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와 클래식의 만남] 예술융합, 녹아내림의 미학

2024-08-30     광양뉴스
이정숙•광양앙상블음악학원

무더운 여름날이면 시원한 아이스티 한 잔이 생각난다. 아이스티 가루를 잔에 넣고 물에 녹여 얼음을 넣은 후 한 모금 마시면, 순간 더위가 잊혀진다.

이 과정은 우리에게 익숙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섬세한 균형과 기다림의 과정이 필요하다.

가루가 완전히 녹아야 비로소 우리가 원하는 맛이 완성되듯이, 융합도 그렇다. 단순히 섞는 것이 아니라, 각 요소들이 충분히 녹아들며 하나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야 한다. 예술융합 또한 이런 과정 속에서 비로소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지난 10년간 명화와 클래식 음악을 통해 예술융합 수업을 진행해 왔다. 학생들에게 그림과 음악을 단순히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예술적 요소들이 어떻게 서로 만나고, 또 우리의 일상 속에서 다른 학문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는 과정이다.

아주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수업했다.

명화를 감상하며 그에 어울리는 음악을 들려주고, 그 그림 속에 숨겨진 화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동시에 수학적 놀이, 역사적 배경 탐구, 과학 놀이, 창의적인 미술 활동까지 함께 융합하여 아이들의 예술적 사고 습관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 과정 속에서 가끔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과연 무엇을 녹여냈는가?’ 단순히 여러 요소를 결합하는 것만으로 진정한 융합을 이루어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겉으로만 결합된 통합은 아니었지? 진정한 융합은 시간이 필요하다.

서로 다른 것들이 천천히 녹아 들어가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기다림과 배려가 있어야 한다.

급하게 수박 겉핥기식으로 이루어진 교육은 학생들에게 진정한 배움이 아닌, 일시적인 흥미만 줄 뿐이다.

융합의 진정한 가치는 각 요소가 완전히 녹아 서로를 이해하고 조화를 이루는 그 과정 속에 있다.

아이스티 가루를 물에 충분히 저어야 비로소 완벽한 맛을 낼 수 있듯이, 예술융합 수업도 시간이 지나야만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수업을 통해 아이들보다 내가 더 큰 변화가 있었다. 화가들의 삶을 들여다 보며 그림을 산책하는 시간은 내 눈을 뜨게 하고 꿈을 갖게 했다. 화가의 삶을 들여다 보면 그림 보는 재미는 배가 된다. 화가의 삶이 그림속에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올여름 지역 아이들과 수업했던 화가가 있다. 바로 프랑스의 화가 앙리 마티스다.

마티스는 병으로 인해 몸이 자유롭지 않았던 시기에도 창작의 열정을 놓지 않았다. 붓을 들 수 없게 된 그는 가위와 색종이를 통해 예술 세계를 확장해 나갔다.

마티스의 작품은 그의 건강 상태와 상관없이 끊임없는 창의성과 열정의 결과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예술적 꿈을 놓지 않았고,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도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추구했다.

마티스의 이야기는 내가 교육자로서 그리고 예술융합 수업을 이끄는 사람으로서 깊은 울림을 주었다. 이제 50대 중년이 된 나 역시 마티스처럼 꿈을 놓지 않고 있다.

학생들에게 진정한 예술융합의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 나의 목표가 되었다.

단순히 여러 학문과 예술을 결합하는 것을 넘어, 아이들 각자가 그 융합 속에서 자신의 고유한 생각과 창의성을 발견하도록 돕고 싶다.

이제는 기다림의 중요성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예술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천천히 녹여내고,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의 색깔을 찾아갈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융합의 과정이 단순한 결합이 아닌, 진정한 창조의 시간이 되도록, 아이들이 서두르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이 진정한 교육자의 역할이 아닐까?.

이번 여름, 시원한 아이스티처럼 예술융합이 우리 모두의 삶 속에서 천천히 녹아들어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