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광양 백운산과 광양숯불고기
광양숯불고기는 얇게 저민 소고기를 참숯에 구워 먹는 광양 대표 음식이다. 그 역사와 맛은 ‘천하일미 마로화적(天下一味 馬老火炙)’으로 표현된다. 마로(馬老)는 백제 시대의 광양 지명이다. 화적(火炙)은 불고기를 뜻하므로 ‘광양의 불고기가 세상에서 최고의 맛’이라는 뜻이다.
광양숯불고기의 유래에 관해서는 광양에서 귀양살이를 끝내고 한양으로 돌아간 선비가 광양에서 먹었던 불고기 맛을 잊지 못해 ‘천하일미 마로화적’이라는 말을 남겼다는 일화가 있다. 이 일화는 광양숯불고기의 유래뿐만 아니라 발달 이유에 관한 설명으로도 많이 이용됨에 따라 식문화의 형성과 전승에 영향을 미치는 자연조건, 인간의 기술, 사회규약에 대한 분석이 미흡하게 된다.
특히 맛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전승에 도움이 된 온 조리 방법과 열원의 차별성이 주목받지 못함에 따라 숯불고기를 매개로 하는 다른 식문화의 발전에도 크게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열원으로 이용되는 숯이다.
숯은 우리 전통 음식에서 흔하게 사용된 열원이며, 광양에서는 흔했으므로 특별하게 여기지 않은 경향이 있다. 그런데 과거 평야가 많은 호남선 지역의 음식문화를 살펴보면 왕겨나 짚풀이 땔감으로 많이 사용되었고, 짚불 구이 등의 유산이 있으나 숯의 사용은 많지 않았다.
호남선 지역의 음식에 많이 사용된 열원을 고려해보면 광양에서는 왜 숯불고기가 발전했고, 그 식문화가 전승되었는지를 쉽게 알 수가 있다. 즉, 광양은 전남에서 지리산 다음으로 높은 백운산이 있고, 이 산의 나무들이 숯의 재료로 사용됨에 따라 백운산과 광양숯불고기를 떼어 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광양 백운산이 숯으로 유명했음은 1918년 11월 29일자 부산일보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일본어로 된 당시 부산일보에는 ‘光陽炭 一千俵, 大邱へ來る’라는 기사가 있다. 우리말로 해석하자면 ‘광양 숯, 천섬 대구에 오다’이다. 기사 내용은 대구의 목탄(木炭) 가격 조절을 위해 생산지와 교섭 결과 전남 광양에 있는 동경대학(東京大學) 연습림(演習林)의 목탄 천섬을 대구에 공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광양 동경대학연습림은 원래 국유림으로 지역주민들이 자유롭게 임산물을 채취하여 이용할 수 있었던 곳이다. 그런데 1911년 6월에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일본 총독부 총독에 의해 조선삼림령이 제정되었고, 이듬해인 1912년 12월에 동경대학에 80년간 무상 임대가 승인됨에 따라 통제가 된다.
지역민들이 자유롭게 임산물을 채취했던 산이 연습림으로 되고 통제됨에 따라 지역주민들은 생활의 어려움에 처한다. 백운산의 목탄이 대구로 배송된다는 기사가 게재된 후 8년이 지난 1926년 5월 16일 조선일보 칼럼에는 “백운산 부근 수십만 주민들이 직접 및 간접 생활의 자료를 산출하는 자원을 지은 곳이라 이제 급격한 행정적 변동으로 자원의 독점 및 봉쇄를 단행하는 것은 부당타 아니할 수 없다. 인민의 하소연 소리가 끊일 새 없지 아니한가”라는 내용이 게재되었다.
옛날 신문에서처럼 백운산은 연습림이 되고, 부근 주민들은 일제에 의해 산의 이용이 통제됨에 따라 삶의 터전을 잃었으나 백운산 일대에서 숯의 생산은 꾸준하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것은 광양숯불고기 문화가 전승 발전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따라서 광양 식문화에서 백운산과 숯을 앞세우면 광양숯불고기뿐만 아니라 숯불 닭고기, 숯불 생선구이, 숯불 피자 등 숯이라는 열원을 이용한 음식의 특색화와 관련 숯음식 문화의 규모를 키우고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된다는 점에 주목했으면 한다.