을 새댁들의 택호(宅號)로 구별되는 친정동네 이름들이 당시에는 아주 먼 곳에 있는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옥룡이나 진상, 진월, 옥곡, 다압 등지의 자연부락 이름이었다.

오룻골, 엉망젱이, 산보레, 사부골, 은아젱이, 배트무리, 서낭젱이, 망데기, 아랫몰, 황뱅이.....등등. 그 곳에서 첩첩산중으로 시집을 오신 새댁 아지매들이 특유의 경상도 억양으로 내 이름을 불러줄 때면 왠지 신선한 느낌이 들곤 했다.

지금은 그 분들도 손주의 재롱을 보시는 연세가 되셨으니 새삼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유년의 기억 속에 함께하는 풍경들은 때로 저마다 독특한 배경색과 향기를 가지는 것 같다. 청보리가 누릿누릿 익어갈 무렵 봉강저수지를 에둘러 가는 조실재 몬당 즈음에 생선을 가득 담은 양은다라를 머리에 이고 가뿐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넘어오시던 생선장수 해창댁 아줌마의 애닯은 모습과 세풍들녘 어디께서 부는 봄바람에 실려오던 비릿한 생선냄새가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지금은 도선국사가 창건한 옥룡사터로 더 유명해졌지만, 20여리 길을 걸어서 소풍가는 일이 다반사였던 당시에는 봉강저수지와 함께 각급학교의 소풍장소로 백계동(동백림)만한 곳도 드물었다.

읍내 중학교에서 한나절을 꼬박 걸려 도착한 4월 초순경의 봄소풍, 사춘기에 갓 접어든 14세 소년의 눈에 비친 천년 고목 동백숲의 위엄과 붉은 꽃 봉오리가 통째로 떨어져 널부러진 산자락 군데군데 햇살조각들이 아른거리던 한낮의 정밀(精密)한 고요는 참으로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공부를 한답시고 순천을 거쳐 서울 등지를 전전하다가 국가공무원이 된 지도 어언 20년이 되었다.

그 동안 직장동료들과 함께 연례행사처럼 매화축제, 고로쇠축제며, 전어축제에 참가하면서 광양의 멋과 맛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었다. 광양불고기와 전어회, 재첩회 맛은 타 지방의 그 것과는 구별되는 특유의 감칠맛이 있다.

더덕껍질 같이 거친 고향 어머니의 투박한 손으로 버무린 짭쪼롬하고 아릿하면서도 새콤달콤한 그 맛을 잊지못한 직장동료들이 훗날 가족을 데리고 일부러 광양을 다시 찾아가서 포식을 하고 왔노라고 고마워할 때, 나는 광양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곤 했다.

내고향 광양은 추억속에만 존재하는 정체된 도시가 아니다. 국내 어느 도시보다 발전가능성이 높고, 기초자치단체 중 재정자립도가 가장 높은 곳이다.

산과 들과 강과 바다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먹거리, 볼거리, 놀거리가 지천에 널린 천혜의 땅이다. 반면, 외지에서 바라볼 때 광양과 광양인이 풀어야 할 몇 가지 숙제도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급격한 도시화 과정에서 파생된 동서(東西) 또는 도농(都農)간 부조화나 그리고 광양인의 트레이드마크처럼 인식되어 온 억척스런 생활력에 대한 거부감 등이 그 것이다.

광양에서 얼마간 살다 온 사람들이 종종 '광양은 텃세가 너무 세어 쉽게 정이 들지 않는다'고 말하는 걸 보았다. 자신의 삶을 악착같이 꾸려가는 것 못지 않게 이제는 다른 고장에서 이주해 온 이웃들에게도 좀 더 살갑고 흥감스럽게 대함으로써 감성적인 세심함을 보여주는 성숙한 배려가 있었으면 한다.

또한 동광양과 광양읍으로 구분되는 동서(東西) 또는 도농(都農)간 문제도 광양 전체의 발전방향이라는 큰 틀속에서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대화의 장(場)을 자주 가진다면 점차 해소되리라 생각한다.

그럼으로써 광양과 광양인이 가진 환경적인 축복과 기질적인 장점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때, 내고향 광양은 누구나 살고 싶어하는 국제적인 도시, 삶의 질이 높은 아름다운 고장으로 거듭날 것임을 확신한다.
 

입력 : 2005년 01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