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강소농의 모델 여기에 있소”
“진정한 강소농의 모델 여기에 있소”
  • 지정운
  • 승인 2011.11.07 10:07
  • 호수 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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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김성문ㆍ황인선 부부의 ‘그린 농원’

일반 비닐하우스와는 달리 흙을 찾아 볼 수 없는 '클린' 하우스인 '그린농원'. 토마토 줄기 위로 김성문 씨가 자체 개발한 냉온방용 팬도 보인다.

쫓기듯 바쁜 일상의 스트레스와 매캐한 도시의 오염된 공기를 뒤로 한 채 한적한 전원에서 내 손으로 직접 먹을거리를 만드는 일은 팍팍한 도시 생활에 지친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생각하는 꿈 일 것이다. 그러나 농촌에서의 꿈은 말 그대로 ‘꿈’일 뿐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섣불리 귀농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사례도 많다지 않은가.

쉽지 않은 귀농. 성공을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와 성실함, 자신만의 경쟁력도 있어야 한다. 광양신문은 창간 12주년 특집으로 귀농에 성공한 어느 부부의 이야기를 전한다.

논 4마지기 하우스에서 연간 1억 5천만 원 매출

10월 하순의 어느날, 광양읍 우산리 월파마을 앞 들에 있는 ‘그린 농원’을 찾았다. 이곳에서 토마토 농사를 짓고 있는 김성문(47)ㆍ황인선(40)부부를 만났다.

김 씨 부부가 운영하는 ‘그린 농원’은 대략 논 4마지기 규모인 2600㎡(약 800평)으로 소규모 시설에 속한다. 하지만 규모가 작다고 얕봐선 안된다.

김 씨 부부는 올해 예상 매출액으로  약 1억 5천만 원, 순이익은 1억 원 이상을 바라보고 있다. 이는 평당 수익이 거의 20만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고수익이라고 평가받는 일반 농가의 평당 10만원 보다 2배가 높은 수치다.

이같은 성과는 김씨 부부가 귀농 후 실제 농사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거둔 성과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귀농에 앞서 철저한 준비가 있었고, 계획을 실행에 옮겨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 이들만의 성실함이 밑바탕이 됐기 때문이다.

김씨 부부를 가리켜 요즘 농사용어로 ‘강소농(强小農)’이란 표현을 한다.
농촌진흥청은 오는 2015년까지 전국에 10만 강소농을 육성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지자체 등과 협력해 사업을 추진 중이다.

토마토 양액재배로 성공

김 씨 부부가 운영하는 ‘그린 농원’은 일반 토마토 시설 하우스와는 조금 다르다.
우선 하우스의 외관부터 공기 흐름을 고려해 천정 부분을 한층 높게 올린 복층 구조를 취하고 있다. 천정과 토마토 줄기 사이에는 하얀 천들이 두어 겹 설치돼 있어 차광막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한 가지 특징은 바닥에서 흙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토마토는 하우스 안 논바닥에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서 50Cm 정도 공중으로 올라온 하얀 포장상자(베드)에서 자라고 있다. 베드는 1m 길이의 규격제품으로, 연결해 사용이 가능하며 베드 1개에 5주의 토마토가 자라고 있다.

베드에는 코코아 열매와 껍질을 분쇄해 만든 ‘코코비트’라는 충진재가 들어있는데 일종의 배양토로 생각할 수 있다.
코코비트로 가득 찬 베드가 공중에 있고, 그 베드에 호스로 양액을 공급하는 구조를 갖다보니 기존의 영양 공급원으로서의 토양이 필요가 없는 셈이다.

김성문 씨는 이같은 재배법을 ‘토마토 양액 재배’라 설명했다. 이 재배법은 여러 가지 장점을 지난다.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연작의 피해를 걱정할 일이 없고 잡초를 제거하는 노력을 필요가 없다.
투입되는 노동력을 최소화 할 수 있다는 의미다. 뿐만 아니라 양액 공급 비율을 조절해 과실의 크기와 강도 등을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고소득의 원천은 출하시기 조절

더욱 중요한 점은 출하시기를 조절해 소득을 최대한 끌어올린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김 씨 부부는 다른 양액재배 농가보다 최소 2배 이상의 소득을 창출하고 있다.

실제 김 씨 부부는 올해 9월 18일 첫 출하를 실현해 평상시 가격보다 3배 정도의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었다. 김 씨 부부가 9월 중순에 첫 출하를 시작했다는 것은 뜨거운 여름, 어떻게 작물 관리를 할 수 있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토마토는 모판에서 모종을 키우다가 하우스로 정식되는데 이때가 가장 뜨거운 삼복이다. 이 시기를 잘 넘기지 못하면 뿌리가 열을 받아 생육이 불량해지고 병충해로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뜨거운 여름을 넘기는 비결은 지하수를 이용한 냉방이다. 냉난방기 관련 자격증이 10개가 넘는 김성문 씨는 지하수를 끌어올려 자동차의 ‘레디에이터’와 같은 방열기를 통과하게 한 후 이곳에 팬으로 바람을 불어 온도는 낮추는 방법을 자신의 하우스에 적용했다. 하우스 중간 중간에 40여개의 팬을 설치했고, 결과는 성공이었다.

김 씨는 “한 낮 최고로 뜨거울 때 실제 온도가 2~3도 정도 떨어지는 효과를 확인 할 수 있었다”며 “반대로 겨울에는 지하수를 이용해 난방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김 씨의 아이디어와 노력은 광양 농협의 도움을 이끌어 냈다.
김 씨는 “지역 농협에서 관심을 갖고 판로를 개척해 주셨고, 무이자 자금지원과 기술 지원을 해줘서 귀농과 정착에 정말 큰 도움이 됐다”며 “생산에만 전념토록 도와 주신 광양 농협에 감사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에 대해 농협 관계자는 “이들은 사업에 실패해 내려온 것이 아닌, 서울 생활에서도 성공한 분들이 스스로 귀농해 농업에서 미래를 찾는 농업인”이라며 “스스로 노력하고 경쟁력을 갖춘 강소농의 모델로 손색이 없는 분들”이라고 극찬했다.  


“농촌·농사가 정말 좋아요
농사로 일찍 노후 준비합니다”

인터뷰- 그린 농원  강소농 김성문ㆍ황인선 씨 부부

진정한 강소농의 대표주자라 할 만한 그린농원의 주인공들. 김성문 황인선 씨 부부가 다정한 포즈를 취했다.
신안이 고향인 김 씨는 90년대 중반 서울 용산구에서 만도위니아 서비스센터 대표로 직원 6~7명을 고용한 중소기업 대표였지만 지난 1998년 IMF 외환위기를 맞으며 아픔을 맛봐야 했다.

그 여파로 김 씨가 살던 집까지 경매로 넘어가고 말았다. 캄캄하고 어두운 터널 같은 시기였지만 두 부부는 다시 악착같이 사업을 시작해 재기에 성공했고, 과천 신도시에 30평대의 아파트도 마련했다.

하지만 김 씨는 항상 고향과 농촌이 그리웠다. 언젠가 귀농해 농사를 짓겠다는 생각은 항상 그의 머리를 맴돌고 있었고, 그 계획은 2009년 3월 실행에 옮겨졌다.

아내에게는 미리 귀농과 농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서 그 충격파를 줄여 나갔다. 처음 귀농 6개월은 홀아비 신세가 따로 없었다. 귀농을 반대하던 아내는 서울을 떠나지 않았고, 김 사장은 자신의 비닐 하우스에서 먹고 자는 생활까지 감수해야 했다.

이러기를 6개월. 남편을 버릴 수 없던 황 씨가 드디어 광양으로 내려왔다.
아내 황인선 씨의 고향은 골약이다. 서울에서 IMF를 딛고 나름 성공한 삶을 살던 황 씨에게 광양은 정말 내려오기 싫은 곳이었다. 이젠 살만한데 시골 생활이라니...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남편을 버릴 수 도 없어 고향을 찾았고, 이젠 농부의 아내가 되어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좋은 점도 있다. 류마티스 관절염이 있었지만 이곳에서 생활하다 보니 많이 좋아진 것이다. 황 씨는 “아마도 좋은 공기를 마시고 농사만 생각하며 살다보니 그런것 같다”고 말하며 웃는다.

남편 김 씨는 “농촌과 농사가 좋아 귀농해 성공적인 시작에 만족하고 있다”며 “서울을 떠나 농사를 시작한 것은 일찍 노후를 준비하는 것으로, 현재에 만족하는 만큼 아직은 시설을 확장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농사와 관련된 여러 가지를 공부하는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며 “농업에 관한 경험을 이웃들에게 배우고 싶고, 내가 가진 시설 관련 노하우는 지역민들과 공유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