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동시이야기] 물 이야기

2023-04-02     광양뉴스

4-2 5. 물의 여행

 

 

봄비가 조잘거렸다

 

꽃밭에 봄비가 내려왔어요

여기저기 소란스러웠어요

 

“나는 산을 넘고 강을 건너왔어.”

“거기가 어딘데?”

 

“나는 아주아주 먼 바다를 건너왔어.”

“얼마만큼 먼데?”

 

“나는 바람이 데려다주었지.”

“나도 데려다 달라고 할래.”

 

봄이 오는 꽃밭에 가거들랑

두 귀 쫑긋 세워보세요

공부 시간 우리들 교실만큼이나

조잘조잘 조잘거릴 거예요

 

박행신

 

봄비 때문이야

 “어? 비가 또 오네! 우산을 안 가지고 왔는데 어쩌지?”

수업이 다 끝날 무렵 갑자기 봄비가 두두두 내렸다. 얼른 핸드폰을 꺼내 슬이에게 카톡을 보냈다. “비 오니까 태권도 학원 끝나면 학교로 내 우산 가지고 와!” 잠시 후 답장이 왔다. “알았어!”

다른 친구들은 우산을 가지고 온 가족과 함께 다정하게 교문을 나서기도 하고, 더러는 책가방을 머리에 이고 뛰어가기도 했다. 

창가에 앉아 하염없이 봄비를 맞이하고 있었다. 올 봄에는 비가 사흘 걸러 내리는 것만 같았다. 아직까지 슬이가 나타나지 않은 것이 또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해찰부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했다. 발신신호가 가는데 받지 않았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밖으로 나왔다. 봄비는 안개비처럼 연하고 부드러워졌다. 나는 책받침을 꺼내 머리에 받치고 냅다 달렸다. 식당문을 열고 옷에 묻은 빗물을 털며 들어서다가 주방에서 나오시는 할머니와 마주쳤다.

“너 왜 그리 흠뻑 젖었누?”

“슬이가 우산을 갖고 온다고 해놓고 통 소식이 없다니까요.”

나는 식당 탁자 사이를 지나 안채 거실로 들어서며 슬이를 불렀다. 대답이 없었다.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핸드폰 컬러링 소리가 슬이 책가방에서 났다. 핸드폰까지 놔두고 어디로 갔단 말인가?

‘가만!’ 집히는 대목이 있었다.  

지난 3월 초 비오는 날이었다. 슬이가 태권도 학원을 마치고 비를 흠뻑 젖어 들어왔다. 깜짝 놀라 물었더니 의외의 대답이었다.

“저쪽 골목길 끝에 가면 고양이집이 있어. 누가 박스에 구멍만 뚫어서 만들어 준 거야. 박스가 온통 비를 맞고 있었어. 박스가 젖으면 고양이가 어떻게 되겠어? 그래서 내 우산으로 덮어주고 왔어.”

어이가 없어 당장 찾아오라고 소리 질렀는데, 할머니께서 그냥 놔두라고 말리셨다. 일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며칠 뒤 또 비가 왔다. 가 봤더니 우산이 없어졌더란다. 할머니 우산을 들고 가 고양이집을 씌워주고 왔다. 그때도 할머니께서 말리셨다. 남은 우산은 내 것뿐인데 분명 또 고양이집에 씌워주었을 것만 같았다.

나는 더 이상 슬이를 찾으러 나가지 않았다. 비를 맞고 들어오든지 말든지.

목욕하고 나와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거실에서 얼쩡거리는데 안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드르릉거리는 소리 같은 게 가늘게 들렸다 사라졌다. 다시 들렸다. 장롱 안이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폭신한 이불 위에 슬이가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손에 그림일기장이 쥐어져 있었다. 살며시 빼내 펼쳐보았다. 오늘 그린 그림인 모양이었다. 우산 세 개가 펼쳐져 있고 그 아래 잔뜩 웅크린 고양이가 한 마리씩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고양이 아래 ‘할머니’, ‘누나’, ‘나’ 세 글자가 삐뚤삐뚤 쓰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