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3대 소멸의 시대, 국민이 소망하는 것은 무엇인가
해가 바뀌는 첫날이면 새해를 보기 위해 산을 오른다. 첫날의 일출은 특별해 보인다. 해가 떠오르기 전 붉은 빛으로 물든 하늘을 보면 왠지 가슴이 뭉클해진다.
분명 어제 뜬 해와 오늘의 해가 똑같은데도 그렇다. 해는 변하지 않았는데 이를 바라보는 사람의 내 마음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어제는 사라진 날들에 대한 애틋함으로 해를 봤다면, 오늘은 다가올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품고 해를 보기 때문 아닐까.
지나간 과거가 후회와 애잔함이라면 다가올 시간들은 두근거림과 설렘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해는 미래를 상징한다. 우리의 미래가 어둠이 물러가고 밝은 미래를 소망하는 것은 모든 인류의 바람이지만 우리에게 열린 미래는 결코 그렇지 않기에 문제가 된다.
한국의 오늘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시대 언어는 소멸이다. 지방소멸, 인구소멸, 학교소멸은 한국사회의 3대 소멸이라고 부를 만큼 심각하다. 이들 세 언어는 결코 평범하지 않으며, 오늘의 상황은 심각하다.
인간의 욕구는 생존의 욕구가 가장 기본인데, 이는 우리 공동체의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속도와 규모 면에서 다른 나라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더 빠르고 압축적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물질영역이 아닌 정신영역에도 나타나고 있다. 바로 권위의 소멸이다.
한국 사회에서 거의 모든 부문과 영역에 걸쳐, 이익과 권력이 매개되지 않는 한, 아니 오히려 그것 때문에, 공적 권위구조와 체계는 붕괴하였다.
이 문제와 관련, 대표적인 사건은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자살이었다. 가정의 사적 관계와 과도한 자녀사랑이 공적인 교육영역을 무너뜨렸다.
교사의 역할 구분이나 권위도 권한도 존중하지 않고, 숨 막히는 상황에 몰린 교사가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조금 더 시야를 확장하여 보면 국가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한국 정치의 세계는 더 말할 것도 없을 정도다. 한국은 정치와 국가가 과도한 우위 사회다. 이런 주제들의 권력은 커졌으나 권위는 상실한 상태가 아닌가.
상대 진영의 가치와 권위는 존경과 존중은커녕 인정과 수용도 안 한다. 권위는 애초에 권한·저작권과 같은 것 아닌가.
즉 각기 사회 영역과 부문들의 고유한 존재 이유와 직분, 역할과 기능에 대한 인정과 존중을 말한다.
이러한 가치는 사회가 공적으로 건강하게 발전하는 지름길이다. 입으로는 국민을 위한다고 큰 소리를 치지만 이를 진심으로 느끼는 국민이 어느 정도일까 의심스럽다. 이런 거짓말은 사라져야 한다. 그 책임은 국민에게 있다.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대화를 강조한다. 같은 당내의 계파가 다른 의원들 사이, 또 지도부와 평의원들, 즉 헌법기관인 의원 자신들끼리도 잘 대화하지 않으면서 국민과는 소통하겠다니 이런 대화는 위선이 아닐까. 자기들의 파당적 논리에 따라 국민과 지지자들을 동원하려는 생각을 올해는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제는 파당논리에서 벗어나 대화와 권위를 회복이 절실하다.
개인의 이익을 위한 정치를 하면서 국민을 위한다는 위선의 옷을 벗기는 일은 국민이 갖는 주권의식이며 주체의식이다.
잠시 잠깐 짙은 먹구름과 천둥번개 때문에 해를 볼 수 없는 날에도 저 높은 곳에는 해가 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지금 정치인을 자처한다면, 지금 지방소멸, 인구소멸, 학교소멸의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는 정치의 장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것이 이 시대를 사는 한국인의 소망임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