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동시이야기] 물 이야기

2024-03-17     광양뉴스

4-2 5. 물의 여행

 

그래도 우리는 하나

 

얼음은 물을 보면

자꾸 얼리려 하고

물은 얼음을 보면

자꾸 녹이려 하고.

 

비는 우산을 보면 

자꾸 덮으려 하고

우산은 비를 보면

자꾸 피하려 하고.

 

돌멩이는 물을 보면

자꾸 막아서려 하고

물은 돌멩이를 보면

자꾸 돌아가려 하고.

 

나는 시냇물을 보면

풍덩 뛰어들고 싶고

시냇물은 나를 보면

흠뻑 젖어들고 싶고.

 

그래도 우리는 하나.

 

약수할머니

 

박행신

약수터에는 우리처럼 새벽 운동을 하러 온 사람들이 제법 많았어요. 약수터 가까이에 있는 야외 운동 기구들을 이용하는 사람, 맨손체조나 줄넘기 등을 하는 사람들이 약수터의 아침을 활기차게 열곤 했어요.

누나와 나는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새벽 운동을 하기로 했어요. 뒷산에 있는 약수터까지 걸어갔다 오기로 한 것인데, 왕복 1시간쯤의 거리였어요.

우리는 줄넘기를 좀 하다가 조롱박으로 약수를 받아 마시곤 했어요. 새벽 운동을 하고 마시기 때문인지 속이 확 뚫리듯 시원하고 상큼했어요.

약수는 바위틈에 박아둔 대롱을 타고 돌확으로 조르르 흘러내려 고이도록 되어 있어요. 사람들은 대롱 끝에 조롱박을 대고 물을 받아 마시거나, 돌확에 고여 있는 물을 떠마시곤 했어요.

우리는 새벽마다 약수터를 깨끗이 청소하시는 할머니 한 분을 만나곤 했어요. 

돌확에 고인 물을 바가지로 퍼내고 거친 솔로 싹싹 닦아내 항상 정갈하고 깨끗하게 손질했어요. 

약수터 주변도 빙 둘러보시고 쓰레기를 줍거나, 더러운 곳이 있으면 물로 씻어내 말끔하게 만들어놨어요. 

우리는 그 할머니를 ‘약수할머니’라 이름 지어드렸어요. 약수할머니는 아주 오래전부터 눈비가 오는 날만 빼고 새벽마다 이 약수터를 관리하셨다고 해요.

“난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살았지. 우리 마을은 공동 샘이 하나 있고, 큰 부잣집에 개인 샘이 있었을 뿐이야. 가뭄이 심하게 들면 샘들이 모두 말라버리지. 그러면 마을 앞 냇물을 사용해야 했지. 냇물이라지만 큰 줄기는 마르고 군데군데 웅덩이에 고인 물이었지. 그런 물을 먹다 보면 배탈이 나기도 하고, 피부병이 생기기도 하는데 여간 힘드는 게 아니었지. 그래서 물이란 항상 맑고 깨끗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지. 이 약수터 역시 깨끗해야 먹는 사람들도 건강해질 게 아니냐.”

할머니는 청소가 끝나면 페트병 두어 개에 약숫물을 받아 맬가방에 집어넣고 조심스럽게 내려가셨어요. 

“난 여기 약숫물을 제일 좋아해. 이렇게 물맛은 좋은 곳은 여기밖에 없을 거야.”

그렇게 약수터를 사랑하고 약숫물을 예찬하시던 약수할머니께서 요 며칠 동안 보이지 않으셨어요. 

“약수할머니가 웬일이실까? 어디 편찮은 것은 아닐까?”

“약수할머니 대신 우리가 약수터를 깨끗이 하면 어떨까?”

“그거 좋은 생각이야!”

우리는 다음 날부터 도구를 챙겨와 약수터를 청소하기 시작했어요. 약수할머니가 하신 것처럼 돌확에 고인 물을 퍼내고 깨끗이 씻은 후, 약수터 주변을 정리했어요. 

“어린 학생들이 여기까지 와서 청소하다니 참 기특하구먼.”

약숫물을 받으러 오신 어른들이 한 마디씩 칭찬해주는 말을 들으면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어깨가 으쓱해지고 기분이 좋아졌어요. 아마 봉사를 하는 사람들이 이런 기분 때문에 더 열심히 하는 것 같았어요.

“얘, 슬기야, 너도 약수할머니가 많이 궁금하지? 우리 한 번 찾아가 볼까?”

“누나는 할머니집이 어딘 줄 알아?”

“저 아랫동네에 가서 물어보면 알겠지 뭐.”

그럴 것도 같았다. 약수할머니는 약수터 가까운 마을에 살고 계셨다고 했어요.

“그러면 우리 페트병을 몇 개 구해와서 물이라도 떠가자구.”

“그게 좋겠다.”

약수할머니가 마치 우리 할머니나 되는 것처럼 갑자기 보고 싶어졌어요. 아무 탈 없이 건강하고 편안하셔야 할 텐데, 괜히 걱정이 되기도 했어요.

참 이상한 일이지요?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 여러분은 알 수 있겠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