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 꿈꾸는 세상 - 만들어 갈 세상
“세상에 안 일어나는 일은 없응께...”
어떤 지인이 어이가 없거나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겼을 때 입버릇처럼 하는 얘기다.
지난 2019년 9월, 성폭력예방교육 강사 면전에 대고 여성을 비하하는 욕설을 하면서 소란을 피웠던 서울의 모 구의원에게 올해 1월에서야 벌금형이 선고됐다.
소란을 피운 이유인 즉 강사가 ‘삼성’에서 발생한 직장 내 성희롱 사례를 언급했다는 것인데, 구의원씩이나 되는 사람이 공적인 자리에서 그런 언행을 할만한 일인가 싶지만 “세상에 안 일어나는 일은 없응께...”
그런데 황당한 일은 누구에게나, 어디서든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바로 지난달 내가 경험했다는 사실이다.
모 기관에서 강의 의뢰를 받고, 담당자와 일정을 조율한 후, 통상적인 업무 처리를 위해 프로필 사진을 포함한 관련 서류까지 미리 다 보내놓고 약속된 날, 평소처럼 강의 30분쯤 전 예정된 장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안내를 나온 담당 직원이 나를 보고 표정이 살짝 굳어지더니 조심스럽게 “선생님, 그 배지는 좀 떼 주시면 좋겠습니다.”
바로 내 재킷에 달고 있던 노란 리본 배지를 보고 한 얘기였다.
“왜요?”
“여기는 좀 보수적인데라서...”
“미쳤소? 이게 뭐?”
(아니, 노란 리본 배지와 여순 동백꽃 배지까지 달고 찍은 프로필 사진까지 미리 보냈구만...) 그리고 그날은 그냥 들어가서 강의를 하고 왔는데, 문제는 그 일주일 후에 간 기관이다.
예정된 장소에 들어서는 나를 본 담당 직원의 표정이 말 그대로 ‘새파랗게’ 질리는 게 여실히 느껴지는 것이었다.
주위를 다급하게 한 번 둘러본 그 직원이 나를 옆 방으로 살짝 데리고 가더니 또 그놈의 보수 타령을 하면서 배지를 떼 달라고 하는 것이다.
“아니~ 자식 잃은 부모 마음 위로하는 건데 그게 무슨 보수나 진보가 있어요?
“선생님! 부탁드릴게요~ 저 직장 계속 다녀야 되지 않겠어요?”
순간,‘아아~ 맙소사! 내 신념 때문에 젊은 사람 밥줄을 위협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슬그머니 배지를 떼서 주머니에 넣었는데 그 후로 지금까지 생각이 복잡하다. 남북통일이 문제가 아니구나.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이게 뭔 짓이란 말인가.
그날 강의 중간 쉬는 시간에 호흡하듯 틀었던 노래 가사를 공유해 보고자 한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 – 박성훈 작사, 작곡>
남보다 더 가진 것을 미안해할 줄 아는 세상
책과 음악이 가장 큰 즐거움인 세상 / 일하고 싶을 때 일할 수 있는 세상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세상 / 아이들이 농사를 꿈꿀 수 있는 세상 / 똑똑한 사람보다 착한 사람이 많은 세상 / 차이는 있어도 차별은 없는 세상 / 언론이 돈과 권력의 편이 아닌 세상 / 생각과 취향이 달라도 존중받는 세상 / 공권력 따위는 없어도 서로 돌보며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세상 / 자식 잃은 부모를 위로할 줄 아는 세상 / 억울한 이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는 세상 / 이 땅의 모든 살아있는 생명과 지구를 나누는 세상 /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세상 / 정의가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세상 / 먹고살 걱정 없이 노래할 수 있는 세상 /가난이 개인의 책임이 아닌 세상/ 전쟁 걱정 없이 평화로운 통일 세상 / 재벌의 머슴이 되지 않아도 떳떳이 품위 있게 살 수 있는 세상 / 예전에 어느 봄날 그런 세상 본 적 있죠 / 찬란한 오월의 햇살이 비추던 그날
이제는 우리가 만들어 나가야 할 우리가 꿈꾸는 세상
그리고 나는 오늘도 여전히 옷깃에, 가방에, 휴대폰에 노란 리본을 달고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