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동시이야기] 거울 이야기
4-2 3. 그림자와 거울
들춰내고 있어요
늦가을 밤 휘엉청 보름달이
하얀 마당 가득
얼키설키 그림을 그려놨어요.
“빈 가지만 있으니
너무 엉성하군.
까치밥이나 두어 개 그려야겠는걸.”
이른 아침 바쁜 햇살이
담장을 넘어와
무심코 지우고 말았어요.
깜짝 놀란 까치가 서둘러 내려와
깍깍깍 들춰내고 있어요.
어딘가에 남아 있을
보름달의 마음을.
하얗게 하얗게 살 비비며
가을 햇살이 이리 고와도 눈물이 나는구나 누이야, 은가루 뿌린 듯 하얗게 부서지는 발아래 저 샛강 그 샛강물 위에서도 햇살은 햇살끼리 반갑구나 서로의 몸 비비며 자지러지게 웃어대는 저 찰랑거리는 웃음소리.
너를 보내고도 나는 엄마처럼 울 수가 없구나 엄마 등보다도 더 많이 많이 너는 내 등짝에서 놀지 않았느냐 잠자지 않았느냐 그럼에도 나는 엄마처럼 울 수가 없구나 그토록 쉽게 내 등짝을 내려가서 금세 올라올 것처럼 내려가서 다시는 업히지 않겠다고 떼쓰며 떼쓰며 왜 이리 깊은 잠만 자고 있느냐 내 등짝 가볍게 하자고 너를 내려놓지 않았단다 깊어 가는 가을 산자락에 너를 내려놓지 않았단다.
너를 보내고도 나는 엄마처럼 중얼거릴 수가 없구나 “그렇게 빨리 가려거든 오지나 말일이지. 그렇게 빨리 가려거든 오지나 말일이지.” 주문을 외듯 무당처럼 흥얼흥얼 주문을 외듯 엄마는 흩어진 옷매무새 돌보지 않고서 하루 종일 네 이름 부르며 부르며 길거리로 들녘으로 출렁출렁 흘러 다닌다 젖이 흘러 앞가슴 흥건히 젖이 흘러 잡아도 잡아도 푸석이는 껍데기처럼 먼지처럼 아니 바람처럼 빠져나가는 엄마를 그래 너도 볼 수는 있는 것이냐 누이야.
저토록 높은 하늘 푸르디푸른 하늘에서 치렁치렁 햇살은 내리고 그 햇살 억새꽃 속에서 하얗게 하얗게 재잘거리는구나 해종일 몸 비벼대는구나 누이야 어서 일어나서 우리도 그들처럼 몸 비벼보자구나 반짝이는 웃음 깔깔거리며 보드랍고 따스한 살갗끼리 뒹굴어 보자구나 늦가을 오후의 온 햇살들이 모두 나와서 저렇게 바람 한 점 없는 억새꽃 속에서 하얗게 하얗게 자지러지는데 너도 어서 일어나서 나와 함께 하얗게 하얗게 살 비비며 깔깔거리자구나 누이야 어서 어서 일어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